안녕 맑음아

날씨요정님 잘 부탁해요

by KokoA

칼같이 온다는 말이 있죠. 제 생리가 그랬어요. 과장 조금 보태서 이번 달은 어느 쪽에서 나올지도 알 것 같았어요. 생리통은 기본이고 배란통까지 있거든요. 늘 생리전증후군에 시달리고요. 이번 달은 생리를 이틀, 사흘 남겨두고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았어요. 추웠다 더웠다를 반복하고 오한이 들었어요. 추웠다 더웠다 하는 것과 오한 외에는 평소 겪던 생리전증후군과 거의 비슷했어요. 그래서 환절기 감기 기운이려나 싶어 이번 달도 마음을 비우고 있었어요.


평소와 같이 일을 하던 중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간호사 선생님, 선배 엄마인 수간호사 선생님과 임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죠. 이야기 도중 생각해 보니 생리가 사나흘정도 늦어지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두 사람에게 생리를 안 한다 얘기했더니 선배 엄마의 촉이 발동했어요. 칼같이 생리를 하는 사람이 별 이벤트 없이 늦어질 일은 없다고 말이죠. 검사를 해보는 게 좋겠다 했어요. 옆에 있던 선생님까지 합세해서 얼른 검사를 하라 했어요. 조금 더 기다려 보겠다 했더니 안된다며 약국에 다녀오라 하는 거예요. 두 사람의 성화에 못 이겨 근무 중 근처 약국에 테스트기를 사러 갔어요 실은 여러 번 테스트기를 해봐도 한 줄이 나와서 실망했었거든요. 그 실망감이 싫어 테스트기를 멀리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안 해보고 있었는데 직장에서 테스트기를 하게 될 줄이야. 인생은 원래 이런 거죠. 내 마음대로 된 적이 없었어요.


그렇게 엉겁결에 하게 된 테스트기에서 처음으로 선명한 두줄을 확인했어요. 얼떨떨했어요. 테스트기를 가지고 나오니 잔뜩 기대한 얼굴로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테스트기를 보여주니 수간호사 선생님은 그럴 줄 알았다며 축하해 주었어요. 남편보다 직장 동료들이 먼저 제 임신을 알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그래요. 다시 한번 깨닫는 사실이지만 인생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아요. 어쩌면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는 것들도 있는 것 같아요. 그다음 날 산부인과를 방문해 혈액검사를 했고 혈액검사 결과상도 임신이었어요. 아쉽게도 아직 이른 시기라 초음파에 아기집이 확인은 되지 않을 거라 했어요. 수간호사 선생님이 저를 대신해 모두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고 임신한 저를 도와달라 부탁했어요. 감사할 뿐이었어요.


지금은 그런 악습은 사라지고 있을 테지만 일부 간호사 세계에는 '임신순번제'라는 것이 있어요. 임신으로 근무에 공백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든 말도 안 되는 악습이에요. 말 그대로 정해진 순서에 따라 임신을 하는 것이에요. 순번을 어기면 불이익을 받거나 팀원들에게 배제당하는 일도 있어요. 슬프게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악습이 있을 정도로 간호사에게 임신은 축하받을 일보다는 민폐를 끼치는 일이기도 해요. 그래서 임신을 원하면서도 걱정이 많았어요. 제 걱정과는 다르게 오히려 감사하게도 동료들은 진심 어린 축하는 물론 아낌없는 애정을 보여주었어요.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하라며 맛있는 것을 가져다주거나 사주었어요. 일을 도우려 하면 무리하면 안 된다며 말렸어요. 정말 아이는 와야 할 곳을 아나 봐요. 마땅히 사랑받고 돌봄 받아야 할 곳에 와 준 아이에게도 고마웠어요.


산부인과 방문 후 남편에게 임신 사실을 전달했어요. 누구보다 기뻐했어요. 사실 이전 꿈속에서 친오빠에게 예쁜 흰 앙금이 든 빵을 전달받으며 친구가 주더라며 이번엔 네 차례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리고 한입 베어 물었었죠. 태몽인가 싶어 남편에게 꿈 얘기를 하니 얼마나 빵을 좋아하면 꿈속에서도 빵을 먹냐며 저를 놀렸어요. 그랬던 남편도 내심 기대는 되었는지 AI와 채팅을 해보더니 태몽인 것 같다며 둘이서 같이 김칫국을 신나게 마셨어요. 결과는 그저 빵이 먹고 싶었던 저의 무의식이 반영된 꿈인 걸로 판명이 났었죠. 아이는 그렇게 꿈도 없이 어느샌가 저희 곁에 와 있었어요. 꿈 하나에 의미를 부여해서 마음대로 실망하고 속상해하는 엄마 아빠를 생각하는 따뜻한 아이인가 봐요.


아이에게 태명을 지어주고 싶었어요. '맑음'이라고 지었어요. 저와 남편은 비를 불러요. 서로 각자 다른 형태로 비를 불러요. 이런 둘이 높은 확률로 비가 왔어요. 저는 특별한 날에는 꼭 비가 오고 남편은 국립공원에 가면 꼭 비가 온다고 했어요. 그런 저를 보고 일본 친구들은 저를 비를 부르는 여자, 아메온나(雨女)라고 불렀어요. 이런 아메온나인 제가 또 다른 비를 부르는 남자, 아메오토코(雨男)인 남편을 만났으니 천생연분이 아닐 수 없죠. 그래서 둘은 비가 싫지만은 않았어요. 날씨가 어떻든 둘이 있으면 그저 즐거웠어요.


하지만 아이가 생기니 마음이 달라졌어요. 아이의 특별한 날에는 비가 오지 않았으면 했어요. 고사리손으로 몇 밤을 꼬박 헤아려 기다린 소풍날에 비가 오면 얼마나 속상할까 싶었어요. 맑음이라는 이름은 날씨요정님이 아이를 잘 돌봐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어요. 우리 아이의 가는 길은 언제나 화창하고 따뜻하길 하면서요.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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