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것을 잘하자
올마이티(almighty)라는 말이 있어요. 사전을 찾아보면 전능한, 엄청난 등의 뜻으로 나와요. 제가 이 말을 배운 건 일본에서였어요. 일본에서 저는 모국어인 한국어는 물론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고 영어도 조금 잘하는 친구였어요. 제 일본 친구들은 그런 저를 '올마이티'라며 칭찬했어요. 그들의 올마이티는 본뜻과 달리 뭐든지 잘한다는 뜻이에요. 한국에 콩글리쉬가 있듯 그들에게도 화제영어(和製英語)라 불리는 일본식 영어가 있어요. 그들이 알려준 화제영어 '올마이티'는 완벽주의자였던 저에겐 찬사였어요.
요가와 만난 후 저는 아주 조금 완벽콤플렉스를 내려놓아요. 타고난 체형과 체력, 주어진 환경에 따라서는 되지 않는 것도 있음을 배웠거든요. 그럼에도 관성이란 무서운 것이라 금방 다시 완벽해지려 했어요. 존재하지도 않는 완벽을 좇았어요. 하지만 이 세상에서 자신이 열심히 한 만큼 인정받는 일은 드물어요. 되려 비판을 받는 일도 있어요. 그러면 사람은 가진 것에 감사하기보다는 가지지 못한 것을 원망해요. 부정적인 감정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어요. 그러다 보면 금방 소진되어 버리죠. 요즘은 흔히들 쓰는 소진증후군, 즉 번아웃이 와요. 번아웃이 와 투덜거리고 있을 때 남편이 제게 한마디 했어요.
잘하는 것을 잘하자
똑똑한 남편은 잊고 있던 요가의 지혜를 떠올리게 했어요. 그 지혜는 이미 있는 것, 가지고 있는 좋은 것을 발전시키는 요가의 지혜였어요. 잘 못하고 익숙하지 않은 것에 집중하지 말고 능숙하고 숙련된 것을 더욱 발전시키라는 말이었어요. 남편은 제가 잊고 있던 요가의 지혜를 간결한 문장으로 쉽고 확실하게 떠올리게 했어요. 남편의 말을 들은 후 저는 제가 무엇을 잘하는지 생각해 보았어요. 그리고 장점과 강점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어요.
저는 집중력이 좋아서 몰입도가 높아요. 그리고 암기력도 좋은 편이에요. 목표를 정하면 밀고 나가는 추진력과 행동력이 있어요. 그 결과 저는 독학으로 공부한 일본어를 원어민 수준까지 끌어올렸어요. 제 장점과 강점을 살렸기에 가능했죠. 잘하는 것을 잘하기로 하니 무엇을 해야 할지 보였어요. 매해 목표에 있었던 영어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어요. 이번에는 내가 잘하는 방식으로 해보기로 했어요. 학교에서 하던 재미없는 방식 말고 혼자 일본어를 공부했었던 것처럼 영어 공부를 시작했어요. 새로운 시각으로 영어가 보여 영어 공부가 즐거워졌어요. 아마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하면 공부한 것을 어디에 쓸 것인지 실력은 얼마나 늘었는지 궁금해할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부하는 과정에서 얻은 것은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성실함, 끈기, 노력 등 공부를 하면서 몸에 익는 것들도 있는데 말이죠.
세상은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해요. 과정에서 노력하며 얻는 가치들보다 결과와 성과를 먼저 봐요. 결과가 나쁘고 성과를 못 냈다고 해서 노력하지 않았단 뜻이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세상의 기준은 그렇지 않아요. 나의 노력에 함부로 잣대를 들이대요. 그러다 요가와 만나 요가를 수련하며 세상의 기준이 제 기준이 아님을 깨달았어요. 훌륭한 결과보다 떳떳한 과정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되었어요. 이렇게 제 기준이 명확해진 이후 전보다 상처를 받지 않게 되었어요. 그렇다 해도 사람인지라 상처를 받는 날이 있죠. 그럴 땐 책에서 위로를 찾곤 해요. 저를 위로해 준 책도 알려주고 싶어요. 알랭 드 보통의 사유식탁이에요. 그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해요.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만 친구들이 나를 좋아할 거라는 끔찍한 생각에 사로잡혀 행동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우리가 우정의 핵심을 잊고 있는 것이다. 우정은 실패, 약점, 무능력과 불완전에도 불구하고 아니 사실 거의 그것들 덕분에 유지되는 것이다.
세상은 완벽을 요구하지만 그의 말처럼 사람은 완벽하지 않아서 함께 살아갈 수 있어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알아요. 무언의 동질감이죠. 그 동질감이 느껴지는 사람이래야 마음을 허락하고 친구가 될 수 있어요. 사람은 모두 잘하는 것도 있지만 빈틈이 있어요. 각자 잘하는 것으로 서로의 빈틈을 메워 주며 살고 있어요. 그래서 내가 잘하는 것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것도 돼요. 다른 사람이 잘하는 것이 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도 되죠. 이렇게 세상은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이 서로의 잘하는 것을 필요로 하며 서로를 도우며 이루어 나가요. 이 사실을 깨달은 후 자신의 재능에는 겸손히 타인의 재능에는 정중히 감사하게 되었어요.
완벽하려 애쓸 땐 무언가를 채워도 마음이 공허했어요. 그러나 감사함이 깃든 후에 마음이 채워지는 걸 느꼈어요. 진정한 의미의 충분을 알게 된 거죠. 그래서 아이도 잘하는 것을 성실히 잘하고 가진 재능에 감사하고 나누며 살 줄 알았으면 좋겠어요. 아이가 그러려면 제가 먼저 본보기가 되어야겠지요. 엄마는 아이의 거울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