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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간호사 KokoA Feb 06. 2024

폐쇄병동이 아니라 보호병동

가두는 게 아니라 지키고 있습니다

말은 일방(一方)이 아니라 양방(両方)이다.

한쪽으로만 흘러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흘러오기도 해서 타인에게 향하는 말이 자신을 향하기도 한다. 


정신과 병동에는 불안해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이 많다. 그 불안은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긴장으로, 공포로, 우울로 이어진다. 우리 병동에는 ‘만약에’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는 환자가 있다. 그녀는 그녀가 할 수 있는 걱정들을 모조리 다 끌어모아 스스로를 불안의 맨홀로 빠트린다. 그 맨홀에 빠져 “저기요! 여기요!”할 때가 있다. 하도 자주 빠져서 가끔 못 들은 척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래도 부르면 어쩔 수 있나? 가야지. 그녀에게 간다.


“선생님, 만약에~”


그녀가 운을 뗀다. 그녀의 가정은 불안의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려고 한다. 길어지기 전에 잘라 낸다.


“00님, 아직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그렇죠? 선생님. 근데, 그래도 만약에~”


“00님, 많이 불안해서 그런 거 알아요. 괜찮아요. 지금, 여기 우리가 같이 있잖아요. 여기가 제일 안전해요.


지금, 여기 우리가 같이 있다, 여기가 제일 안전하다’라는 환자의 불안을 완전히 사라지게 해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일순(一瞬)이지만 시야를 흐리는 ‘막’을 걷어줘 ‘보이지 않음’에서 오는 공포에서는 환자를 구할 수 있다. 때로는 환자를 구하는 순간에 나도 구해지는 걸 느낀다. 스스로가 보잘것없이 느껴지는 날에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이 나를 겁을 준다. 잔뜩 겁에 질린 나는 ‘아직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어’ ‘지금, 여기 우리가 같이 있어’, ‘여기가 제일 안전해’라는 말에 안도한다.




최근 말의 방향에 대해 생각하게 된 일이 있었다.

내가 정신과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고 말하자 질문 폭격이 쏟아졌다.


"폐쇄 병동에서 일하냐?"

"거기 이상한 사람들 많아서 무섭지 않냐?"

"강제로 묶고 약 억지로 먹인다는데 진짜냐?"


그의 질문들이 무례(無礼)하다고 느껴졌지만 아마 그건 무관심에서 오는 무지(無知)였을 것이다.

나의 소중한 가족이, 나의 소중한 연인이, 나의 소중한 친구가 정신 질환을 앓고 있지 않는 한,

정신과는, 정신과 병동은 이상한 사람들을 강제로 묶고 억지로 약을 먹이는 폐쇄적인 공간일 것이다.

그에게 대답했다.


"폐쇄 병동이 아니라 보호 병동입니다.

가두는 게 아니라 지키고 있습니다.

이상한 게 아니라 아픈 것입니다.

강박과 투약은 처방에 따라 행해집니다.

그리고 저는 제 환자가 무섭지 않습니다."


라고.


사실이니까. 매일 나와 내 동료들은 마음이 아픈 이들이 쏟아부어내는 감정, 감정을 뚫고 나온 소스라치는 통증들을 맨몸으로 받아낸다. 벼랑 끝에 서 있는 그들을 잡고 있다. 세상이 밀어낸 그들을 우리는 밀어내지 않는다. 나의 대답은 그를 향한 것이기도 했지만 나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했다. 환자를 격려하고 지지하는 과정에서 나 스스로도 위안을 얻고 나 스스로를 구하기도 했고 ‘우울증’과 ‘ADHD’을 앓고 있는 나 자신에게 ‘이상’ 한 게 아니라 ‘아픈’ 거라 다독였다.


여전히 정신과의 문턱은 높다.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 부르며 예전보다 문턱이 낮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정신 질환에 대한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그 싸늘함은 무관심에서 오기도 하고 우리가 무심하게 쓰는 말에서 오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타인을 향한 말은 곧 나를 향한 말이다.

타인을 향한 말을 지켜야겠다.

타인을 향해 흘러가는 나의 말은 다시 나에게로 흘러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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