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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간호사 KokoA May 18. 2024

우울증이었습니다.

다녀왔습니다.

ただいま 타다이마 おかえり 오카에리


일본에서는 외출, 여행 등 집을 떠났다 다시 돌아오면 타다이마, “다녀왔습니다”라고 하고 돌아온 사람에게는 오카에리 “어서 와요”라고 한다.

타다이마는 직역 하면 “바로 지금”이라는 뜻이고 오카에리는 카에리 “돌아옴”에 존경어를 만드는 오(お)를 붙여 만든 말인데 일본어에서 오(お)가 붙은 단어는 대체로 상냥하다. 그래서 오카에리는 “무사히 잘 돌아옴”을 뜻한다.


2020년 7월 우울이 움직였다.

사랑해-사랑했어-아니, 역시나 사랑하고 있어-헤어지고 싶지 않아. 이윽고는 헤어져야 해를 향해서.


2020년 8월 이혼했다. 

이혼 후에도 현실은 남아서. 나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귀국 준비가 될 때까지는 일본에 있어야 했다. 일본에 가족이 없는 내가 갈 곳이 없던 걸 알았던 그 사람은 모든 것이 다 정리되고 떠날 수 있을 때까지 새로운 거처를 찾지 말고 집에 머물게 해 주었다. 우리는 “이혼 후동거”라는 이상한 거주 형태로 1달을 함께 했다. 이혼 후에도 그 사람은 다정했다. 우리는 “우리가 이혼했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우리는 내가 좋아하던 카레집에서 카레를 같이 먹기도 했다. 그런 익숙한 풍경 속의”우리”에서 그해 9월 낯선 “나”로 돌아왔다. 하지만 귀국 후에도 나는 현재를 살지 못했다. 나는 더 이상 우리가 아니라는 감각을 익히지 못했다.

 

여전히 과거를 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혼하지 않은”과거를 살고 있었다. 나는 “이혼하지 않은”과거에 살아야만 했다. 내가 “이혼한”지금을 살면 우리는 정말 끝이니까. 한국에서도 나는 그 사람을 붙들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내가 버려도 내게 버려지지 못해서 늘 그 자리에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불면증에 시달리고 악몽을 꾸는 밤이면 전화하기도 했다. 수화기 너머에 있는 그 사람이 날 안심시켜 줄 걸 알았다. 나는 그 사람을 너무 잘 알아서 더 잔인해졌다. 이혼하고도 내 생일엔 잊지 않고 축하 메시지를 보낼 만큼 다정한 사람에게 나는 내가 괜찮아질 때까지 곁에 있어달라 애원했다. 그 사람은 그런 나를 외면하지 않았고 그 자리에 있어 주었다.


2023년 9월 그 사람이 그 자리를 떠났다. 그 사람이 지금을 택했다. 그제야 더 이상 우리가 아니라는 감각을 배웠다. 우리가 아니라는 감각은 나를 공격하기에 충분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이혼한” 지금을 살아야 했고 혼란스러웠다. 그 혼란스러움은 나와 비슷한 히스토리를 가진 환자에게 “역전이”를 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 환자를 나에 대입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환자와 언쟁을 하는 일이 있었다. 날 선 말들이 날아들던 순간 나를 정확히 찌른 한마디.


선생님은 이런 아픔 모르잖아요.


휘청였다. 


네가 뭘 안다고 지껄여?


내 안에서 차고 올라오는 말을 다시 겨우 욱여넣고 다시 중심을 잡고 그 환자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 환자에게 했던 역전이는 “저러니 이혼할만했지”하는 비난이었다. 내게 토하듯 뱉던, 넌 이런 아픔 모르잖아라는 외마디 비명에 나는 그제야 내 스스로 나를 “우울증에 이혼녀라 네 인생이 이렇지”라며 벽 끝까지 나를 몰아세우고 있다는 것과 그 환자를 향한 비난이 스스로를 향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아, 진작 끝났어. 

아픈 이혼녀. 이게 현실이야. 


나는 그 비명처럼 이런 아픔을 몰랐다. 이혼 후 밀려들던 그 감정들을 어떻게든 마음속 깊은 곳에 꾹꾹 눌러 담았다. 이렇게 차 올라 터져 흐를지도 모르고.

차올라 터져 흐르는 감정은 이런 아픔을 알게 했다. 그건 우리가 헤어져서이고 우리가 더 이상 우리가 아니라서이다.  나는 단지 잠을 못 자고 우울한 게 아니라 정말 아팠다. 

그제야 말할 수 있었다. 타다이마”라고.나의 “타다이마”에 주저 없는 “오카에리”가 돌아왔다. 그 "오카에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준 사람들로부터였다. 우울이 뚫은 마음의 구멍이 감사로 메워지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이혼하지 못한"과거로부터 돌아온 나를 맞이하는 사랑스러운 “오카에리”가 있는 “이혼한”현재를 산다. 이렇게 우울증은 과거형이 되고 행복은 현재진행형이 되었다.  


다녀왔습니다.
그 자리에 있어줘서 고마웠어요.
이 자리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나는 지금 제일 행복해요.

※역전이 
내담자가 자신에게 중요한 인물의 이미지를 분석가에게 투사하는 ‘전이’에 대한 분석가의 무의식적 반응으로, 분석가의 갈등(conflict)이 반영되어 내담자를 대하는 분석가의 사고, 감정, 행동 등에 영향을 미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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