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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간호사 KokoA Jun 15. 2024

꽃샘 우울

완치 판정 후의 우울

오늘은 봄의 네 번째 절기 '춘분'이지만,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겠습니다.

봄, 쉽사리 오지 않는 계절. 3월 중순이 되어도 추위는 누그러들지 모르는 듯하다. 이 시기의 추위는 겨울 추위보다 더 춥게 느껴진다. 그건 어쩌면 겨울 추위는 따뜻할 거란 기대감도 없는 그저 차가움인 반면 봄추위, 꽃샘추위따뜻할 거라는 기대감이 들어간 추위라 그렇다. 기대에 반한 일이 벌어졌을 때 일어나는 감정도 함께이니까.


현대 의학에서도 완치라는 개념은 사실 완전하지 않다. 완치 판정을 받았던 암이 재발되는 건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다. 완치 판정 후에도 증상이 남아있기도 하고 후유증 시달리기도 하니까 병이 할퀴고 지나간 후의 흔적을 다 없애는 일이란 불가능하다.


신체적으로만 그럴까? 정신질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올봄 항우울증제, 항불안제, 수면제를 차례로 단약 후 우울증 완치 판정을 받았다. 사실 판정 전에도 기분은 괜찮았었고 완치 판정 후 기분이 좋았다. 잠도 잘 잤고 우울감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완전한 건 없다. 자기혐오에 빠진 사건이 있었다. 우울해졌다. 이때의 우울감은 꼭 꽃샘추위 같았다. 완치 판정을 받았으니 분명 무조건 괜찮아야 하고 기분도 다스릴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반했기에 더 침울했다.


“현재 서울 기온은 영상 1.5도로
어제 같은 시각보다 4도나 낮고요,
찬 바람에 체감온도는
영하 1도 안팎까지 뚝 떨어져 있습니다.

완치 판정 후 찾아온 우울은 이런 꽃샘추위 일기 예보 멘트 같았다.


그러나 꽃샘추위는 한순간.

곧 물러날 테고 다시 봄이 올 테고.


꽃샘추위도 찰나일 뿐이라는 깨달음이 오자 이 멘트 뒤에 이어져 나오는 멘트가 더 크게 뚜렷하게 귀에 꽂혔다. 


막바지 꽃샘추위는
내일 아침까지 이어진 뒤,
내일 낮부터 점차 누그러지겠습니다.
환절기, 심한 기온 변화에
대비 잘해주시기 바랍니다. 

봄은 원래 변덕스러운 계절이니까.

오는 비에는 우산을, 추위에는 겉옷을 준비하고 나를 돌보면 된다.


여전히 나는 우울 기질을 가지고 있다. 불안도도 높고 예민하고 그래서 잘 지친다. 그래도 이게 나고 나를 개조시킬 수는 없다. 그럴 마음도 없다. 어떨 때 우울해지는지를 잘 기억해 두었다가 우울이 올 것 같으면 대비를 우울이 오면 대응을 하면 된다.


꽃샘추위가 지나면 꽃이 핀다.

꽃이 피려면 이 추위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 추위 끝에 핀 꽃의 다른 이름은

시련을 견딤 혹은 이겨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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