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보다 해석
결혼을 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혼인신고부터 했다. 한국은 예식 자체를 혼인신고보다 결혼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인지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며칠 전 웨딩 촬영을 한 후에야 결혼한 실감이 났다. 촬영을 준비하며 예비부부 혹은 부부들의 준비기를 보니 컨페티, 케이크, 풍선, 부케 등 갖은 소품들을 활용하고 있었다. 그렇게까지는 부지런하지는 못한 터라 부케만 준비하기로 했다. 스튜디오에는 조화 부케가 구비되어 있고 요즘 워낙 조화가 잘 나와서 사진상으로는 크게 티가 나지 않는데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부케는 꼭 생화여야 했다.
준비한 부케는 카라와 실바핑크장미. 비쌌다. 꽃집에 문의하니 일반 꽃다발과 달리 부케는 손질이 까다롭다고 했다. 굳이 이 부연 설명을 덧붙이는 이유는 남편이 분명히 이 글을 읽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읽은 후에 한마디 한다면 부케 구매는 합리적인 소비였다고 할 참이다. 부케는 촬영 후 챙겨서 집으로 다시 가져갔다. 카라는 침실 협탁 위에 두고 실바핑크장미는 서재 책상 위에 두었다. 깔끔하고 정성스럽게 손질이 되어 있어서 그런지 그대로 화병에 옮겨 담기만 하면 되었다.
최근 결혼 준비와 이직으로 분주했다. 변화와 이동. 긴장과 불안. 나는 이럴 때일수록 움직여야 한다고 믿는 사람. 서재에 매트를 폈다. 1시간 정도 요가 수련을 했다. 수련을 마무리하고 서재를 나서려는데 전날 화병에 꽂아 두었던 실바핑크장미가 눈에 들어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작은 봉오리였던 꽃이 활짝 피어나 있었다. 그 순간 내게 필요한 것은 사실보다는 해석이었다. 서재는 볕이 잘 들고 통풍이 잘 되니 꽃이 피었다는 직관이 아닌 밤사이 드나드는 공기의 깨끗한 부지런함과 아침 햇살의 따스함에 감동하여 봉오리가 품을 연 것이라는 동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무기력함을 느꼈다.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어떻게든 내 뜻대로 통제하려 안간힘을 썼던 것 같다. 자꾸 온몸이 움츠러들어 뻣뻣하고 마음은 닫히고 완고해졌었다. 그러나 맑은 공기와 따뜻한 볕에 활짝 핀 꽃에 몸이 이완되고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투명하고 성실하게 변하지 않는 사랑을 보여주고 헌신하는 사람을 위해 어깨를 펴고 마음을 열어야 한다. 어쩔 수 있는 건 오로지 내 마음뿐이다. 잠시 움츠러들어 있는 봉오리일 뿐 나는 사랑을 먹고 자라 활짝 필 꽃이다.
꽃, 꽃임을, 이토록 아름답게 알려고 필요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