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가 알려준 위빠사나
나는 일본어를 잘한다.
겸손이 미덕인 우리나라에서 자신 있게 잘한다고 말하려면 웬만큼 잘해서는 안되는데 잘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잘한다. 자신감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타고난 재능이 주는 선물 같은 자신감, 스스로 찾아낸 방법으로 시도하여 성공했을 때 생기는 경험적 자신감, 노력에 비례하는 정직한 자신감. 일본어는 내게 그 모두를 아우르는 자신감의 상징이었다.
암기력은 어렸을 때부터 제법 좋은 편이었다. 나고 자란 곳의 사투리는 일본어 억양에 도움을 주었다. 일본어로 누군가의 도움을 받은 건 엄마를 졸라 두어 달 일본어 학원을 다녔던 것뿐이다.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 수업으로 일본어를 배우기는 했지만 그 수업은 지루하다 느낄 정도로 이미 일본어에 능통했다. 언어는 암기력과 요령 싸움. 누군가에게 배우는 것보다 스스로 깨치는 게 더 많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책을 펼쳤다. 책은 내게 문이었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은 닫힌 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마다 자신감이 따라왔다. 자신감은 용기를 주었고 23살의 나를 일본으로 보냈다. 당시 내가 가진 것은 약간의 여비와 자신감뿐이었지만 두려울 게 없었다. 왜냐면 나는 잘했다. 그 후 일본에서 10년 가까이 살았다. 촘촘히 시간과 경험의 겹을 쌓아 올려도 여전히 나는 이방인이었다. 이방인은 늘 잘해도 못하는 존재다. 언제나 뒤로 물러난다. 혹은 앞서 빼앗긴다. 그 어느 때도 예외는 없다. 이토록 공평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코로나가 온 세상을 휩쓸던 때도 그랬다. 먼저 일자리를 잃었다. 기약도 없이 소중한 존재들과 갈라졌다. 그런 이방인의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남아서 고달픈 비참을 견디는 것과 떠나서 따뜻한 후회를 버티는 것. 나는 후자를 택했다.
귀국 후에도 일본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거나 한국인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다. 일본어를 쓰는 일을 꾸준히 했다. 그래서 내 일본어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전처럼 매일 일본어를 쓰지는 못해도 의식해서 사용하고 있었고 내 힘으로 얻은 내 것이니 변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모국어가 언어를 지배하는 힘은 컸다. 자주 쓰지 않거나 헷갈려했던 단어를 잊었다. 변하지 않아야 했던 것이 변했다. 처음에는 놀랐다가 초조했다. 불안하다 화가 나기도 했고 끝내는 슬펐다. 언제나 그런 시간과 감정의 끝에는 요가가 있었다.
요가가 건넨 위로는 ‘위빠사나’였다. ‘위'는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며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고통스럽고 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빠사나'는 그러한 '위'를 관찰하고 신체의 감각, 감정의 마음, 인식의 대상과 마음의 대상, 인식 대상의 확정적인 것을 관찰하는 것이다. 요가는 세상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고 나라고 믿었던 것조차 변한다고 말한다.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내 모든 것들도 끊임없이 변하고 있었다. 일본어도 변화의 일부이다. 단지 애착이 컸던 만큼 상념에 잠겨 슬프기까지 했던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럼에도 응당 사랑해야 할 것은 있어서 그저 바라보고 지켜본다. 받아들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