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되고 싶은 엄마

분명히 행복할 거야

by KokoA

때론 싫어한다는 것은 좋아한다는 뜻이기도 한 것 같아요. 왜냐면 저는 좋아하는 걸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때 싫어하기로 선택하기도 했었거든요. 이 나라가 그랬어요. 빡빡했어요. 치열했어요. 숨이 막혔어요. 끊임없이 비교하죠. 모두와 경쟁하죠. 넌더리가 나 타국으로 떠났어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지긋지긋한 나라가 그리워져 결국 다시 돌아왔어요. 줄곧 이 나라를 싫어하면서도 계속 좋아했거든요. 싫어하는 것이 좋아하는 것이 되는 것. 그 정이라는 것. 미운 정.


안타깝게도 여전했어요. 그토록 싫어했던 비교와 경쟁. 외모지상주의와 물질만능주의는 더 심해져 있었어요. 사람들은 멋대로 서로를 재고 따지고 평가했어요. 성가셨어요. 사람이 싫어졌어요. 인간관계는 너무 피곤했죠. 혼자가 나았어요. 편했어요. 제일 귀찮은 건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였어요. 무언가 받으면 돌려주어야 하죠. 되도록 타인의 도움도 받지 않으려 했어요. 도움을 받으면 나도 도움을 줘야 할 것 같아 부담스러워 웬만하면 도움을 받지 않았어요. 피해를 주지 않으면 피해를 받지 않을 거라 생각해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으려 애썼어요. 이러니 인간관계가 너무 피곤했죠. 속된 말로 기가 빨리더군요. 돌이켜 생각해 보니 힘들 수밖에 없었어요. 바라지 않고 베푼 호의와 뜻하지 않은 악의마저 다 갚으려 했으니까요. 인간관계에 지쳐 홀로 살아가리라 다짐했죠.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버거운 이 나라. 이 나라에서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지 않을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아요. 학벌, 출신, 능력 등 사람보다 조건을 따지는 풍조. 말하기도 입 아픈 외모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 무엇보다 결혼, 임신과 출산 후의 경력 단절은 공포였어요. 하지만 그런 저를 바꾼 건 좋아하면서 싫어하는 것이었어요. 사람. 사람이었어요. 사람. 지금의 남편이었죠. 남편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저는 아직 혼자였을 거예요. 출산은 더더욱 다른 세상 이야기였을 테고요.


남편은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았어요. 확고한 자신만의 가치관이 있었죠. 조건보다는 사람. 남편은 오직 사람을 봤어요. 제가 별생각 없이 챙긴 것들에 섬세하다며 기뻐했어요. 예의라 생각했던 일들에 따뜻하다며 칭찬했죠. 남편은 둘이 함께 있으면 즐거워서 시간 가는 줄 몰랐대요. 남편이 결혼을 결심한 이유는 저와 결혼하면 평생 재미있게 놀 수 있을 것 같았대요. 확실히 요즘 흔한 시선들과는 다르죠.


그럼 이번에 제가 남편과 결혼을 결심한 계기를 이야기해 볼까요. 작년 봄 요가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하려 요가원을 다녔어요. 남편과 약속이 있었던 날인데 마침 요가 지도자 자격증 수업이 있던 날이었어요. 책이 여러 권 돼서 꽤나 무거웠어요. 저는 보부상이라 책 말고도 평소에 들고 다니는 짐도 많았어요. 그런데 또 손이 자유롭지 못한 건 질색이라 큰 가방에 짐들을 한꺼번에 넣고 다녔어요. 수업이 끝난 후 바로 만날 약속을 해서 가방을 들고 남편을 만나러 갔죠. 남편 눈에는 그 가방이 제 몸만 해 보였대요. 크고 무거운 가방을 짊어진 제가 안쓰러웠대요. 그래서인지 남편은 제 요가 지도자 자격증 과정이 끝날 때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저를 요가원까지 데려다주었어요. 요가원에 데려다준 후에도 수업이 끝날 때까지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며 저를 기다렸고 수업이 끝나면 집까지 데려다주었어요. 남편의 헌신에 감동했지만 결혼을 결심한 계기는 아니었어요.


남편과 결혼을 결심한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어요. 요가 지도자 자격증 과정이 끝날 때까지 남편이 늘 요가원에 데려다주었다고 했잖아요. 한 번은 남편과 크게 다툰 적이 있었는데 다툰 다음 날 요가 지도자 자격증 수업이 있었어요. 만나고 싶지 않아 혼자 가겠다고 했더니 다음 날 비예보가 있다며 가방도 무거울 텐데 비 맞히기 싫다는 거예요. 문득 SNS서 본 글이 생각났어요. 어떤 여성분의 결혼한 계기에 대한 글이었어요. 밥을 먹으면서 남편이 된 남자친구와 싸웠대요. 그 여성분의 남자친구는 싸우는 와중에도 고기를 구워가며 그 여성 분의 밥그릇 위에 고기를 얹더래요. 조금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남편에게서 그런 모습이 보였던 거죠. 본인도 다툰 후 감정이 가라앉지 않았을 텐데요. 본인의 격해진 감정보다 저에 대한 마음이 앞섰던 거죠. 남편은 말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주는 사람이었어요.


남편은 산처럼 우직한 사람이에요. 저는 평생 여자애처럼 살고 싶은 낭창한 사람이고요. 평생 여자애처럼 살고 싶은데 엄마가 되면 여자애처럼 살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웠어요. 그런 두려움을 털어놓으니 남편은 제게 평생 여자애처럼 살라 했어요.. 자신이 산이 되어줄 테니 마음껏 뛰어 놀라고요. 심리적 안전기지가 되어줄 테니 맘껏 세상을 즐기라고요. 남편은 언제나 지금의 저로도 충분하다고 했어요. 지금의 저로도 충분하다는 말은 오히려 저를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했어요. 있는 그대로를 존중해 주고 믿어주는 것에 대한 보답으로 말이에요. 남편은 강요가 아닌 사랑으로 언제나 제가 더 나아지고 싶게 하는 사람이었어요. 남편은 단 한 번도 물질로 제 마음을 얻으려 한 적이 없었어요. 아낌없이 표현하고 늘 사랑으로 저를 보듬어요.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임을 깨닫게 해 준 것도 남편의 헌신이었죠. 거기다 남편은 준비된 사람이었어요. 조카가 태어나기 전 태어날 조카를 위해 발달 심리까지 공부했었거든요. 남편을 보며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준비는 경제적 준비가 아니라 마음의 준비임을 깨달았어요. 그런 남편이 제 마음을 움직였어요. 아낌없이 사랑을 주고 싶은 존재를 원하게 됐어요. 이렇게 제 꿈은 엄마가 되었어요. 이런 사랑이 많은 남편과 함께라면 세상이야 어떻든 사랑으로 키울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어요.


엄마가 되고 싶은 이유에 남편과 제가 결혼을 결심한 계기와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넣어 길게 쓴 이유가 있어요. 이 글은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글인데 제가 아이를 가지기 위해 큰 결심을 했다는 것보다 아빠가 얼마나 사랑이 많은지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약속하고 싶었어요. 엄마는 사랑이 많은 아빠와 행복하니 이렇게 사랑이 많은 아빠와 함께 분명히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요. 마지막으로 남편이 두려워하던 저를 안심시켜 주었던 말도 꼭 해주고 싶어요.


안전기지가 되어 줄 테니
안심하고 오렴.
맘껏 세상을 즐기렴.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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