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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미 Apr 07. 2023

구수한 로맨스

2W매거진 '전지적 로맨스 시점' 4월호 연재

결혼하기 전에는 로맨스 드라마나 만화를 즐겨 봤다.

상상 속에서의 로맨스는 사탕처럼 달콤하고 설렌다.

불타듯 뜨거운 로맨스나 사탕같이 달콤한 로맨스는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어차피 난 뜨거운 것도 싫고 사탕도 별로 안 좋아하니깐.

어쩌면 다행이다. 그보다 난 편안한 로맨스를 원했던 거 같고 그런 로맨스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

편안함. 어쩐지 낭만과는 거리가 먼 것 같기도 하지만 짜릿함이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걸까. 

현실 속에서는 그런 로맨스를 바라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편안한 로맨스의 주인공은 캐나다에서 온 다른 인종의 남자였다. 

외국 남자는 한국 남자와 비교 되게 로맨틱할 거라고 생각을 하지만 그런 남자는 아니고 오히려 유머러스하면서 활동적인 남자였다.

'로맨스'는 연애를 하고 각자 집에 들어갔을 때 느껴지는 은근한 채워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의 로맨스는 전혀 로맨틱하지 않은 성북동의 한 삼겹살집에서 시작되었고 우리의 데이트는 주로 자전거를 타거나 등산을 하는 등의 땀 뻘뻘 나는 액티비티였다. 모두가 궁금해하는 첫 키스는 헤어지기 전 집 앞. 너무 뻔한 장소에 이미 난 다 예상하고 있었으므로 로맨틱 코미디에서 코미디에 더 가까운 첫 키스였다고 해야겠다. 

모국어가 영어인 사람이니 언어가 달라 로맨틱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말을 너무 잘하고 만날 때부터 청국장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기에 구수한 매력이 있긴 있었다. 자꾸 나를 실내가 아닌 자연으로 내던지는 그를 보면서 뭐 이런 서양인이 다 있나 생각도 했지만 그 순간 알았다. 이 사람 앞에서는 이뻐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그러다 보니 너무 남의 시선 신경 안 쓰는 아줌마가 되어 버렸지만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사람이기에 포근하고 편안했다.

어느 날 등산 가방에 와인과 촛불을 넣고 산에 가자는 이 사람. 그렇다. 산 정상에서 프러포즈를 받았다. 이것도 예상 가능한 코미디였다. 추웠고 깜깜해서 내려올 땐 목숨 걸고 내려왔다. 중년의 사랑은 의리와 신뢰, 우정과 맞바꿀 수 있는 사랑이 아닐까. 우리의 로맨스는 처음부터 어느 정도 중년의 로맨스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올해 결혼 10주년을 맞은 우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게 없다.

짜릿하고 설레는 로맨스는 드라마나 소설책 같은 픽션 속에서 간접 경험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 대신 앞으로 캐나다인 같지 않은 캐나다인과는 계속 청국장 같은 구수한 로맨스를 이어 나가려 한다.


2W매거진 4월호 <전지적 로맨스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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