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안 관찰일지

by 제이미

'아 정말 가기 싫다.'


화요일마다 버스를 타고 수업을 들으러 가는데 오늘은 딱 가기 싫은 거다. 수업이 지루해서가 아니고 내 몸이 무거워서다. 어제부터 아파트 보일러가 작동되기 시작한 이 시점에 또 비는 왜 이렇게 자주 내리는지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 건 물론이고 몸이 나도 모르게 축축 쳐진다. 날씨와 온도 1도 차이에도 반응하는 내 몸을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돈 버는데 이렇게 예민한 촉이 반응하면 얼마나 좋아. 그래도 빠지기 뭐해서 부랴부랴 준비해서 나가본다. 옷을 겹쳐 입는다고 입었는데 찬바람이 술술 몸 안으로 들어간다. 이렇게까지 쌀쌀한지 모르고 나간 나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10분 안에 안 오면 안 갈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럴 땐 버스가 딱딱 와준단 말이지. 버스 안은 생각보다 따뜻해서 안심하고 앉았는데 가방 안에 이어폰이 없다. 기가 막히다 못해 화가 난다. 안 그래도 가기 싫은데 맘껏 보고 듣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니. 그래도 이왕 가기로 한 거 진정을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맞은편에 책을 읽는 어르신이 눈에 들어온다. 지하철이나 직행버스도 아닌 마을버스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처음 본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너무나도 유유히 책을 읽으시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자세히 보니 이 어르신의 머리는 짧은 백발에 일흔에서 여든 살 정도로 보인다. 살짝 접은 진청색 청바지에 나이키 재킷을 입고 계시고 더 놀라운 건 분명 남자인데 스카프를 두르고 젊은 사람들이 매는 니트주름가방을 크로스로 매고 계신 게 아닌가. 그때부터 나는 이 어르신을 유심히 보기 시작한다. 전체적으로 풍기는 느낌이 딱 드라마에 나오는 낮엔 노년, 밤엔 청년으로 사는 주인공 같은 그런 분위기의 할아버지다. 왜냐하면 그 모습이 어색하지 않고 너무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힙한 옷차림에 버스 안에서 독서를 하는 할아버지라니. 버스 안에서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싶은 충동을 느낀 건 처음이다. 무슨 책을 읽으시는지, 어디를 가시는지, 옷은 또 왜 그리 잘 입으시는지 여러 가지를 묻고 싶었다. 가까이 앉았으면 살짝 물어봤을 텐데. 요즘 '영포티'라는 말이 있는데 이 분은 영세븐티 혹은 영에잇티인가. 부정적인 의미는 하나도 없는 아무나 따라 할 수 없는 영세븐티를 나는 오늘 버스에서 만났다. 그 할아버지 덕분에 아무 데도 가기 싫은 날이 가길 잘 한 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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