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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미 Apr 28. 2023

글쓰기도 장비빨인가

일상 기록

글쓰기도 장비빨인가 생각해 보았다. 괜히 산책하는 길에 하이마트에 가서 휴대성이 좋은 노트북을 본다. 진열해 놓은 노트북은 다 백만 원에서 이백만 원까지 한다. 장비가 너무 비싸군. 내가 김영하 작가만큼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 하나 살 수 있으려나. 아니 왜 갑자기! 감히 김영하 작가를 생각해 냈을까. 아마도 우리 동네 도서관 소식에서 김영하 작가 사진을 보아서 그럴 것이다. 글로 돈 벌어보지도 않았으면서 별생각을 다 한다. 정말 웃기지도 않아 혼자 썩소를 날리며 하이마트에서 나온다. 


밤에 몰래 도둑질하듯, 맛난 것을 아껴가며 핥듯이 그렇게 조금씩 글쓰기를 즐겨 왔다. (중략) 서재에서 당당히 글을 쓰는 나는 정말 꼴불견일 것 같다. 요 바닥에 엎드려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뭔가 쓰는 일은 분수에 맞는 옷처럼 나에게 편하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_박완서> 중에서


사실 나도 남편을 제외하고 주위에 친분이 있는 누구에게도 글을 쓴다고 말하지 않았다. 남편도 내가 도대체 무슨 글을 쓰는지 알지 못한다. 하이마트 갔다 나오는 길에 동네 엄마를 우연히 마주쳐 노트북을 보고 나오는 길이라고 말하며 대화가 시작되었는데 휴대하기 좋은 노트북이 왜 필요하냐고 물어서 그냥 블로그나 좀 해 볼까 한다고 대충 말하고 넘겼다. 사실 블로그에도 10년째 글을 쓰고 있는데 말이다. 박완서 작가의 분수에 맞는 글쓰기란 밤에 이불 뒤집어쓰고 남몰래 야금야금 쓰는 것이라면 나의 분수에 맞는 글쓰기는 가족이 모두 나간 집에서 조용히 홀로 쓰다가 아이가 하교하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시치미 떼고 간식을 챙겨주는 아무도 보지 않는 그림자 같은 글쓰기이다. 그런 내가 갑자기 집 밖에서 한번 써볼까 생각했다가 하루도 채 지나기 전에 마음을 돌렸다. 백만 원짜리 장비는 분수에 맞지 않고 집구석에서 몰래 쓰던 사람이 나가서 노트북 펼쳐 놓고 쓰다가 누구라도 만나면 숨고 싶을 것 같다. 역시 몰래 쓰는 글이 제 맛이지.


만일 내가 인기 작가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면, 온 세상이 부끄러워 밖에도 못 나갈 테니 딱한 일이지만, 그렇게 될 리도 만무하니 또한 딱하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_박완서> 중에서


그렇게 되고도 남으신 박완서 작가님이 이런 생각을 하셨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나야말로 인기 작가가 될 리는 만무하니 나를 위한 비싼 노트북을 살 일은 앞으로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저 상상만 해 보자. 세상이 바뀌어 인기 작가가 된다고 해도 내가 어필하지 않는 이상 날 알아볼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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