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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미 May 11. 2023

아주 편안한 죽음_시몬 드 보부아르

찐따는 화창한 봄에 '죽음'에 대한 책을 읽기가 망설여진다. 우울해질까 봐 슬퍼질까 봐 내 깊은 곳에 있는 두려움이 소용돌이칠까 봐 진짜 찐따 같이 망설인다. 이 책을 꼭 읽어야 하나 생각하며 책을 펴는데 예상외로 쭉쭉 읽힌다. 많이 우울하지도 슬프지도 않다. 왜일까.


자전적 소설인 이 책은 너무 현실적으로 엄마의 투병을 그린다. 엄마의 아픔을 둘러싸고 있는 병원의 실체부터 수술을 앞두고 선택해야 하는 갈등과 죄책감까지 하나하나 너무 섬세하고 현실적이다. 죽음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했던 나는 이 책을 펴자마자 '내가 죽음에 대해 착각했었구나.'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역시나 엄마와 딸의 관계에 대한 부분에서 많이 공감이 됐다. 엄마의 행동이, 사고방식이 마음에 안 들면서도 나도 엄마와 닮았다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된다. 저자는 닮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매정하게 엄마의 태도를 비난한다. 죽음을 앞둔 엄마의 인생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문제점을 지적한다. 놀라운 것은 나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나도 똑같이 엄마의 인생 그리고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길 때가 너무 많다.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은 어렸을 때부터 항상 있었던 거 같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뒤돌아서 보니 내가 엄마처럼 살고 있다는 것이다. 


소유욕과 지배욕이 강했던 엄마는 우리를 자신의 손아귀에 완전히 가두어 두려고 했다. P51
"내게는 권리가 있다." 우리를 짜증 나게 했던 이 말이 사실 엄마에게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걸 증명해 보이는 말이기도 했다. P53


제목 <아주 편안한 죽음>은 역설적이다. 삶의 고통에 비교하면 오히려 죽음은 편안하다. 하지만 실제로 편안한 죽음은 없다. 엄마의 인생과 나의 인생을 비교하고 나의 정체성, 종교, 관계, 마지막 순간까지. 이 모든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아주 편안한 죽음>은 평점 5점이 아쉬운 책이다. 페이지 수가 적고 얇아도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이 보여준다.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 인간에게 닥친 일 가운데 그 무엇도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는 그 자체로 세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하지만 각자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사고다. 심지어 자신이 죽으리라는 걸 알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에 해당한다.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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