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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미 Oct 02. 2023

냉장고에 썩어가는 음식처럼

유통기한이 지나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 굳이 끄집어내서 버릴 생각을 안 한다. 나는 그것들을 한번 쓱 쳐다보고 냉장고 문을 닫는다. 썩어가는 음식들을 참 잘도 무시해 버린다. 하루 이틀 지남에 따라 그들은 어쩐지 내일 괴물로 변해있을 거 같다. 그러니 다음날은 더 건드리기 싫어진다. 내 나쁜 습관도 빨리 버리지 않으면 냉장고에 썩어가는 음식처럼 썩어갈 것이다. 이 빌여 먹을 습관. 섞을 것을 뻔히 알면서 버리지 않는 이 습관이 내 냉장고를 그리고 나 자신을 괴물로 만든다.


드디어 썩은 그들을 버렸을 때 다시 썩힐 음식들을 차곡차곡 쌓아 넣는다. 다시 그것들이 괴물이 될 것을 알면서. 인생은 결국 반복의 연속인가. 나는 그것들에게 미안하다. 너무 무시를 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계속 반복적으로 무시를 한다. 아주 가끔 무시를 안 하고 다 먹어치우고 나면 뿌듯하면서도 뭔가 나답지 않다. 집에 있는 전자제품 중에서 냉장고가 가장 중요하면서도 미안하고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나는 냉장고에게 책임감을 느낀다. 요리해 줘야 하는데. 청소해 줘야 하는데. 관심을 안 가지면 먹을 것이 없는데. 그러다 한 번씩 끝없이 무시한다. 냉장고 넌 왜 계속 내 관심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 계속 무시하고 싶다. 관심을 끄고 싶다 하면서 나는 또 냉장고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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