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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미 Nov 24. 2023

멜랑꼴리 한 주부의 생존법

<비터스위트_수전 케인>

평소 이웃 블로그를 읽거나 SNS를 볼 때마다 저 사람들은 어쩜 저렇게 에너지가 넘칠까 생각을 했다. 난 거의 항상 영화 <인사이드아웃>의 슬픔이처럼 마음이 촥 가라앉아 있는데 보통 사람들은 안 그런 모양이다. 그러다 문득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난 정말 우울한 사람인가 보다.'라는 생각을 해 버린다.


어릴 적 살림살이 다 때려 부수며 싸우던 부모님의 영향인지 술이 한번 들어가면 멈출 줄 모르셨던 아빠의 영향인지 아니면 항상 저혈압인 나의 체질 때문인지 나는 정말 멜랑꼴리 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극단적인 생각을 할 만큼 슬프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텐션이 거의 없다고나 할까.

나 같은 사람이 엄마가 되어 하늘을 치솟는 아이의 텐션은 당연히 못 따라가고 그렇다고 쳐져 있을 수는 없으니 육아가 10배로 힘들다.


그러던 중 수전 케인의 <비터스위트 Bitter Sweet>라는 책을 도서관에서 접하게 되었다. 다른 책을 빌리러 갔다가 옆에 꽂힌 이 책을 정말 우연히 발견했다. 2022년에 발간된 책으로 그동안 아무런 리뷰를 본 적이 없었는데 내 눈에 띈 것이 운명이었나 보다. 책과의 운명이라.


이 책에서 슬픔의 쓸모에 대해 영화 <인사이드아웃> 제작 과정을 예를 들며 설명을 한다. 픽사 감독 픽트 닥터가 슬픔이를 주인공으로 할 것인지를 두고 많은 고민을 하는데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의 심리학 교수인 대커 켈트너가 감정의 과학에 대해 직원 교육을 하면서 결국 슬픔이가 주인공으로 정해졌다고 한다. 켈트너 교수는 슬픔이가 연민을 자극해 사람들의 관계를 돈독하게 이어준다고 설명했다. 켈트너는 수전 케인에게 "슬픔은 제 정체성의 핵심 요소예요."라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슬픔이 정체성의 요소가 될 수 있다니. 그럼 나의 감정이 나의 정체성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왜 육아를 소재로 슬프거나 무서운 이야기를 픽션으로 쓰기 시작했는지를 이 책을 읽고 이제야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육아맘들이 돌파구를 찾기 위해 기록하고 글을 쓴다. 육아맘뿐만이 아니라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을 살고 있는 직장인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켈트너가 나에게 들려준 말처럼 "관심 갖기는 인간 존재의 핵심이며 슬픔은 곧 관심 갖기이다. 그리고 슬픔의 어머니는 연민"이라는 점 또한 보여준다. p.056
슬픔에는 우리에게 절박하도록 부족한 '영혼들의 결합'을 끌어내는 힘이 있다. p.59


나는 슬픔을 픽션에 투사함으로써 은근한 해방감을 느꼈다. 쓰는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연민을 느끼며 독자도 함께 느끼길 바랐던 것 같다. 나 같은 멜랑꼴리 한 사람은 어떤 방법으로든 어두운 면을 표현하지 않으면 깊은 바다의 바닥까지 내려앉아 그 중력에 못 이겨 그대로 익사해 버릴 것이다. 여기서 음악, 미술, 글쓰기와 같은 예술이 좋은 방법이 될 수밖에 없다. 슬픔은 어쩌면 창의력의 출발점인지도 모른다. 남과 비교해 자신은 이유 없이 슬프다고 우울하다고 자신을 다그칠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억지로 올라가지도 않을 텐션을 올릴 필요도 없다. 바닥에 가라앉지 않을 만큼 슬픔의 힘을 이용해 표현 해 보자. 그 슬픔은 우리가 걸어가는 길에 밝고 소중한 빛을 비춰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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