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글을 쓰는가

40여 년 전, 두 권의 책이 내 안에 심은 씨앗

by 느루숨

문장이 된 숨결

글은 내 삶을 지탱하는 숨결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창을 여는 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붙잡을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도구이기도 하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라는 물음은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마음속에서 자라난 질문이었다. 그 씨앗은 군 복무 시절, 처음 마주한 두 권의 책에서 비롯되었다. 이름 대신 군번으로 불리던 낯선 시간 속에서, 그 책들은 나를 '나'로 되돌려주었다.


군대는 개인이 사라지는 공간이었다. 새벽 출동부터 소등까지 반복되는 일과 속에서 나라는 존재는 점차 희미해졌다. 전투복과 명령 사이에서 마음은 길을 잃었고, 숨이 막혀왔다. 그 시절의 나는 물밖에 던져진 물고기처럼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감정을 안고, 나만의 방식을 찾아야만 했다.


책이 건넨 첫 문장

첫 휴가를 마치고 부대 복귀 전, 시내 서점에 들렀다. 무심히 걷던 책장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제목이 시선을 붙잡았다. 추천도 소개도 없었지만, 그 물음이 곧 내 물음이 되었다. 책을 집어 들고 아무 망설임 없이 계산을 마쳤다. 복귀 버스 안에서 펼쳐 든 책장은 내 마음속 무언가를 건드렸다. 문장은 조용히 내 안에 스며들었고, 나는 다시 살아 있음을 느꼈다. 그 책은 단순한 활자가 아니라, 숨을 쉴 틈을 만들어주는 생명의 통로였다. 버스 안의 진동보다 더 강하게 나를 흔든 그것은 책 속 한 문장이었다. 어쩌면 그 문장을 읽기 위해, 그날의 나는 서점에 들렀는지도 모른다.


며칠 후 면회를 온 연인이었던 지금의 아내에게 책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는 조용히 듣고 있다가 다음 면회 날 안병욱 교수의 『고독을 위하여』를 건넸다. "너한테 어울릴 것 같아서." 그 말과 함께 내 손에 쥐어진 책은 이후 내 삶의 방향이 되었다. 낯선 세상 안에서 나는 책 속 문장을 따라 내면을 지켜내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서 전해받은 문장은 곧 나를 지키는 언어가 되었다.


고요한 글, 흔들리지 않기 위하여

김형석 교수는 말했다.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산다. 그리고 그 사랑 속에서 완성된다." 그전까지는 살아남는 것, 인정받는 것이 전부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문장은 삶의 본질을 새롭게 바라보게 했다. 안병욱 교수는 덧붙였다. "고독은 인간을 성숙하게 한다." 고독은 외로움과 달랐고,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의 가치를 새겨주었다. 내면과의 고요한 대화 속에서 삶의 중심을 다시 잡게 되었다.
막사 구석, 병사들이 잠든 밤이면 나는 책 속 문장을 곱씹었다. 어느 날, 가슴속에서 올라온 문장을 군 수첩에 적었다. 형식도 문법도 없었지만, 그것이 나의 첫 글이었다. 그 낙서 같은 문장은 내 안의 고요를 깨웠고, 말이 되지 않는 언어로 나를 표현하게 했다. 거칠게 눌러쓴 글씨는 내 불안을 담아주었고,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었다. 글은 나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었고, 세상과 나를 잇는 조용한 문이 되었다.


다시 시작된 문장의 습관

제대 후, 나는 글과 멀어졌다. 취업, 직장, 결혼, 육아로 이어지는 삶 속에서 내 언어는 메말라갔다. 회사 보고서와 엑셀 파일 사이에서 문장들은 숨을 죽였다. "여유가 생기면 다시 쓰겠지"라고 자위했지만, 그 '여유'는 오지 않았다. 출퇴근길에 떠오른 문장 하나, 아이를 재우다 떠오른 기억 하나, 새벽에 떠오른 단어 하나가 나를 다시 붙들었다. 메모장, 휴대폰, 냅킨 위에 적은 단편들이 쌓였다. 글은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비록 목소리 내지 못한 많은 날들이 있었지만, 마음속에는 늘 문장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삶이 주는 크고 작은 감정들을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나는 다시 펜을 들었다. 다시 시작된 글쓰기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숨결로 내 일상에 녹아들었다.
서른 해가 지나고 은퇴한 지금, 나는 다시 글 앞에 앉는다. 수첩 대신 키보드를 두드리며 하루를 기록한다. 창밖을 보며 계절을 느끼고, 감정을 가만히 붙잡는다. 특별한 것 없는 날의 감상들이 글이 되어 쌓여간다. 글쓰기는 내 존재를 확인하는 의식이 되었고, 마음을 정돈하는 조용한 기도가 되었다.


느루숨처럼, 오늘도 쓴다

나는 천천히 숨 쉬듯 글을 쓴다. 어떤 날은 한 줄을 쓰는 데 반나절이 걸리기도 하고, 어떤 날은 한 장이 훌쩍 지나가기도 한다. 빠르지 않아도 좋다. 중요한 것은 진심이다. 느릿한 숨결처럼 이어지는 문장이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기를 바란다. 조용한 문장은 때로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한 줄 한 줄 써 내려가는 동안, 나는 내 안의 숨을 들여다본다. 글은 거창한 목적이나 수사를 위한 것이 아니다. 나를 마주하고, 내면의 진동을 붙잡기 위한 도구다. 골목길에서 들려온 아이들의 웃음소리, 담벼락 아래 핀 이름 모를 꽃, 우연히 마주친 노인의 눈빛 같은 순간이 글이 된다.


그렇게 쓴 글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40년 전의 책이 내게 그러했듯이. 우리는 각자의 섬이지만, 글이라는 다리를 통해 서로의 마음에 닿을 수 있다. 내가 책 속에서 두 스승을 만났듯, 언젠가 내 글도 누군가에게 도달할 것이다. 나는 오늘도 차 한 잔을 옆에 두고 글을 쓴다. 지나간 기억과 현재의 감각,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의 마음까지 담는다. 문장을 다듬는 행위는 결국 나 자신을 다듬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은 살아 있다는 것의 확인이며, 고요한 싸움이다.
삶은 이해가 아니라 체험이며, 글은 그 체험의 증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움직임을, 문장이야말로 가장 온전하게 담아낼 수 있다. 내 문장이 누군가의 밤을 덜 외롭게 하고, 아침을 조금 더 환하게 열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울림이 또 다른 누군가의 내면을 두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나는 왜 글을 쓰는가. 그것은 숨 쉬기 위해서다. 글이 없는 삶은 숨 없는 삶이다. 40년 전 심어진 두 권의 책이라는 씨앗은 나무로 자랐고, 이제는 매일 새잎처럼 문장을 틔운다. 그 문장이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또 누군가에게 이어질 때, 우리는 글을 통해 한 호흡으로 이어진다. 글은 내 삶을 지탱하는 조용한 숨결이자, 나의 하루를 정리하는 마지막 문장이 된다.
오늘도 나는 창가에 앉아 다음 문장을 떠올린다. 숨을 고르듯 문장을 적는다. 그 문장이 살아 있는 증거가 되고, 누군가의 밤을 건너는 등불이 되기를 바란다. 글은 내 삶을 지탱하는 숨결이다. 그리고 이 숨은, 내가 나로서 살아 있다는 조용한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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