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이번 여름 첫 복숭아를 먹었다. 늦은 저녁에 집에 돌아오니 시골에서 보내주었다는 복숭아가 있었다. 여름 복숭아. 여름 제철 음식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복숭아인데 그중에서도 딱딱한 복숭아를 좋아한다. 이번 것은 특히 달고 맛있었다. 냉장고에 넣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미지근한 감이 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맛있게 복숭아를 베어 물었다. 그 한입에 이 여름의 모든 기억이. 그 하루의 모든 지난함이 씻겨 내렸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말일까?
그날은 유독 하루가 길다고 느껴진 날이었다. 7월의 장마도 이제 다 보낸 줄 알았는데 자꾸만 비가 왔다. 햇살이 오후 열두 시처럼 쨍쨍한데 비가 내렸다. 이상기후를 여실히 체감했다. 몰랐는데, 햇빛이 뜨거울 때 내리는 비는 훨씬 덥고 기분이 두 배로 나쁘다. 이제는 양산으로만 쓸 줄 알고 챙겼던 우산을 펼쳤다. 여름은 이해해도 장마는 싫은데. 더운 건 어쩔 수 없어도 습한 건 못 참는데. 하필이면 아르바이트 나온 김에 학원까지 해치우는 날이었으므로, 짜증은 더욱 커져만 갔다. 이런 날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데 어떻게 여름을 좋아할 수 있을까.
어쩔 수 없이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여름만큼이나 비를 싫어한다. 일부러 싫어하려고 노력해도 따라 하기 힘들 만큼이나 싫어한다. 보통은 집에 있을 때 내리는 비는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꽤 있지만 나는 그마저도 허용할 수 없다. 내방 창틀에는 플라스틱 차양이 달려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우박이 정수리에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일정한 소음에 약한 나에게는 그만한 고문도 없다. 비 냄새도 마찬가지다. 길의 냄새가 조금씩 진해진다. 그게 향긋하게 느껴지는 때는 드물다. 다만 집에 있는 강아지의 구수한 냄새가 진해지는 것만큼은 좋다.
오후의 소나기는 한껏 불쾌함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역에 도착한 나는 집에 가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음에도 지치고 말았다. 거대한 찜기 속 만두가 된 나를 불쌍히 여기며 털썩 주저앉은 역사 안 벤치 옆자리에는 술 냄새가 풍기는 할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차라리 넋을 놓는 게 나의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았다. 아무것도 탓하지 않고 떠올리지 않기. 아예 생각을 비워버리는 것이 요즘 길거리에서 내가 선택한 생존 방법이다.
20분 동안 기다리다가 탄 지하철은 평소와 다르게 한산하고 시원했다. 앞에 선 사람의 쇼핑백에 크기가 꽤 큰 카피바라 인형이 있었다. 그게 뭐라고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내릴 땐 내리는 사람 먼저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화가 났다. 역사를 빠져나와 가로수 길을 걸을 땐 초록 잎 무성한 풍경을 보며 옅게 웃었다.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려준 사람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탄 버스에 앉았다. 이제 하루가 끝나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에어컨에서 뜨거운 바람이 나와 슬슬 열이 받을 즘 내렸다. 사소한 일에도 기분이 왔다 갔다 한다. 기쁜 마음도 금세 잊히고 화난 마음도 역시 단순하게 그쳐버린다. 여름은 이렇게 자꾸 뭔가를 지우고 덧입히는 계절인가 보다. 그것이 더위든 기쁨이든 분노든 말이다.
그런 하루를 보내고 난 후에 먹은 복숭아가 맛이 없기도 힘들다. 딱 이 시기에만 먹을 수 있는 복숭아라고 했다. 작년에도 내가 이 복숭아를 먹었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복숭아보다는 수박을 먹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분명 작년에도 그 여름을 버티게 했던 무언가가 있었을 텐데. 나에게는 그저 덥고, 힘겨웠던 느낌만 진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빨리 날씨가 선선해지고 겨울이 오면 좋겠다고. 선풍기를 켜지 않고도-참고로 나는 선풍기의 소음마저도 싫어한다- 포근한 면 이불을 덮고 잘 수 있는 날이 오면 안 되겠냐고 되뇌던 날들이 더 많았다.
내 입안에서 투박하게 조각나는 복숭아를 씹으면서 생각했다.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은 잘 잊는 사람인지, 잘 기억하는 사람인지. 여름 복숭아 한 입에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사람인지, 기억해 낼 수 있는 사람인지. 그리고 아직까지도 여름에 정을 붙이지 못한 나는 어느 쪽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