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관대해지기
오늘은 새벽요가 가는 날
새벽 6시 30분 수련을 가려면 집에서 여유 있게 새벽 5시쯤에 일어나야 한다. 대략 1년 9개월 간 새벽 요가를 가고 있지만, 아침잠이 많은 나는 여전히 새벽에 일어나는 게 힘들다.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는다.
오늘도 꾸역꾸역 알람을 끄고 일어나는데 너무 귀찮았다.
'아, 너무 힘들고 귀찮아.'
평소 같았으면 아 너무 싫다, 그래도 가야지 하고 나를 다그쳐서 일으켜 세웠을 텐데, 오늘은 '그래, 가기 싫고 귀찮지. 당연히 힘들지, 많이 힘들고 귀찮지?' 하고 내 마음을 받아줬다.
그러고 나니 날마다 아침잠을 이겨내며 학교에 가고 회사에 가던 날들이 떠올랐다. 나는 시골 깡촌에서 자라서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40분 거리를 버스로 오가며 학교를 다녔다. 처음 전학 갔던 날, 이 짓을 어떻게 맨날 하지 싶어서 낙담했던 기억이 난다. 이상하게 "엄마, 나 그렇게 먼 학교 가기 싫어. 무섭고 힘들어."라고 털어놓았던 기억은 없다. 그냥 어찌어찌 참고 다녔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는 새벽같이 일어나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서 도착하면 내가 늘 첫 번째로 교실 문을 열었다. 그렇게 아침잠을 실컷 자본 기억이 없이 학교를 다녔다. 어른이 되어 사회에 나와 회사 다닐 때는 다들 그렇듯 알람을 수십 개 설정해 놓고 끄고 또 끄기를 반복하며 겨우 일어나 출근을 했다. 그렇게 살아온 날이 얼마나 길었던가.
심지어 사회 초년생 시절에는 야근하느라 새벽 1시에 퇴근해서 새벽 5시에 회사를 간 적도 있다. 지하철도 안 다니는 시간에 출근을 해야 해서 택시를 잡아타고 회사에 갔다. 그래도 지킬 건 다 지켰다. 학교에 다닐 때도 회사에 다닐 때도 지각 한 번 하지 않고 성실히 등교하고 출근했다. (가슴이 뜨끔해서 이실직고하자면 회사 다닐 때, 실수로 알람을 못 들어서 딱 한 번 지각한 적은 있다.)
그런 나에게 나는 늘 다그쳤다. "왜 이렇게 게을러, 왜 이렇게 아침잠이 많아. 이러니까 네가 이 모양이지." 나한테 너무 가혹하게 굴었다. 쉬는 주말에도 "자기 계발이라도 해야지, 주말마다 늘어지게 자고 이래서야 되겠어? 내가 정말 한심해." 이런 생각들로 정작 편하게 쉬지도 못했다.
그런 날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렇게 살아온 날을 돌이켜보니 나 자신에게 너무 미안했다. 얼마나 억울했을까 자기는 나름 힘든 와중에 일찍 일어나 보겠다고 젖은 솜뭉치 같은 몸을 일으켜 꾸역꾸역 출근했는데. 돌아오는 건 언제나 채찍질 뿐이었으니. 내 안에 어린아이가 산다면 억울해서 잠도 안 올 것 같았다.
어릴 때 잠도 실컷 못 자고 이른 아침 학교 가던 아이인데, 늦잠 좀 자면 어떻다고 그렇게 닦달을 했는지... 내가 너무 가엾게 느껴졌다.
물론 가슴에 손을 얹고 부지런하게만 산 것은 아니었다. 엉망진창 방황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매일 완벽할 수 있겠는가.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지. 그런데 못한 거만 가지고 시도 때도 없이 매를 때리니 얼마나 괴로웠을까. 게다가 엉망진창일 때도 그래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을 텐데, 속마음을 좀 들어줄 걸 그랬다. 나에게 좀 관대할 걸 그랬다.
자기 계발서에서 아무리 나에게 관대해지라고 해도 머리로는 '맞아!' 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어떻게 얘를 좀 다그쳐서 완벽하게 만들어볼까만 궁리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요가원에 도착해서 명상을 하는데 한 가지 깨달음이 찾아왔다. 나는 긴장이 많은 사람이다. 요가 선생님도 나에게 몸에 긴장이 많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쉽게 긴장하고 불안해하는 편이다.
나는 그 긴장이 외부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살아왔던 환경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나한테 매일 같이 다그치고 쏘아대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였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뭐라고 할까 봐 긴장하고 위축되는 게 아니라, 내가 나에게 뭐라고 할까 봐, 나 자신에게 한소리 들을까 봐 움츠러드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나 자신한테 한없이 미안해졌다. 타인은 거리를 두거나 멀어질 수라도 있지, 나와는 매 순간 온전히 함께인데 매일 나를 다그치고 닦달하고 쏘아붙이는 사람이랑 한시도 떨어질 수 없는 상황이라니 얼마나 지옥 같았을까.
눈물이 나올 뻔했다. 머리로만 이해하던 말들이 가슴으로 이해가 되었다. 책을 한 줄 읽어서 마음에 새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들여다보고 공감하는 과정이 없다면 진정한 앎은 찾아오지 않는 사실도 깨달았다.
나에게 관대해지자.
아무리 완벽해진다 한들 내 마음이 문드러져 있으면 무슨 소용일까. 게다가 완벽하려고 해 봤자 완벽해질 수도 없다.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니까. 불완전함의 미학이라고 했던가. 완벽하지 않아서 아름다운, 모자라서 귀여운 나 자신을 받아들여주자. 우연한 실수가 진화를 만들어 내듯이, 우리의 불완전함이 무엇을 만들어낼지 살짝 기대도 해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