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번역가, 숨만 쉬는 날들 13

솔직해도 괜찮아

by 강아지 번역가



"어떤 사람이 제일 싫어요?"라고 물으면 나는 언제나 이렇게 대답했다.


"솔직한 사람이요. 무례하게 자기 하고 싶은 말 다하는 사람이 싫어요."


물론 개중에는 솔직과 무례를 구분 못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솔직하다고 해서 다 무례한 건 아닌데, 나는 유독 솔직한 사람을 싫어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내가 할 말 다 하는 솔직한 사람과 결혼했다는 사실이다. 우주는 이렇게 농담을 좋아한다.


나는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다. 싫은 건 싫다고 속시원히 말하지 못했다. 누가 나를 괴롭혀도 누가 나를 오해해도 누가 나를 부당하게 대해도 꾹 참았다. 심지어 '내가 그러지 않았다면 안 그랬을 텐데.' 하고 늘 나를 탓했다. 솔직히 말하면 버림받을까 봐, 그게 무서워서 방어기제로 나를 탓했던 것 같다. 아마 어린 시절부터 뿌리내린 굳은 습관이지 않을까 싶다.


나 자신을 남에게 표현할 때도 그랬다. 버림받을까 봐, 사랑받고 싶어서 착한 척 말하거나, 나 자신을 한껏 부풀려서 좋은 사람인 척, 괜찮은 사람인 척 말하기도 했다. 열등감의 발로라고나 할까.


사랑받고 싶어서, 버려질까 봐 내 마음을 숨기며 산다는 사실조차 모르던 내가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내가 얼마나 가식적인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다. 늘 착한 척, 괜찮은 척, 잘난 척하면서 모자란 나를 숨기고 또 숨기려고 예쁜 포장지를 찾았다. 그렇게 포장을 하면서 살았다.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도 모르고.


내 주변 사람들은 눈치채고 있었을 거다. 한껏 몸집을 부풀리고 있지만 내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무리 예쁜 포장지로 싸 놓아도 내용물을 숨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람에게는 느낌이라는 게 있으니까.


아마 솔직한 사람들이 너무 부러워서 그들을 미워했던 모양이다. '나도 싫은 건 싫다고 말하고 싶어. 나도 나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싶어.' 그런 욕구가 질투로 발현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내 민낯을 확인하고 나니 진심으로 솔직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요즘은 솔직한 사람이 제일 멋지다고, 솔직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대놓고 떠들고 다닌다.


그렇게 내 안에 가식을 확인하고 나니 남에게 드러내려고 하던 말들이 줄어들었다. 주변 사람의 성공을 내 성공인 양 말하던 습관도 사라졌다. 오히려 진짜 별거 아닌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 심리상담센터를 다니기 시작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고 근 5년을 헤매고 다녔는데, 안절부절못하던 때보다는 훨씬 나아졌지만, 그래도 내 인생에 도무지 풀리지 않는 것들이 있어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처음 상담에 간 날, 주저리주저리 나에 대해 떠들고 난 뒤 마칠 시간이 되었을 때, 선생님이 나에게 물었다.


"지금 기분이 어때요?"

"가슴이 답답해요. 근데 괜찮아요."

"안 괜찮잖아요? 가슴이 답답하잖아요?"

"네, 답답해요."


"그럼 저한테 비싼 돈 주고 왔는데 상담해도 가슴이 답답하잖아요 하고 저한테 화를 내세요. 욕을 하셔도 돼요. 솔직하게 다 말하셔도 돼요."


선생님의 말에 울컥했다. 그래, 솔직해도 되는구나. 솔직해도 되는데. 내가 나를 얼마나 억누르고 살았는지 나름 솔직해졌다고 생각했는데도 아차 싶었다. 솔직하고 싶다는 말 자체가 아직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방증이겠지. 첫 상담에서 마지막 말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 한마디에 나는 그 심리상담센터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기로 했다. 그렇게 감사하게 좋은 선생님을 만나 상담을 이어가고 있다.



솔직해도 괜찮아.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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