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해도 괜찮아
"어떤 사람이 제일 싫어요?"라고 물으면 나는 언제나 이렇게 대답했다.
"솔직한 사람이요. 무례하게 자기 하고 싶은 말 다하는 사람이 싫어요."
물론 개중에는 솔직과 무례를 구분 못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솔직하다고 해서 다 무례한 건 아닌데, 나는 유독 솔직한 사람을 싫어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내가 할 말 다 하는 솔직한 사람과 결혼했다는 사실이다. 우주는 이렇게 농담을 좋아한다.
나는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다. 싫은 건 싫다고 속시원히 말하지 못했다. 누가 나를 괴롭혀도 누가 나를 오해해도 누가 나를 부당하게 대해도 꾹 참았다. 심지어 '내가 그러지 않았다면 안 그랬을 텐데.' 하고 늘 나를 탓했다. 솔직히 말하면 버림받을까 봐, 그게 무서워서 방어기제로 나를 탓했던 것 같다. 아마 어린 시절부터 뿌리내린 굳은 습관이지 않을까 싶다.
나 자신을 남에게 표현할 때도 그랬다. 버림받을까 봐, 사랑받고 싶어서 착한 척 말하거나, 나 자신을 한껏 부풀려서 좋은 사람인 척, 괜찮은 사람인 척 말하기도 했다. 열등감의 발로라고나 할까.
사랑받고 싶어서, 버려질까 봐 내 마음을 숨기며 산다는 사실조차 모르던 내가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내가 얼마나 가식적인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다. 늘 착한 척, 괜찮은 척, 잘난 척하면서 모자란 나를 숨기고 또 숨기려고 예쁜 포장지를 찾았다. 그렇게 포장을 하면서 살았다.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도 모르고.
내 주변 사람들은 눈치채고 있었을 거다. 한껏 몸집을 부풀리고 있지만 내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무리 예쁜 포장지로 싸 놓아도 내용물을 숨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람에게는 느낌이라는 게 있으니까.
아마 솔직한 사람들이 너무 부러워서 그들을 미워했던 모양이다. '나도 싫은 건 싫다고 말하고 싶어. 나도 나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싶어.' 그런 욕구가 질투로 발현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내 민낯을 확인하고 나니 진심으로 솔직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요즘은 솔직한 사람이 제일 멋지다고, 솔직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대놓고 떠들고 다닌다.
그렇게 내 안에 가식을 확인하고 나니 남에게 드러내려고 하던 말들이 줄어들었다. 주변 사람의 성공을 내 성공인 양 말하던 습관도 사라졌다. 오히려 진짜 별거 아닌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 심리상담센터를 다니기 시작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고 근 5년을 헤매고 다녔는데, 안절부절못하던 때보다는 훨씬 나아졌지만, 그래도 내 인생에 도무지 풀리지 않는 것들이 있어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처음 상담에 간 날, 주저리주저리 나에 대해 떠들고 난 뒤 마칠 시간이 되었을 때, 선생님이 나에게 물었다.
"지금 기분이 어때요?"
"가슴이 답답해요. 근데 괜찮아요."
"안 괜찮잖아요? 가슴이 답답하잖아요?"
"네, 답답해요."
"그럼 저한테 비싼 돈 주고 왔는데 상담해도 가슴이 답답하잖아요 하고 저한테 화를 내세요. 욕을 하셔도 돼요. 솔직하게 다 말하셔도 돼요."
선생님의 말에 울컥했다. 그래, 솔직해도 되는구나. 솔직해도 되는데. 내가 나를 얼마나 억누르고 살았는지 나름 솔직해졌다고 생각했는데도 아차 싶었다. 솔직하고 싶다는 말 자체가 아직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방증이겠지. 첫 상담에서 마지막 말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 한마디에 나는 그 심리상담센터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기로 했다. 그렇게 감사하게 좋은 선생님을 만나 상담을 이어가고 있다.
솔직하게 살지 못한 세월이 얼만데 당장 솔직한 나로 거듭날 수는 없다는 사실도 받아들이면서, 나는 오늘도 솔직한 나를 꿈꾼다. 적어도 내가 나 자신에게만큼은 솔직하자고 솔직해도 된다고, 나는 네 편이니까 편하게 말하라고, 네 얘기를 듣고 싶다고 오늘도 나는 나 자신에게 말을 건다.
솔직해도 괜찮아.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