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번역가, 나를 되찾는 여정 14

세상이 나에게 준 것

by 강아지 번역가



세 번째 심리 상담 날


나의 커리어, 경제 문제에 관한 답답함을 주로 토로했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한없이 작아지는 내 모습,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패해야 하는 현실과 그에 따른 좌절감, 금전적 불안 등을 이야기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번역가로 일하면서 수입이 변변치 않았다. 그래서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게 되었고, 남들은 나를 욕하겠지만 나 스스로도 나를 '기생충' 같다고 생각할 만큼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내 마음을 다잡으려고 수도 없이 노력했지만 올라오는 좌절감은 막을 길이 없었다. 내가 짐이라는 죄책감마저 들었다.


돈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인지 '돈은 힘들게 버는 거야', '돈은 나를 힘들게 해'라는 관념들에 묶여 있는 탓인지 돈은 나에게 족쇄같이 느껴졌다. 돈을 벌어야 해, 다른 수입원을 찾아야 해 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 또 상처받고, 고통스러워지겠지' 하는 트라우마 발작 증상이 생겨서 다른 일로 돈 벌 용기도 나질 않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상담 선생님도 나를 얼마나 한심하게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SNS에 흔히 도는 댓글들처럼 나를 남편 등쳐먹는 호구로 보지는 않을까 싶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자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SNS가 사람을 망치죠!"


대충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마음이 풀려나가서인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근데 제 힘은 아니지만 입에 풀칠하려고 당장 나가서 돈 벌어야 하는 처지가 아닌 것만 해도 감사한 거 같아요."


선생님은 듣던 중 반가운 말이라는 듯이 얼른 받아쳤다.


"○○ 님 힘이에요! ○○ 님이 고른 사람이잖아요. 부부가 얼마나 냉정한 관계인데요. ○○ 님이 쌓아 올린 게 있으니까 남편이 그렇게 해주는 거예요. 그럴만한 사람이니까 돌봐주는 거예요."



내가 짐짝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왜 늘 내 노력은 배신당할까 좌절하고 있었는데, 내 모든 노력이 헛된 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눈물이 터졌다.


샘플에서 떨어져도 다시 해보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빨개진 눈을 비비며 노동 착취 같은 부스러기 일이라도 어떻게든 해보려고 애를 쓰고, 마음이 힘들 때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도 하자' 싶어서 하천에 나가 쓰레기를 줍고, 세 시간씩 울면서 걷고 또 걷고, 무릎이 까지도록 백팔배 하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새벽에 요가하러 가고, 수도 없이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울고 또 울고 빌었던 시간들이 헛된 게 아니구나.


힘들 게 일하고 들어오는 남편한테 늘 버선발로 뛰어나가 "대들보님 고생했어요." 하고 웃으며 인사하고, 집이 깨끗해야 마음이 깨끗해진다는 믿음으로 남편을 위해 나를 위해 바지런히 집을 가꾸고, 남편 일 잘되라고 비전보드 만들어 주고 늘 지지해 주고, 예쁜 말 해주려고 노력한 모든 시간들이 헛된 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그것도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눈물이 났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하는 버선발로 뛰어나가 반겨주는 일, 그거 하나 바라는데 그게 없어서 펑펑 울던 분도 있다고 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진 분이었다. 그분은 다시 돌아간다면 그 직업도 다 포기하고 그저 가족이랑 따듯함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 님은 그분이 간절히 원하는 걸 가지셨잖아요."



나름 왕년에 감사 일기도 매일 쓰고, 감사라는 말을 자주 입에 올리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여전히 가진 것보다 못 가진 것에 초점을 두고 살고 있었다.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세상이 나에게 준 것들이 떠올랐다. 나는 늘 세상에 버려졌다고 생각했다. 일이 안 풀릴 때 '하나님, 왜 저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말하듯이, 신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했다. 아니 내가 이 모양이어서 세상이 나를 버린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상은 늘 나에게 주고 있었다. 상담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집에 무사히 돌아온 것도 세상이 나를 안전하게 데려다준 거였다. 세상은 내 진심에 늘 화답하고 있었다. 그게 꼭 내가 원하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고 내 멋대로 버려졌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누가 나에게 선물을 주거나 호의를 베풀면 언제나 갚아야 할 책무로 여겼다. 마치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어 세상이 그 사람을 통해 나에게 준다고 생각하면 감사히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상은 나를 언제나 사랑하고 있는데, 늘 주고 싶은데 내가 생각으로 가로막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나와 세상과의 관계를 인식하는 '인식' 자체가 뒤틀려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다.


세상은 나를 사랑하기에 사탕도 주지만 약도 준다. 세상은 "너 이거 먹어야 건강해져." 하고 약을 주는데 나는 쓴 약은 싫다고 사탕만 달라고 울고 불며 떼쓰는 아이와도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게 세상이 내게 준 선물처럼 여겨졌다.




세상은 나에게 주고 또 준다.

사탕과 약이라는 다양한 모양으로

사랑을 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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