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고, 결정하고, 받아들이고,
흘려보내기

by 코코지

같이 정해야지!

여행을 앞두고 먹을 걸 같이 정하자며 아내가 말한다. 사실 나는 먹는 것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해봐야 치킨, 도넛, 과자면 끝이고 혀도 둔하다. 오죽하면 유통기한이 지나서 상한 요구르트를 의심 없이 먹었고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가족들이 신기해했을 정도니까 말이다. 그에 반해 아내는 먹는 게 중요하다. 연애 시절 계란후라이의 반숙 노른자가 깨져서 마음 상해하던 아내의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결국 이런저런 얘기 하지만 아내가 먹고 싶은 걸 먹게 되어 있다. 하지만 아내는 나에게 묻는다. 뭐 먹지? 먹고 싶은 거 먹어! 같이 정해야지!


같이 일하는 동료가 있다. 그 동료는 젊다. 재능도 있고, 일도 곧잘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는데, 일 잘하는 동료는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 한 발짝 물러선다. 혼자서 못하겠어요. 결정장애가 있어서요. 같이해 주시면 안 돼요? 본인은 결정만 도와달라고 하지만 결정하려면 그동안의 진행된 일들을 검토해야 한다. 업무분장을 통해 나누어진 일이 나에게 넘어오는 순간이다. 옆에서 나름의 격려를 해주지만 피곤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이나 심리가 뚜렷하게 한가지일 수는 없겠지만, 내가 반복적으로 느끼는 것은 아내도 일 잘하는 동료도 결국 결정의 연습 부족 좀 더 정확하게는 결정에 대한 책임의 부담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몇 년 전 커리어의 방향에 대해서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부서 이동 같은 거였는데 분야가 달라서 고민이 되는 상황이었다. 당시 나름 신뢰하던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해봤지만 결국 결정은 네가 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그리고 나는 계속 다른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하고 또 물어봤다. 마치 누군가의 입에서 그래! 그렇게 하면 돈 많이 벌 거라는 확신을 듣고 싶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중에 유독 초등학생이 엄마에게 물어보는 것처럼 매달리다시피 상황을 공유하고 물어보던 지인이 있었는데, 결국 나의 성화에 못 이겼는지. 그냥 가고 싶으면 가라는 식의 이야기를 듣고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내가 이만큼 심각하고 걱정이 많은데 함께 상의해 주지 않는다니!! 실망이야!! 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아.. 내가 귀찮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남에게 너무 기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았을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앞으로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하지만, 또 어떤 결정의 순간이 오게 되면 내 안에서 타인에게 기대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때마다 생각한다. 나의 고민과 생각의 깊이가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문제에 대해 가장 크게 고민하는 사람은 당사자이다. 조언을 구할 때도 결정을 내려주는 사람보다는 양질의 정보와 경험의 깊이가 있는 사람을 찾아가야 한다. 따뜻한 위로와 공감, 눈물은 내가 움직일 힘을 준다면, 정보는 내가 최선이 결정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비슷한 정보를 가지고 결정했을 때 사람들의 결정은 다 비슷비슷하다. 당신의 결정이 최선이라고 믿어도 좋다.



그리고 너무나도 뻔한 이야기이지만 결정 이후에는 지나간 시간보다 다가올 시간에 집중해야 한다. 과거의 내가 싼 똥은 빨리 치우는 게 중요하지 왜 똥을 쌌냐고 추궁해봤자 이미 엎질러진 물이기 때문이다.


고민하고, 결정하고 받아들이고 흘려보낼 줄 아는 단단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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