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의사>의 실제 병원 후기
지난주 외래에서 만난 80대 환자분 한 분이 계셨습니다.
보호자분이 부축해서 간신히 진료실에 들어오셨는데,
걸음걸이를 보는 순간 '아, 이건 좀 복잡하겠구나' 싶었죠.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저리고, 게다가 당뇨까지 오래 앓으셨다는데...
솔직히 이런 경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매일 아침 출근하면
'오늘은 또 어떤 통증으로 고생하시는 분을 만나게 될까' 생각하며
진료실 문을 열고 있습니다.
특히 말초신경병증으로 걷지도 못하는 환자분들을 볼 때면,
꼭 다시 일어나게 만들고 싶어지곤 합니다. ^^
오늘도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를 듣고 답을 찾아드리려 노력하는
콕통증의학과 신경과 전문의 조성호입니다.
오늘은 앞서 만난 환자분 이야기를 해드리려고 합니다.
사실 이 케이스가 특별해서라기보다는...
이런 환자분들이 생각보다 정말 많기 때문입니다.
다리 저림 = 당뇨 합병증?
당뇨 있으신 분들, 다리 저리면 대부분 이렇게 생각하십니다.
"당뇨 오래 앓아서 그런가 보다"
맞습니다.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 실제로 엄청 흔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함정이 있습니다.
당뇨가 있다고 해서 모든 다리 저림이 당뇨 때문만은 아니라는 거죠.
그 환자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 오셨을 때 증상을 여쭤보니,
허리와 엉덩이가 너무 아파서 잠도 제대로 못 잔다
특히 왼쪽 다리 저림과 통증이 심해서 몇 걸음만 걸어도 주저앉고 싶다
80세가 넘다 보니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긴 한데, 이번엔 정말 걷기조차 힘들다
이 증상들을 들으면서
저는 이미 머릿속으로 몇 가지 가능성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부분들이 있었거든요.
말초신경병증 검사, 뭘 어떻게 봐야 하는가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는 게 하나 있습니다.
"MRI 찍으면 다 나오는 거 아닌가요?"
네, MRI는 정말 좋은 검사입니다.
척추나 디스크 문제는 잘 보이죠.
하지만 신경 자체의 기능은?
MRI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렇게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 1단계: 요추 MRI
먼저 허리뼈 상태를 확인했습니다.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였습니다.
요추 3-4번, 4-5번 부위에 심한 전방전위증이 보였고,
이로 인한 중증 요추관 협착증까지 확인됐습니다.
쉽게 말하면, 허리뼈가 앞으로 밀려나와서 신경이 꽉 눌려있는 상태였던 거죠.
이 정도면 당연히 다리가 저리고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 2단계: 하지 근전도 검사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신경이 얼마나 손상됐는지, 어떤 신경이 문제인지 정확히 알아야
제대로 된 치료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근전도 검사 결과,
만성 요추 신경근병증 (허리 신경이 오래 눌려서 생긴 문제)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 (당뇨로 인한 전체적인 신경 손상)
두 가지가 동시에 있었습니다.
이게 바로 제가 말씀드리고 싶었던 포인트입니다.
당뇨가 있어도, 다리 저림의 원인이 단순히 당뇨만은 아닐 수 있다는 것.
오히려 허리 문제가 주범이고,
당뇨는 그걸 더 악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고민되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증상은 심한데, 환자분 상태는...
✅ 고령 (80세)
✅ 경미한 인지기능 저하
✅ 심장 질환
수술? 부담스럽죠.
하지만 이대로 두면 점점 더 걷지 못하게 되고,
그러면 인지기능은 더 빠르게 악화됩니다.
통증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면 근육도 빠지고,
결국 침대에만 누워 지내게 되는 악순환이 시작되는 거죠 ㅠㅠ
그래서 저희 팀은 이렇게 접근했습니다.
1단계: 보존적 치료부터
일단 주사 치료와 재활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신경 주변의 염증을 줄이고, 근육을 강화하는 거죠.
조금씩이지만 효과가 있었습니다.
환자분도 "좀 나아진 것 같다"고 하셨어요.
2단계: 순환기내과 협진
하지만 더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심장이 문제였죠.
그래서 협력 병원 순환기내과 선생님께 협진을 요청했고,
환자분의 전신 상태를 꼼꼼히 평가했습니다.
"이 정도면 시술은 가능하겠네요"
다행히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습니다.
3단계: PEN 시술
PEN(Percutaneous Epidural Neuroplasty)이라는 시술을 진행했습니다.
대략적으로 설명하자면,
가느다란 카테터를 통해 눌린 신경 주변의 유착을 풀어주고,
염증을 줄여주는 시술입니다.
전신마취가 필요한 큰 수술에 비해 훨씬 안전하고,
고령 환자분들께도 시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물론 모든 경우에 다 되는 건 아닙니다.
환자분의 상태, 협착 정도, 전신 건강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시술 후 환자분의 반응이 기억에 남습니다.
"완전 젊을 때처럼 될 순 없지만,
그래도 집 안에서 걸어 다니는 건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아픈 것도 많이 줄었고요."
이게 바로 우리가 목표했던 지점입니다.
80세에 20대처럼 걷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건 누구도 약속할 수 없어요.
하지만 최소한,
화장실 갈 때 누군가 부축해야 하는 상황에서
혼자서도 천천히 걸어갈 수 있게 되는 것.
이게 고령 환자분들께는 정말 큰 의미입니다.
지금도 환자분은 꾸준히 주사 치료와 재활 치료를 받으며
상태를 유지하고 계십니다.
완치가 아니라 '관리'가 목표인 케이스죠.
말초신경병증 약, 먹으면 나을까요?
진료실에서 정말 자주 받는 질문입니다.
"선생님, 신경 영양제 같은 거 먹으면 좋아지나요?"
네, 도움이 됩니다.
특히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의 경우.
하지만 여기서도 오해가 있습니다.
말초신경병증 약이 만능은 아닙니다.
중요한 건 '원인 치료'입니다.
그 환자분 케이스로 돌아가 보면,
만약 약만 드셨다면 어땠을까요?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은 조금 나아질 수 있었겠죠.
하지만 허리에서 신경을 꽉 눌러대고 있는 협착증은?
약으로는 절대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말초신경병증 검사를 제대로 받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단순히 "당뇨 있으니까 신경병증이겠지" 하고
약만 처방받아 드시면,
정작 진짜 원인은 놓치고 시간만 흘러가는 거죠.
"나이 들어서 그런가 보다"
"당뇨 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이렇게 생각하며 참고 지내시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
다리 저림,
절대 가볍게 넘기지 마세요.
특히 당뇨가 있으시다면,
더더욱 정확한 말초신경병증 검사가 필요합니다.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인지,
아니면 다른 원인이 숨어있는지,
혹은 여러 원인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는지.
이걸 정확히 알아야
말초신경병증 약도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고,
필요하다면 시술이나 다른 치료도 적절한 시기에 받을 수 있습니다.
다리 저림으로 고생하고 계신다면,
혹은 주변에 그런 분이 계시다면,
꼭 한 번 제대로 된 검사를 받아보시길 권합니다.
콕병원 신경과 조성호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