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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국진 Jan 13. 2023

던질까? 나도 사표?

모르면 걍 그대로 있어요. 그게 나아요...요즘같아서는

평생직장 사라지다!


모든 회사원들의 희망. 퇴사와 더 좋은조건으로의 이직.

이번 주 예능피디들의 이른 바 엑소더스가 있었다.

이명한, 나영석, 신원호 피디의 tvn퇴사...그리고 제작사행,

환승연애와 팽수피디의 jtbc행, 그리고 KBS 1박2일의 방글이 피디 tvn 이적.

알게 모르게 작년에도 유명하든 그렇지 않든 메이저 플랫폼에서 OTT로

케이블 방송사에서 종편으로...마치 전세보증기간이 끝나고 이사를 가듯 예능PD들은 그렇게 옮겨들 갔다.

질투와 안도, 시선은 두개다..."나는 언제 나가나, 찬데 가서 고생해봐야 지금이 좋았어하지..."

그렇게들 떠들기 좋은 소재가 많았던 1월이다.


나는 보았다. 플랫폼이 아닌 직업의 시대다!


내가 입사했던 2005년 혹은 그 언제리에 직업을 구하려 했던 사람들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목표가 있었을 것이다.

평생직장, 신의 직장, 대기업, 공무원 뭐 그런 단어들이 지배하던 것을...

좋은대학을 나와서 평생다닐 수 있는 큰 직장에 들어가 소개팅을 하고 좋은 반려자를 만나서

서울에 집을 사고 자녀들을 위해 강남,목동으로의 진입을 꿈꾸고 은퇴하고 전원생활을 하는...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보거나 아니...그럴 필요도 없어! TV에서 그게 정답이라고 말하니까.


직장이 크면 부러워들 했다. 지상파 피디라는 것은 상대방을 묘하게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걍 다 이룬것 같았다. 쉽게 짤리기도 쉽지않았다.

나는 그 누군가가 미리 그려놓았던 소위 잘나가는 인생의 스케치북안에 들어와있었다.

수습사원과 지역방송국 생활, 그리고 그렇게 간절히 원하던 예능피디로서의 삶을 누리면서

늘 전투같은 전쟁과 경쟁을 하며 지내왔지만 바깥사람들은 그런것을 알 필요도 없다.

보기엔 성공한 인생으로 보였으니까...

그렇게 하얀 백지에 아무렇게나 끄젹여도 월급은 크게크게 들어왔다.


종편의 출범...그리고 케이블 방송사의 공격적인 자본투입과 마케팅.

보이지도 않던 OTT, 유튜브의 출현...

결정타가 되었던 코로나 팬데믹.

지상파 3사끼리 앞서거니 뒷서거니 느릿느릿 경쟁하던 10년은 어디가고

2~3년사이에 콘텐츠를 보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른바 히트 플랫폼이 바뀌었다.

그 플랫폼 안에서 하던 직업의 작은 포션은 이제 전문가 하는 명분으로 거꾸로

플랫폼을 삼켜버렸다. 직업군이 모여 플랫폼이 되는 세상이 되었다. 

방송사 공채시험만큼 김태호PD의 제작사 공채가 화제다.


함께 일하는 작가의 집에 TV가 없다!

어느날 막내작가가 이사를 간다고 해서 물었다.


나: "짐 옮기느라 힘들겠네?"

작가: "아니에요 매트리스랑 노트북, 옷만 가져가서 금방 끝나요"

나: "아니 TV랑 소파 뭐 그런거 없어?"

작가: "저 TV없는뎁쇼?"


지상파 일을 하는 작가는 텔레비전 수상기가 없다. 노트북으로 본단다.

그리고 내가 던진 화두에 작가들끼리 떠들기 시작한다.

"아니 넷플에 티빙에 디즈니에 웨이브에 결제할때 보니 그것도 큰돈이야..."

KBS에서는 돈을 벌고 집에서는 OTT를 본다. 지상파 자리는 없었다.


작가들이야 프리랜서라 방송사를 수시로 옮겨다니며 일한다지만

피디들은 한 회사에 짱박히는 게 정설이었는데 이제는 작가와 같다.

지상파의 메리트는 없어졌다. 오히려 독이 되었다.

채널수가 적어 슬롯은 한정되어 있고  피디는 많고 장수프로그램이 많고 정년이 있어 시니어는 많아지고

신입사원은 덜 뽑고...지상파의 가장 훌륭한 편성정책은 아직도 가늘고 오래가는 프로를 만들어 매주 고정적인 광고비를 충당하고 만신창이가 될때까지 여기저기 편성시간을 옮겨다니다  폐지 한 달 전에 통보하고 버리는 수법을 쓴다.

뭘 하나 새로운 기획을 하려면 수 년을 기다려야 한다.

내가 한 번 했으니 이제 다른 피디에게도 기회를 주자 식이다.

말하자면 창의적이고 트랜디한 새 프로를 만들고 싶은게 모든 피디들의 마음일텐데

여기선 기다리다 늙어죽는다. 그저그런 프로그램을 하다 관리자의 삶으로 넘어간다.

이런 조직의 분위기가 쉽사리 바뀌지않으니 다른 대안을 밖에서 찾게되는 악순안이 반복된다.


이직의 다음이 실직이 될지라도 창의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퇴사를 결심하게 된다.

대형 플랫폼은 어느덧 꿈의 직장이 아닌 올드미디어, 구시대 유물로 표현들을 해대고 있었다.


이직과 실직은 같은 말. 너는 어떻게 살래?


프로그램 제작 전문가 집단의 직업군이 모여 그것이 플랫폼이 되고 돈이 되는 세상이 되었다.

소규모일수록 성공확률과 마진이 더욱 크게 남는다. 혹은 조금 덜 받아도

내가 만들고 싶을 때,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언제든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게 더 낫다.

모두가 이직을 꿈꾸었지만 또 올해는 지금의 자리가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다.

대출때문에 집값걱정에 자녀의 교육문제로 도전할 자리가 나질 않는다.

그 와중에 맨 처음 언급한 소위 유명 피디들은 또 한번 자리를 옮긴다.

퇴사가 유행이고 자랑이던 아주 짧았던 2~3년이 지나고

유명 피디들을 또 한번 부러워하거나 잘 안되길 바라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물론 퇴사할 용기가 없는 사람들의 수근거림이다.

의외로 참 단순한데 말이다. 피디는 새로운 걸 만들어보자하면 퇴사할 것이다.

한번 나갔다가 실패하면 그곳에서도 입지가 흔들릴텐데 그 다음은 실직자가 될 수 있어라고 겁주고 겁내게 된다. 그냥...대안없이 침몰할 때 다같이 죽어야하는 운명일까?


나영석 선배의 마지막 말 "너네도 좀 먹고 살아야 되지 않겠니?"


아주 잠시나마 영석이 형과 1박2일을 했었고 얼마지나지 않아 형의 퇴사 소식이 들렸다.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 형 왜 나가시는거에요? 형이 없으면 회사 허리가 잘려져요. 저희는 누구에게 배우나요"

" 나도 그렇고 너네도 좀 먹고 살아야 되지 않겠니?"


처음엔 몰랐다. 그냥 먹고 사는 문제를 말하는 줄 알았다.

적체되어 입봉(조연출에서 연출로 업무변경)을 못하는 어린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방법은

자기가 나가야 하는거고 자기가 다른곳으로 가야 새 프로그램을 할 수 있었던 것이 말의 속뜻이었다.

그가 퇴사한 후 대형채널의 영광이 10년을 못채우고 낮은 시청률에 자책하고 있을 때 난생처음 본 채널에 <우영우>가 나오고

또 한번 지상파에 타격을 주었다.

몇년에 올까말까한 기회를 잡아 이른바 스타피디가 되면 나가는...

탈출인지 도전인지 명확하게 정의도 못내리는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올해 우리회사는 수목 드라마 폐지를 선언했고

올해 우리회사는 창사 50주년을 맞았다.

나는 50주년 특집 콘서트를 맡게 되었다.


박차고 나갈 기세로 내가 나에게 물었다.

"너는 나갈거니?"

환청이 들렸다.

"모르면 걍 그대로 있어요. 그게 나아요...요즘같아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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