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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국진 Feb 22. 2023

예능도 이젠 예뻐지면 안돼?

프로그램이 아닌 작품으로 불려지길 바라며

과외처럼 소수정예반으로 일하고 싶다.


한 때는 1박2일 하면서 

문득문득 나는 작은 쩜(?)하나로 느낀 적이 많았다. 

물론 메인피디로서라면 그런 생각을 할 틈도 없었겠지만 멋도모르고 해야만 했던 조연출 시절엔...

마냥 좋을 수 없었다. 자책과 안심과 쪼그라듬 뭐 그런것들...

녹화현장에서 때 피디의 시선은 주로 출연자를 향해있다.

그런데 가끔 뒤를 돌아보면 검정 패딩을 입은 100여명의 스태프들이 보이는 데 

그럴 때 기가 죽었고 한 편으로는 딴 생각을 했다.

와.....부담스럽다. 내 직업.


빨리, 최대한 많이!


위의 단어가 많은 스태프들을 꾸리게 되는 이유 중 가장 크다.

출연자와 함께하는 한정된 시간내에 다양한 상황과 표정, 스토리를 끌어내려면 많은 카메라와 많은 작가와 같은 인력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버라이어티 전문가를 꿈꾸던 한 때가 있었다. 그때는 늘 저정도의 인력이 기본이라 생각했고 

이른바 리더십과 순발력이 프로듀서의 가장 큰 덕목중 하나라고 보았다. 

그 사이 세상은 변했다. 

인건비, 임차비, 출연료 등 모든 것이 올랐고 내 월급만 그대로다. 

또 변한건 낮아진 시청률과  리쿱이 점점 힘들어지는 광고판매액.

억지로라도 스태프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 되어가긴 하지만 

나는 다른 의미로 소수의 인원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했다. 

"좀...예쁘게 찍고 싶다!"


편견도 부수고 도제식으로 배운 내 노하우도 부수고 싶다!


예능판에선 최근까지 잔소리처럼 하던 얘기가 있다. 

"개떡같이 찍고 찰떡같이 편집하자!"

리얼에 가깝게 촬영되는 순간에서 카메라의 흔들림이나 거친 색감, 깔끔히 들리지 않는 오디오 등

예능 전반에 깔린 트렌드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어릴때는 그 말이 조연출땐 극한의 상황이 와도 마무으리를 잘 해내야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지만

방송연차가 쌓이다 보니 점점 생각이 달라졌다.

"왜 예능이라고 멋지고 예쁘게 찍지 못하나?"

예능은 늘 그런거야라고 말하는 말못할 거장들의 생각에 반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졌다.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지만 그림도 좀 예쁘게 담아내면 어떨까?

드라마는 작품이라는 호칭을 붙이고 예능은 늘 그냥 프로그램인 것처럼...


공영방송 50주년 특집 콘서트를 준비하며 다시 예뻐짐을 다짐한다. 

KBS라는 나의 회사가 공사창립 50년이 되면서 특별한 공연을 주문했다. 

한 가지를 생각했다. 

"얘쁘게 찍자!"

먼저, 프로그램의 뚜껑인 타이틀...

이런 영상이 바로 프로그램 제일 앞에 나가는 타이틀 영상이라는 건데,

이것부터 좀 바꿔보고 싶었다. 특별한 공연프로니 특별히 촬영해서 만들어보자.

그리고 광고처럼 만들어보자, 최대한 방송느낌이 아닌 섹시하게 만들자.

"(KBS)는 언제나 당신 곁에 있었어요" 라는 영어문구를 넣은 영상을 기획해 콘티를 짜고 

스태프를 소수로 꾸렸다. 

그리고 알렉사(드라마, 영화, 광고촬영시 찍는)라는 좋은 카메라를 선택했다.

또 자막은 최소한으로 최대한 임팩트 있고 작게 넣었다. 트로트 방송같지않게...

결과물은 모든 피디들이 다른 관점으로 보기에 퀄리티는 보는 이의 판단이라 떠넘기고 말이다. 

적어도...나는 너무 만족스러웠다.

너무 예쁘게 아웃풋이 나왔기 때문. 그리고 바쁜 와중에 말한데로 비슷하게 구현해냈다는 성취감으로.


둘째, 포스터도 손을 댔다. 

많은 정보를 때려박은, 그래서 더 부각이 안되는 화려한 포스터를 피하고 싶었다. 

욕심을 많이 걷어내니 심플해지고 내가 원하는 형태로들 구현이 되었다. 

스태프들은 힘들어했다.

"피디님!, 너무 허전한거 아니에요?, 너무 글씨가 작은거 아니에요?"

"디자이너가 허전하다 하니 나는 더 성공적으로 느껴집니다"

그간의 허전함을 메우기 위한 디자인, 뭔가 부족해서 컷마다 넣은 자막들

그리고 흔들림 없이 찍은 소수의 예쁜 컷들로 이루어진 영상과 포스터는

예능을 예뻐지게 만들었다. 

다른 이들은 다른 생각이겠지만 적어도 나는 만족스러웠다. 

월급받는 일반회사원과 똑같은 형태로 회사를 다니지만

결정을 하면 그 결정을 인정해주는 이른바 피디사회, 방송쟁이들이

행복함을 느끼는 가장 큰 차이다. 


최근에 받은 댓글중 가장 나의 의도를 잘 알아봐주신 분이다. 

한 분이라도 내 의도를 파악해주신 이 피드백으로 나는 피디라는 직업의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또 한번 밀어부치고 싶었다.

< 나 예능 피디지만 이젠 제발 좀 예쁘게 찍고 싶다>


예능도 작품으로 불리울 수 있으면 좋겠다.


.................생방송을 일주일 앞둔 어느날 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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