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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은솔 Aug 24. 2023

일기의 역사

그림일기부터 브런치까지

내가 최초로 쓴 일기는 아마 그림일기였을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아닌 미술학원에 다녔다. 그곳에서는 일기가 아니라 그림일기를 쓰도록 시켰다. 아직 어린 유아인 데다 다니던 곳이 미술학원이기도 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림일기가 싫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림을 그리는 것이 싫었다.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 어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백지가 주는 공포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한다. 나는 어릴 적부터 그림보다는 글에 소질이 있었다. 똑같이 흰 종이라도 거기에 글을 쓰라고 하면 고민하지 않고 글자를 적어내려갔지만,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긴장으로 온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나는 늘 그리고 싶은 것이 없어서 괴로운 아이였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그림일기는 자취를 감췄다. 대신 줄공책에 일기를 쓰고, 그것을 매일 검사받는 것이 주된 일상으로 자리잡았다. 일기 외에도 수업에서 글쓰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짧은 글짓기를 하거나 원고지 사용법을 배우는 것이 무척 재미있었다. 나는 글을 쓰라고 시키면 누구보다 빠르게 글을 완성하고는 가장 먼저 발표하는 학생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기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당시의 내가 가지고 있던 문학적 소양(?)을 십분 발휘해서, 가능한 한 화려하게 썼다. 학년이 바뀌고 담임선생님이 바뀌어도 내 일기는 변함없이 선생님의 주목을 받았다. 일기 쓰기를 어려워하던 다른 아이들을 위해, 잘 쓴 일기의 예시라며 선생님이 내 일기를 낭독하셨을 때는 쑥스럽기도 했지만 뿌듯함을 더 많이 느꼈다.


선생님께 검사받는 ‘숙제’로 일기 쓰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내게 일기는 사적인 글이 아니라 공적인 글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이런 소재로 글을 쓰면 선생님이 좋아하시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일기에 쓴 적도 많았다. 당시의 나에게 일기란 어른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 칭찬받기 위한 글에 지나지 않았다.


초등학교 5학년쯤이 되자 일기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무엇보다 일기를 검사받는 것이 싫어졌다. 나만의 일기장을 가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아무도 그 내용을 평가하지 않는, 오직 나만 볼 수 있는 일기장을 원했다. 문구점에서 예쁜 다이어리를 사서 혼자만의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비밀을 갖는 기분은 썩 괜찮았다.


그 무렵 친구들과 교환일기도 썼다. 선생님께 제출하기 위한 일기, 나만의 일기, 친구들과 함께 쓰는 일기. 이렇게 무려 세 개나 되는 일기장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아직도 그 교환일기장의 생김새가 기억이 난다. 표지 가득 네잎클로버가 그려져 있고 반짝이는 코팅이 되어 있는 공책이었다. 코를 가져다 대면 은은하게 사인펜 향기가 났다. 우리는 그 공책에 부모님께 혼이 나서 서글픈 마음과 갑자기 월경을 시작해서 당황스러운 기분과 좋아하는 남자애에 관한 이야기를 적었다. 비밀을 공유하는 것은 혼자만의 비밀을 갖는 것보다 더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었다.


중학교 때부터는 학교에 일기를 제출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일기를 쓰고 싶은 마음은 여전했으므로 그때부터 나는 블로그를 하기 시작했다. 친구들끼리 블로그 주소를 공유하고, 서로의 블로그에 들어가 일기를 읽고 댓글을 남겨주기도 했으니까 그건 일종의 교환일기였다고도 할 수 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한동안 일기를 쓰지 않고 지냈다.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일기 쓰기를 장려하는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그가 우리에게 쓰도록 한 건 일기가 아닌 ‘일지’였다. ‘일기’라는 단어가 주는 부담감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꼭 제출해야 할 필요도 없고, 쓰고 싶은 사람만 쓰면 됩니다. 길고 정제된 문장으로 쓸 필요도 없어요. 그날그날 뭘 했는지만 목록으로 작성해도 좋고, 매일 느낀 기분을 간단하게 적어도 좋습니다.”


교단 위에서 말할 때는 늘 존댓말을 사용하는 사람이었다. 그 사려깊음이 좋아서 일지를 매일 써서 제출했다. 필수 제출이 아니었는데도 일지를 제출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우리 학교의 학급 정원은 25명이었는데, 아침이면 열 권에서 열다섯 권가량의 일지가 교탁 위에 쌓였다. 어쩌면 필수 제출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꼬박꼬박 일지를 냈던 것일 수도 있겠다.


아침에 일지를 제출하면 저녁에 돌려받을 수 있었다. 펼쳐보면 선생님의 짧은 코멘트가 적혀 있곤 했다. 고등학생 시절 특유의 들끓는 마음, 나 혼자만으로도 소란스럽고 버거운 마음을 일지에 고스란히 담았다. 나처럼 솔직하고 깊은 내용으로 일지를 쓰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 들키고 싶지만 동시에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일지에는 자세하게 적을 수 있었다.


성인이 된 뒤로는 간헐적으로 블로그에 일기를 써서 올렸다. 이웃 수가 20명도 채 되지 않는, 정말 친한 사람들에게만 알려주는 블로그였다. 블로그에 올라오는 일기를 열심히 봐주던 친구가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이 정도 퀄리티면 차라리 브런치를 해봐도 괜찮겠다고. 네 글을 나 혼자서만 보는 게 너무 아깝게 느껴질 때가 있다고.


그 말 하나에 브런치를 시작했다. 이제는 브런치가 나의 일기장이다. 운이 따라준다면 에세이 작가가 되어보고 싶다는 약간의 흑심도 품고 있다. 하지만 일기와 에세이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에세이를 쓰려면 나의 이야기를 하되, 남에게 읽히고 가 닿을 수 있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 혼잣말은 에세이가 될 수 없다.


일 년에 한두 번쯤 쓰는 자물쇠 달린 일기장도 있다. 여기에는 정말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말들을 쓴다. 부러 예쁜 문장을 쓰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토해내듯 휘갈겨 쓴 다음 자물쇠를 걸고 영영 잊어버리는 이야기들이 거기에 존재한다.


나는 아마 앞으로도 계속 일기를 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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