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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은솔 Aug 22. 2023

어느 여름 도서관에서

이 도서관은 다 좋은데 근처에 식당이 없다. 구내식당도 없고, 휴게실 같은 것도 없어서 집에서 음식을 챙겨 와서 먹기도 애매하다. 여기 직원 분들은 대체 식사를 어떻게 해결하고 계시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니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근처에 그나마 편의점이 하나 있어서(이것조차 이 주변에서 유일한 편의점이다. 이 주변에는 산밖에 없고, 정말 아무것도 없다.) 거기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로 했다. 그런데 입장하자마자 은은한 똥 냄새 같은 게 코를 찔렀다. 뭐지? 왜 편의점에서 똥 냄새가 나지? 하지만 여기 말고는 달리 갈 곳이 없기 때문에 일단 라면을 결제한 뒤 자리를 잡고 앉았다.


뜨거운 물을 붓고 기다리는데 어디서 나는지 알 수 없는 똥 냄새가, 못 견딜 정도는 아니고 견딜 수 있을 만큼 은은하게 계속해서 코를 자극한다. 빨리 먹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옆자리에 어린 딸을 데리고 온 아버지가 앉았다. 굉장히 자상해 보이는 분이었다.


스스로를 '언니가' 혹은 '오빠가'라고 칭하는 사람은 좀 그래 보이는데, 왜 '엄마가 해줄게', '아빠가 먹여줄게'라는 말은 그토록 다정하게 들리는 걸까? 각자의 컵라면에 물을 붓고 3분간 기다렸는데 아버지가 아이의 컵라면을 열었을 때, 아이의 컵라면에는 스프가 들어 있지 않았다. 아버지는 웃음을 터뜨린다.


"스프 안 넣었어?"

"응."

"스프를 넣어야지."

"스프 안 넣은 줄 어떻게 알았어?"

"물이 투명하잖아~ 빨개야 되는데 물이 투명하잖아."


아버지는 계속 웃는다. 뒤늦게 아이의 컵라면에 스프를 넣고 섞은 뒤, 아버지는 자신의 컵라면과 아이의 컵라면을 맞바꾼다.


"자, 후루룩~ 해봐. 후루룩~"


아버지가 먼저 먹는 시범을 보이고, 아이가 어색하게 따라한다. 그 모습이 왜 그리 좋아 보였는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아이들에게 별 관심이 없었고 아이들을 보더라도 귀여움을 느끼지 못했는데, 요새는 바깥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유심히 관찰하게 된다. 하지만 난 아이를 대하는 방법은 모른다. 아이가 내게 다가와서 말을 걸거나 하면 무척 당황스럽다.


직접적으로 쳐다보지는 않았지만 온 신경이 그들 부녀에게 쏠린 채로 컵라면을 다 먹었다. 국물만 남은 컵라면 용기를 들고 음식물 쓰레기통 쪽으로 걸어가는데, 좀전부터 풍겨오던 은은한 똥 냄새가 점점 강해지는 것 같다. 숨을 훅 참고 음식물 쓰레기통을 여니 안에는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를 라면 찌꺼기들이 잔뜩 들어 있다. 충분히 숙성된 음식물 쓰레기에서는 똥 냄새가 나는군. 그런 생각을 하면서 편의점을 나와 다시 도서관으로 향했다.


책을 읽을 때는 약간의 소음도 못 견디는 편이기 때문에, 늘 이어폰을 끼고 노이즈캔슬링을 켜둔 채로 책을 읽는 편이다. 아까도 그렇게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몰랐는데, 지금 도서관에 와서 이어폰을 끼지 않은 채로 이 글을 쓰고 있자니 뒤에 앉은 아저씨가 주기적으로 방귀를 뀌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렸다. 심지어 방귀의 길이와 음정이 매번 조금씩 다르다. 다행히 냄새는 나지 않는다. 다시 이어폰을 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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