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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은솔 Aug 21. 2023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정말로

나태주 시인의 아주 유명한 시 한 수와 함께 글을 시작해보려 한다. 시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법한 시, <풀꽃>이다. 내가 유일하게 외우고 있는 시이기도 하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시는 단 세 줄로 끝난다. 이 시를 처음 접했을 때는 한창 세상만사를 삐뚤게 보고 싶었던 중학생 무렵이라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왜냐면 너무 못생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못난' 외모를 지닌 사람을 청자로 두고, 그 사람을 비꼬는 듯한 어투의 시로 읽혔던 것이다. 문학 작품을 받아들이는 게 아무리 사람마다 다르다지만 나도 좀 심했던 게 아닌가 싶다.


요즘 이 시가 자주 떠오르는 것은 자세히 봐서 예뻤던 순간, 오래 봐서 사랑스러웠던 순간이 내 삶에도 점차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귀중한 순간들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회사에 왠지 좀 싫은 사람이 있었다. 일부러 말을 섞지 않거나 멀리할 정도로 싫어한 건 아니었지만 왜, 그런 사람 있잖은가. 똑같은 짓을 해도 괜히 얄미워 보이고 이상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유독 '튀어' 보이는 사람.


한국 사회는 '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그렇지 않은 줄 알았는데, 나 또한 이 사회의 철저한 구성원으로서 '튀는' 사람을 은근히 배척해왔다는 걸 최근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 그 사람은 무슨 말을 해도, 무슨 행동을 해도 튀었다. 약간 엉뚱한 면도 있어서 일명 '갑분싸'를 만드는 경우도 잦았다.


집단 내에 튀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우월감에 젖게 된다. 나는 저러지는 않는데. 저 사람 참 서툴구나. 지금 이야기할 동료에 대한 내 태도가 딱 그랬다. 이 동료를 이제 A라고 칭하겠다.


한번은 A님을 중심으로 사무실 분위기가 크게 긴장한 적이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 밝힐 수 없지만, 동료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서 한동안 술렁이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부끄럽지만 그때 A님을 많이 욕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야, 회사에 완전 폭탄 하나 있어'라는 식으로 쉽게 이야기하곤 했다. 그런데 사건이 마무리되고 나서 A님과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눠보니 A님은 내 편견처럼 꽉 막힌 사람도, 고집불통도 아니었다.


A님에 대한 첫인상은 '독불장군 스타일'이었다. '누가 뭐라든 난 나의 길을 간다'는 느낌? A님에게 그런 면이 없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이제는 바로 그 점 때문에 A님에게 매력을 느낀다.


어렸을 때부터 호불호가 확실한 편이었다. 특히 한번 싫어하기 시작한 것은 온갖 이유를 붙여가며 끝까지 싫어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무언가에 대한 좋고 싫음은 뚜렷하지만, 사소한 계기로 마음이 손바닥 뒤집듯 달라지는 일이 종종 생기고 있다. 사람이란 좋다가도 싫을 수 있고 싫다가도 엄청 좋아질 수 있는 거구나, 라고 자주 생각한다.


한편 싫어했던 건 아니지만 아무런 관심이 없다가 갑자기 좋아진 사람도 있다. 이 분은 B님이라고 부르겠다. B님은 우리 팀에서 비교적 말수가 적으신 분이다. 높은 텐션으로 잡담을 마구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하는 편이기에 B님과는 친해질 일이 영영 없을 줄 알았다.


어느 날 B님과 단둘이 있게 되었다. 침묵 속에서 일만 하는 게 불편했으므로 아무 말이나 던져보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B님이 호응을 잘 해주셨다. 신이 난 나는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B님의 자녀에 대해. 지역 도서관에서 듣는다는 시 수업에 대해.  그리고 B님의 취미에 대해 물어본 순간.


B님의 두 눈이 빛나는 것을 나는 잠시 목격한 것 같았다.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톤은 그대로였지만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B님은 뭔가가 확실히 달랐다.


"아, 저는 대학 다닐 때 음악을 좋아했었거든요……."


수줍게 시작한 B님의 고백은 한동안 자세하게 이어졌다. 이전까지는 조금이라도 사적인 질문을 하면 대답을 회피하신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음악에 대해서만큼은 내가 미처 묻지 못한 디테일까지 꼼꼼하게 챙겨서 말해주셨다.


나는 드럼을 친다. 아직 어디 가서 자신 있게 말할 수준은 못 되지만 꽤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취미다. 어릴 적부터 락을 좋아했고 언젠가 락밴드의 멤버가 되고 싶다는 마음도 있다. 그런데 마침 B님이 좋아하시는 음악도 락이었다!


자우림, 노브레인, 크라잉넛 등의 홍대 인디밴드부터 시작해서 오아시스, 스웨이드와 같은 브릿팝 밴드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한참 동안 음악 얘기를 나누었다. 잠깐 정적이 흐르다가도 B님은 또다시 음악 이야기로 돌아가곤 했다. 조용하고 수줍음을 타는 듯 보였던 B님에게 이런 면모가 있었다니, 내가 모르고 지나치는 타인의 멋진 면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그 시구를 음미하면서 타인을 향한 판단을 섣불리 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아마 잘 지켜지지 않을 것이고 계속해서 까먹었다가도 새삼스럽게 다시 깨닫게 되는 날이 많을 것이다. 앞으로 몇 번이고 생각하겠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누구나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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