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은솔 Aug 19. 2023

내가 모르던 타인의 세계를 스칠 때

알면서도 모르는 존재, 직장동료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실상은 잘 모르는 사이. 그게 바로 직장동료의 정의 아닐까. 하루 중 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들이지만,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아주 일부분만을 알 뿐이다. 타인과의 관계라는 게 원래 다 그런 거겠으나 직장에서는 더한 듯하다. 회사의 분위기에 맞춰 단장한 한두 가지 단면만을 서로에게 보여주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동료들의 '솔직한' 모습을 확인할 때, 나는 봐서는 안 될 것을 봐버린 사람처럼 깜짝 놀라게 된다. 하지만 이 놀라움은 긍정적인 놀라움이다. '이 사람에게 이런 면이 있었어?' 하고, 늘 그냥 지나치던 사람을 다시 보게 만드는 생경함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점심시간에 수면실에 들어간 동료가 통화하는 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려오는데, 그 목소리는 일할 때의 음성과 확실히 다르다. 친구와 통화할 때는 왠지 걸걸한 목소리를 내게 되지 않나. 동료가 딱 그런 톤으로 통화를 하고 있다. 늘 싹싹하고 친절한 목소리만 듣다가 차분하게 내리깐 음성을 들으니 나도 그녀처럼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은 동료의 퇴근길을 목격했다. 그녀도 나도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여서 길에서 마주치더라도 어색하게 시선을 피하던 무렵이었다. 그녀는 노점상의 꽃들을 바라보며 입으로 '우와' 하고 감탄사를 뱉고 있었다. 넋놓고 꽃을 바라보느라 내가 지나가는 건 알아차리지도 못한 것 같았다. 갓 물을 준 화분들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이 더욱 싱그러워 보였다.


또 다른 퇴근길에 나는 앞서 가는 동료의 뒷모습을 발견하고는 따라잡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가는 방향이 같으니까 잠시 이야기라도 나누면 좋을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그녀는 평소와는 다른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높이 묶은 포니테일을 경쾌하게 흔들며 그녀가 들어간 곳은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였다.


직장동료가 퇴근 후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가는 모습을 목격해버리다니. 마음이 심하게 몽글몽글해지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왠지 모를 안도감이 밀려왔다. 각자의 이유로 힘들고 버거웠을 하루가 비로소 막을 내렸다는 느낌. 가게에 따라 들어가 나도 아이스크림을 사면서 그녀에게 말을 걸어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녀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말이 있다. 누군가가 미치도록 싫거든, 그 사람이 양치를 하고 잠옷을 입고 누워서 잠드는 장면을 상상해보라고. 그러면 그 사람이 조금은 귀엽게 느껴져서 싫은 감정도 어느 정도 줄어들 거라고. 동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모든 동료가 내 마음에 쏙 드는 것은 아니다. 나 또한 동료들에게 그럴 것이다. 하지만 평소에는 마음에 들지 않던 동료라도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면 갑자기 친근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일하기 위해 매주 같은 시간에 한 곳에 모이는 사람들. 가족보다 자주 보기도 하는데도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는 우리. 나는 때로 내가 모르는 동료들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집에서 쉴 때는 어떤 모습일지, 친구를 만날 때는 어떤 표정을 지을지, 취미를 즐길 때는 얼마나 진지한 태도로 임할지 알고 싶어진다. 물론 지나친 호기심은 무례가 될 수 있음을 알기에 함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건 자제하려고 하지만, 그럼에도 직장 밖에서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내가 모르던 타인의 세계를 스칠 때, 방심한 상태에서 상대방이 드러내는 약간의 단면을 응시할 때마다 나는 은밀하게 차오르는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나 또한 내 모습의 일부를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진다.


누군가는 좀 징그러운 욕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남에게 무슨 관심이 그리 많냐고 타박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사람을 향한 호기심으로 두 눈을 빛내며 언제든 '의외의 모습'을 관찰할 준비가 되어 있고 싶다. 잠깐 연결되었다가 빠르게 흩어지는 관계일수록, 내가 영원히 보지 못할 그 사람의 뒷모습이 궁금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출근길 지하철, 어깨를 빌려주는 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