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75(2021 가을)호에
영화 <미나리>의 한 장면이다. 바퀴 달린 집 거실에서 세 사람이 화투를 친다. 할머니 순자와 손녀 앤, 7살 손자 데이비드이다. 화면으로 보이는 실내가 아주 밝지는 않지만, 그 빛의 실제로 컨테이너 집이 주는 불안정한 집안 풍경이나마 온기가 느껴진다. 앉은 순서로 봐서 데이비드가 뻑을 냈다. 순자가 자기에게 온 행운이라는 듯 “야, 뻑났다. 비켜라, 이놈아.”라며 좋아한다.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틀어 올린 모양과 왜소한 몸집, 척추 선의 굽은 정도가 단박에 노인임을 알려준다. 미국에 사는 딸네 가족을 돕기 위해 한국에서 날아온 순자다.
비대면 상황을 뚫고 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스토리 스케이핑(Storyscaping)* 교육에 참여하고 있었다. 스토리 스케이핑은 이야기에 체험이나 가치를 더해 제품과 소비자를 하나로 묶는다는 의미의 신조어인데 요즘은 말하기나 글쓰기 등에도 적용하고 있어 관심이 높다.
강의가 한창 무르익고 있는데 책상 위에 얹어 놓은 모바일 전화기가 반응했다. 교육생 누군가가 단체 채팅방에 메시지를 보냈다. “윤여정 씨가 오스카 여우 조연상 탔네요.” ‘어지간히 관심과 팬심이 넘치는 사람이구나.’라고 여기며 강의실 정면 스크린으로 시선을 옮기는데 마스크 속 내 표정이 벙글거렸다.
교육이 끝나고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왜 이렇게 심장이 나대지? 내가 상을 탄 것도 아닌데? 세계의 이목이 집중하는 미국 영화제에서 받은 상이라 특별히 명예로운가? 얼굴색이 하얀 사람들만 시상한다는 비판을 뚫고 선택을 받아서? 아시아인의 열등감을 해소하는 기회가 주어져서? 오만한 그들만의 잔칫상에 끼워주어서?’
물론 이런 것도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미나리>라는 영화에 출연한 배우 윤여정에게 초점을 맞춰보았다. 나는 오래전에는 그녀를 주목하지 않았다. 외모야 배우니까 어련했을까? 그보다는 끌림이 없었다. 되짚어보니 푸석하고 허스키한 음색이 못마땅했던 것 같다. 뚝뚝 부러지는 듯한 투박한 말투 또한 원인이었을 수 있다. 딱히 발음이 부정확하지는 않지만, 말할 때 알사탕을 양 볼에 감추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불만이 가득 찬 볼멘소리로도 들렸다. 그것은 그녀의 성격이 냉소적일 거라고 단정하였고 배우로서 성의를 다하지 않는 것 같아 거슬렸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는 그녀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불친절한 순자 씨’라고 해야 할 것 같은 그 뭉뚝한 말투와 둔탁한 음색을 수용하고 있었다. <윤 식당>이나 <윤 스테이> 등의 연예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였다. 좀 서툰 해동과 퉁명스러운 말씨들이 개성으로 느껴졌고 자연스러운 인간미로 다가왔다.
그런 그녀가 세계인이 주목하는 아카데미상에서 여우 조연상을 받았다. 2021년 4월 26일은 배우 윤여정의 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는 6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그중에서 조연으로 나온 윤여정이 선택받았다.
영화 속 역할은 ‘아웃사이더 할매 아냐?’라는 의문이 드는 캐릭터다. 물론 내게 각인된 할머니의 속정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것은 2016년에 상영되었던 <계춘 할망>에서도 확연하다. 할망 계춘은 손녀 혜지를 잃어버렸다가 천신만고 끝에 찾는다. 함께 살아가며 “세상살이가 힘들고 지쳐도 온전한 내 편 하나만 있으면 살아지는 게 인생이라. 내가 네 편 해줄 테니 너는 너 원대로 살아라.”라고 한다. 새로운 땅에 정착하려고 전전긍긍하는 딸 모니카를 위해 순자가 미국까지 날아간 것을 보면 역시 한국의 엄마고 할머니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미나리>에서 그녀는 일곱 살 손자에게 화투를 선물한다. 그 먼 미국 땅까지 가면서 화투와 미나리 씨앗을 들고 간 할머니. 농장 주변 시냇가에 씨 뿌려 가꾼 미나리는 그렇다 치고 후손들에게 화투를 가르치는 순자는 내가 경험한 한국 할매의 전형은 아니었다.
데이비드의 할머니는 손자와 화투 놀이를 하고 프로레슬링 중계에 몰입한다. 화투치기나 스포츠 중계가 다 나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어린아이에게 쉽게 허용한 놀이는 아니다. 순자의 딸 모니카도 어린애에게 무슨 화투를 가르치냐고 한다.
손자 데이비드는 “할머니는 할머니 같지 않아요.”라고 한다. 이에 순자가 “할머니 같은 게 뭔데?”라고 되묻는다. “할머니는 쿠키도 만들고. 나쁜 말도 안 하고, 남자 팬티도 안 입어요.”라며 둘은 티격태격 갈등한다. 순자는 아웃사이더가 아니고는 시도하기 어려운 행동을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실행한다. 이것을 두고 혹자들은 “윤여정 표 할머니”라고 한다.
함께 생활한 시간이 흐르자 순자는 가족이라는 정으로 소통한다. 할머니한테서 냄새난다고 했던 데이비드에게도 “스트롱 보이”라며 튼튼해질 희망을 북돋운다. <계춘 할망>에서 혜지에게 한 것처럼 <미나리>에서도 심장이 약한 데이비드 편이 되어 준다. 또 ‘미나리는 어디에 있어도 알아서 잘 자라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든 건강하게 해.’ 준다고 하며 정착에 대한 희망을 암시한다. 그러면서 “미나리는 원더풀 원더풀이야.”라고 되뇐다. 그녀 안에 어떤 인자가 이런 역할을 자신만의 페르소나로 연출하게 해 줄까?
우리나라의 블랙 유머 중에 “딸 가진 어미는 싱크대 밑에서 죽고, 아들 둔 엄마는 길바닥에서 죽는다는 말이 있다.” 딱 그런 상황이 순자에게 일어난다. 싱크대 밑은 아니었지만, 뇌졸중으로 고통받는다. 가족이 데이비드의 병증을 검진하러 모두 외출하고 없을 때였다. 혼자 남은 그녀는 몸이 말을 안 듣는데도 집안일을 도우려 쓰레기를 태운다. 바람이 불어와 농장 창고에 불이 옮겨붙는다. 불길은 걷잡을 수 없었고 창고는 다 타버렸다.
죄책감에 사로잡힌 순자는 집 반대 방향으로 걸어간다. 그녀가 벌판 같은 농장을 가로질러 허위허위 넋을 잃고 가는데 ‘혹시 어디 가서 죽으려나?’ 마음을 졸이게 한다. 그때 손자와 손녀가 순자를 찾아 다가온다. 그리고 집으로 가자고 이끈다. 가족의 연대감이 떠오르며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가 끝난다.
요즘 미디어들은 윤여정 예찬에 침이 마른다. 윤여정에게 스며들다.라는 뜻의 새로운 말로 “윤며들다.”라고 한다. 트위터에는 4월 26일 하루 동안 66만 번 해시태그가 붙었다고도 한다. 오만한 듯하고 투박한 말투가 뒤늦게 내 귀에 스몄듯이 다른 사람들도 그랬을까? 그녀의 언어는 무뚝뚝하지만 소탈하고 진솔하며 핵심을 꿰뚫는다고 한다. 직설적인데 친근하다며 “휴먼 여정체”라고 폰트의 이름을 패러디하기도 한다.
윤여정의 인터뷰를 들으니까 젊은 시절 어떤 연출가는 목소리 때문에 안 된다.라고도 했다. 듣고 보니 그녀의 목소리는 나에게만 거슬렸던 건 아니었다. 어느 기자는 연기 철학이 뭐냐고 물었다. ‘열등감에서 벗어나려 했고 먹고살려고 절박해서 연기했다.’라면서 ‘대본이 성경 같았다.’ 말할 때 뼈를 맞은 것 같았다.
연기를 전공하지도 않았고, 아르바이트하다 배우가 되었다니 얼마나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을까? 이 땅에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자식을 둔 어미로 남 일이 아니고 내 일같이 다가왔다. 감독들이 들려주는 말은 ‘준비를 철저히 하는 배우, NG를 적게 내는 연기자’라고도 하니 그 진정한 프로정신을 응원하고 싶다.
수상소감 중에 두 아들을 향해 “엄마가 열심히 일한 결과”라고 하면서 너희를 위해서 열심히 일했다고 했는데 사실은 그녀 자신 앞의 삶을 위해 최선을 다했노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런 그녀에게 “뻑”난 행운이 찾아온 건 필연이고 다행한 인생의 보상이 아닐까? “야, 뻑났다. 비켜라, 이놈아.”라며 기뻐하던 모습이 떠올라 벙글거렸던 내 마스크 속 표정을 변명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