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 전날까지 나는 회식이었다. 새벽 비행기는 아니라서, 집과 공항이 비교적 가까운 거리라서 그나마 마음이 괜찮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공항으로 향해있었다. "내일 파리 간다며?", "혼자가? 아니 거길 왜 혼자가", "거기서 인연 만들어오면 되는 거지 뭐!". 사실 전날까지 정신없이 일해 내가 여행을 진짜 가는 건지 헷갈리는 때가 있었는데 오히려 주변 분들이 던지는 한마디가 내 여행 느낌을 일깨워주었다.
출국 당일, 마지막까지 고민하다 결국 업무용 노트북을 챙겼다. 파트장님이 '괜히 잃어버리면 사고니까 가져가지 마라.'라고 하셨지만 끝끝내 나는 챙기고 말았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했다. 어머니의 픽업으로 몸 편히 공항으로 도착한 나는 꼴에 2달 전 출국해 봤다고 성큼성큼 체크인 카운터로 향했다. 체크인할 때부터 내 관심사는 오직 하나였다. 티웨이 플러스 구독 서비스 가입 후 이코노미를 끊으면 비즈니스 업그레이드가 진짜로 되는 것인가. 공항 가는 차에서까지 나는 같은 항공권으로 구매하기를 눌러보았다. 비즈니스 좌석은 여전히 '9석'이 남아있었다. 남아있다는 건, 티웨이 플러스로 비즈니스 업그레이드를 신청한 손님이 9명 이상이 아닐 경우 무조건 비즈니스를 탈 수 있다는 것.
체크인 카운터를 가니 티웨이 플러스 구독자는 기다리지 않고 비즈니스처럼 바로 체크인과 수화물 접수를 할 수 있다고 안내되어 있었다. 그래서 아주 당당하게 대기줄 옆 비어있는 공간을 가로질러 바로 수속을 밟으러 갔다.
"티웨이 플러스 구독하시나요?"
"네네"
"확인 도와드리겠습니다~"
체크인 자리에 앉아있는 직원 분 뒤로 선명하게 '인턴'이라고 적힌 명찰을 단 여자분이 뒤에서 적을 것을 들고 약간은 긴장한 채로 앞에 선배가 어떤 걸 하는지 살짝 고개를 들어 어깨너머 장면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 여권과 예약현황을 보고 있던 분의 한마디.
"원래 티웨이 플러스 플래티넘 이상인 분만 대기 없이 수속가능한데 오늘 한 번만 해드릴게요~"
"아 네네 감사합니다."
난 살짝 인턴분의 얼굴을 봤는데, 고개를 끄덕끄덕 하는 것이었다. 이 분은 이제 평생 까먹지 않겠지. 티웨이 플러스 플래티넘 이상만 대기 없이 수속가능하구나. 그리고 나처럼 잘못 온 분이 있다면 이 정도의 호의를 담당자 선에서 융통성 있게 발휘해도 되겠구나.
시간은 오전 8시 30분. 1개월 전까지 인천공항의 출국 게이트가 정말 혼잡하다는 날 선 앵커의 목소리를 들었던 터라 좀 걱정했지만 오늘은 3월이라는 개강, 개학 후 첫 달에 평일인 여행의 비수기였고 역시나 게이트는 여유롭였다. 거의 기다림 없이 손쉽게 게이트를 통과한 후 비행기 탑승까지 약 1시간 20분 정도 남았다. 여행 중 가장 행복하고 설레는 시간이 아닐까 싶은 순간, 마지막까지 카톡과 팀즈로 업무연락이 오는 통에 나는 결국 스마트폰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스타벅스로 향했다. 어차피 가지고 온 책도 읽어야 했고 면세점에서 살 것도, 구경할 것도 딱히 없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비즈니스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면 010으로 시작하는 휴대폰으로 연락이 온다는 사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언제 전화가 오나, 오매불망 기다리는 통해 스타벅스에 앉았지만 책도, 업무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탑승 30분 전. 연락은 아직 없었다. 일단 탑승 게이트로 이동해야 할 시간이라 짐을 챙겨 게이트로 이동해 빈자리에 앉았다. 설마 실패인가?? 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 오는 전화 한 통.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였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이거구나. 난생처음 보는 번호다. 업무용 전화는 절대 아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네, 000 고객님이시죠~ 티웨이 플러스로 비즈니스 업그레이드 신청하셨죠?"
"네!!!!!!!! (느낌표는 속으로 했다.)"
"네, 원하시면 비즈니스 업그레이드 가능하신데 혹시 괜찮으실까요?"
"네!!!!!!! (당연한 거 아닙니까!!!.)"
"네, 혹시 일행 분은 있으실까요?"
"아니요 저 혼자예요. (흑ㅠ)"
"네, 그럼 지금 탑승 30분 전이라 바로 탑승 게이트로 오셔서 기존 탑승권을 주셔야 새로운 탑승권을 드릴 수 있거든요. 오실 수 있을까요?"
"네!!!!!!! (이미 게이트입니다!!!!!)"
바로 쏜살같이 달려가 탑승권을 보여드렸더니 새로운 탑승권으로 다시 뽑아주셨다. '비즈니스 세이버'라고 영어로 적힌 연두색 탑승권. 일반 이코노미의 빨간색 탑승권 사이로 영롱히 빛나는 연두색 탑승권을 보고 있자니, 이번 여행의 감상은 첫날에 끝났구나, 싶었다. 비록 FSC의 비즈니스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누워가는 게 어디냐. 거기다 이코노미 가격으로. 구독료 49만 원을 포함하더라도 왕복 비즈니스를 그냥 끊는 것보다 훨씬 싸니까.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