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승이 시작된다는 방송, 나는 쭈뼜쭈뼜 일단은 사람들이 서있는 줄에 갔다. 우선 탑승이라고 적힌 표지판 앞에 서야 될 것만 같았지만 아무도 없어서 괜히 서있다가 망신만 당할 것 같았다. 사람들 틈에 서있으니 승무원 분이 지나가면서 하나하나 탑승권을 확인했다. 그리고 내 탑승권을 보자마자 나에게 '여기는 이코노미 줄이라 앞으로 가세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바로 내가 아까 서야 될지 말아야 될지 고민했던 그곳이었다. 비즈니스 승객이 아무도 없나? 아무도 없는 공간에 우두커니 서 있고 그 옆에 내 뒤로 쭈욱 사람들이 서 있는 상황이었다. 조금 민망해서 얼른 들어가고 싶었다. 곧 승무원 분이 내 앞의 가림막을 젖혀주셨고 비즈니스 승객을 먼저 들여보내주셨다. 그리고 나는 이 비행기를 가장 먼저 타는 승객이 되었다.
이코노미 클래스 옆에 나 있는 퍼스트 클래스라는 글자로 들어갔다. 으레 비행기 앞 좌석이 등급이 높은 좌석이다. 들어가니 내 자리는 비행기의 두 번째 줄의 창가 쪽 자리였다. 담요와 슬리퍼, 생수 1병과 수면안대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180도로 쭉 펴지는 플랫 시트. 재빨리 짐을 놓고 시트에 앉아 버튼을 눌러보았다. 쭈욱 미끄러져 내려가는 자리. 계속 누르니 시트는 어느새 180도로 쭉 펴졌고 나는 비행기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있었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비행기를 이렇게 누워가다니.
이 사실을 너무 알리고 싶어 인스타 스토리에 올리고 내가 여행 가는 것을 아는 몇몇 지인들에게 사진을 보내며 자랑했다. 다들 놀라워했고 혼자 누워가니까 좋냐,라는 핀잔도 들었다. 아무렴 어때, 나는 비행기에 누워서 파리에 가는데. 이내 승무원 분이 오셔서 담당 승무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후 비즈니즈 승객에게 제공되는 여러 서비스들을 소개해주셨다. 기내식 두 번은 아마 이코노미랑 똑같은 것 같았고, 신라면과 컵누들 하나씩이 무료로 제공되었다. 그리고 콜라 1병과 커피 등 각종 음료수는 제한 없이 제공되었다. 나는 결심했다. 비행하는 12시간 동안 이 서비스를 모두 이용하리라.
비즈니스 좌석은 창가 쪽 몇몇 자리를 빼고는 거의 비워져 있었다. 비행기가 쿵쿵거리는 것을 보니 뒤에서 이코노미 승객들이 타고 있는 것 같았다. 분주히 움직이는 승무원 분들. 비행기는 곧 탑승교와 분리되었고 천천히 활주로로 이동하였다. 비행기는 덜컹덜컹 움직였지만 왠지 모르게 편안했다. 뉴욕에서의 12시간, 15시간의 이코노미 경험을 생각하면 차원이 다른 편안함이었다. 역시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정말 많이 받는구나. 이윽고 비행기는 이륙준비를 마쳤고 굉음을 내는 엔진소리와 함께 힘차게 이륙했다.
파리에 도착하기 전까지 나는 두 번의 기내식과 두 번의 라면, 커피 두 잔과 콜라 2캔을 마셨다. 결국 거의 모든 서비스를 다 이용한 셈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서비스(?)라고 한다면 중간에 창문을 열었을 때 정말 예쁜 바다와 육지가 어우러진 곳이 어딘지 너무 궁금해 장소를 물어본 것이었다. 승무원 분은 살짝 당황하셨는데, 기장님께 물어보신다며 가신 후 나에게 '아제르바이잔 인근'이라는 답변을 주셨다. 다음엔 중앙아시아도 한번 가보고 싶었다. 비행기에 누워 다운로드한 넷플리스 영화와 책 1권을 읽었다. 잠도 푹 자고 중간중간 화장실에 들러 살짝 스트레칭도 했다. 이렇게 12시간의 비행이 즐겁고 편안할 수가 없었다. 인천으로 오는 비행기도 꼭 비즈니스로 업그레이드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기내식을 먹고 좀 출출해 컵누들 하나를 먹으니 비행기가 살짝 앞쪽으로 꺾였다. 이제 곧 착륙하려나? 창문을 열어보니 유럽 본토로 보이는 내륙의 모습이 펼쳐졌다. 아까까지는 황량한 갈색의 사막과 해변이 눈에 보였는데 이제 유럽에 왔구나 싶었다. 비행기는 곧 방향을 바꿔 빙글 선회하기 시작했고 방송으로 착륙을 준비하라는 안내가 들렸다. 나는 자리를 세우고 안전벨트를 맨 후 창문을 살짝 열었다. 저 멀리 개선문과 에펠탑이 보였다. 진짜로 파리에 왔구나. 내 두 번째 해외여행이 이제 막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숙소를 예약하고 대충 뮤지엄 패스를 구매한 뒤 구글로 남들이 즐겨찾기로 짜놓은 일별 파리 여행동선을 다운로드하고 유로스타를 구매한 게 내 여행 계획의 전부였다. 이제 곧 파리에 나를 던질 것이고 던져지면 어쨌든 여행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리고 잠시 뒤 샤를 드골 국제공항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