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출국심사를 받으러 가는 길을 굳이 갈지(之) 자로 꼬아놓았다. 직선으로 가면 금방 가는 길을 정말 어지러울 정도로 방향을 틀어놓았다. 정말로 파리에 왔구나. 생애 첫 유럽, 생애 첫 파리를 왔다고 생각하니 속에서 웃음이 나왔다. 세상 길게 살고 볼일이네, 내가 혼자 이곳에 오다니.
뉴욕에서는 미리 신청한 한인 버스를 타고 맨해튼으로 갔다면 파리에서는 공항철도와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가기로 했다. 26인치 캐리어와 그 위에 보조가방 하나를 턱 올려놓고 가자니 꽤나 무거웠다. 공항은 그런대로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가 잘 돼있었는데 공항에서 멀어질수록 계단밖에 없어 손으로 들고 왔다 갔다 하니 굉장히 힘들었다. 돈만 있다면 택시를 타겠지만 그래도 남자 혼자 여행하는데 택시는 좀 사치 아닐까?
미리 찾아본 대로 파리 교통카드인 나비고를 애플 지갑으로 다운로드하고 구매했다. 하지만 아이폰을 태그기에 가져다대니 거절 메시지가 뜨면서 안 열리는 것이었다. 저 뒤에는 실물 나비고 카드를 발급받으려는 줄이 길게 늘어서있는데 순간적으로 기다렸다가 구매할까 생각했지만 오기로 계속 시도하니 결국은 되었다. (사실 여행 끝날 때까지 애플 지갑은 말썽이었다.)
생각해 보니 퇴근시간이었다. 도심으로 갈수록 꽤 많은 승객들이 있었고 나는 그 큰 캐리어를 끌고 누가 봐도 관광객 코스프레를 하며 지하철을 기다렸다. 공항철도에서 6라인을 갈아탈 때는 오르내리는 계단이 너무 많아 그때마다 캐리어의 손잡이를 힘껏 쥐어 오르내려야 했다. 그리고 지하철이 서서히 지상으로 올라갔다. 보이는 풍경들. 지하철은 고가 위를 달리고 있었고 어떤 건물도 내 시선보다 위쪽에 있지 않았다. 높아봤자 5~6층의 건물들이 쭉 나열되어 있었다. 베이지색 석조 외벽과 가지런히 정렬된 창틀. 반듯하게 놓인 검은 난간들. 현대적인 느낌 없이 예전 그대로의 건물을 간직한 파리는 내가 예상한 그대로였다. 아 정말 파리에 왔구나
도착한 샴브론(Cambronne) 역은 우리나라의 2호선과 비슷했다. 고가 위에 역이 있어 출구는 아래에 있었고 에스컬레이터가 없어 마지막으로 캐리어를 들고 내려와야 했다. 샴브론 역 바로 앞의 교차로는 모습은 중간에 교통섬을 둔 회전교차로지만 신호가 있는 교차로였다. 기본적으로 왕복 2차선의 도로를 사이에 두고 신호를 기다렸는데 횡단보도 거리가 짧다 보니 차가 없으면 빨간불이어도 사람들은 당연한 듯 건넜다. 난 짐이 많았으므로 혹시나 해서 녹색불을 기다렸다.
일부러 역과 가까운 숙소를 잡았다. 이곳에서 나는 일주일간 지낼 예정이다. 로비는 생각보다 꽤 컸고 한쪽에는 레스토랑이, 입구 바로 앞에는 앉아서 쉬거나 미팅할 수 있는 책상과 의자가 곳곳에 있었다. 체크인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한국말로 "한국 사람이세요?" 하며 말을 걸었다. 놀라서 뒤돌아보니 나와 비슷한 연배의 한국 남자분이었다. 지금 오시는 거냐, 혼자 오셨냐, 오늘 일정은 있냐, 여러 이야기를 했다. 그분은 파리에 이틀 있다가 다른 곳으로 넘어간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은 야간 동행투어가 있다고 했다. 체력이 참 좋으시네요 저는 오늘 피곤해서 쉬려고요. 한국사람을 타지에서 그것도 같은 숙소에 묵으면 으레 한번 보자고도 할 법했는데 난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사실 그냥 쉬고 싶은 마음뿐이라, '푹 쉬세요!'라는 말과 함께 각자의 방으로 헤어졌다.
뉴욕에서의 기억이 있어 마트에서 먹을 것을 좀 사려고 나왔다. 파리에서는 MONOPRIX라는 마트가 유명했다. 트레이더 조처럼 대형 슈퍼마켓 체인점이었는데 크게 비싸지 않아서 좋았다. 문제는 내 숙소에 냉장고가 없다는 점이라 그날 먹을 것이 아니라면 유제품은 많이 사서 쟁여놓을 수가 없었다. 과일과 빵, 우유를 사고 돌아오는 길. 평일 저녁 9시의 밤거리는 그렇게 복작하지 않았다. 듬성듬성 맥주 마시는 사람들과 러닝 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였다. 여기서 느낀 거지만 서양사람들은 정말 러닝을 많이 하고 도심에서 그냥 뛴다. 우리처럼 공원이 아니라 그냥 집 앞 인도를 뛰었고 사람이 많은 관광지도 아무렇지도 않게 러닝을 했다. 나도 좀 뛰어볼까? 생각했지만 여행 끝날 때까지 일부러 운동하지는 않았다. 매일매일 2~3만보를 걸었기 때문에.
파리에서의 첫날밤은 그렇게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