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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우 Nov 16. 2022

그래, 내 잘못이지 뭐.

최근 부동산에 관심이 생겨 관련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던 중 흥미로운 이야기를 보았다.


열심히 임장을 다니고 있던 한 직장인 투자자가 하루는 전라도 광주에 집을 보려 부동산 사장님과 보러갈 집을 예약하고 갔는데 사장님이 그 약속을 잊어버려 허탕만 치고 돌아왔다는 이야기었다. 공항이 가까워 비행기까지 타고 갔는데 사장님의 안이한 일처리로 집을 거의 제대로 보지 못하자 결국은 언성을 높히며 욕까지 섞어가며 사장님과 싸웠고 적반하장으로 사장님도 화를 내며 대응해 정말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는 이야기. 한바탕 싸우고 부동산 문을 나서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란다. '아, 미리 약속 하루 전에 확인 안한 내 잘못이지. 누구를 탓하겠어.'


얼마전 생산기술직의 인턴사원 입사가 있었다. 부산의 한 대학만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계채용 결과로 입사한 학생들이고, 내가 직접 학교를 찾아가 1박 2일간 이틀에 걸쳐 7개 전 학과의 학생을 대상으로 채용설명회를 진행하고 홍보하여 얻은 결과라 더욱 신경을 쓰고 있었다. 채용검진 예약에서의 내 실수로 첫 전형 진행부터 삐걱거리긴 했지만 어찌어찌 모든 면접 합격자가 채용검진을 받고 입사 당일 회사에 방문해 OT를 진행했다.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들어오는 거라 준비할 것이 거의 2~3배였다. 근무복, 안전화, 사물함 열쇠 등 모든 것이 평소의 배였다. 옷과 열쇠등은 준비해주시는 분이 따로 있어 옷 사이즈를 알려드리고 언제오는 지 매일매일 물었다. 그리고 평소보다 몇일 일찍 준비해주셔서 입사 3일전부터 담당자 주변에는 준비된 옷가지가 가득했다. 열쇠도 미리 받았다. 그런데, 개인별로 옷 사이즈는 맞는지, 사물함은 모두 비어져 있는지 확인하지 않고 지나갔다. 나는 입사 당일 인턴전형 OT에 제공할 정보나 근로계약서 작성, 유관부서와의 입실 시간 협의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당일, 8시 출근이지만 인턴사원이 8시 입실이므로 40분 일찍 회사에 도착했다. 쌓여져 있는 옷을 OT 장소로 끌고가 이름별로 하나하나 분류했다. 그런데, 한 사람의 옷이 잘못 와 있었다. 직무별로 사용하는 옷이 달랐는데 다른 직무의 옷 종류로 준비되어 있었다. 1차 당황.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임시로 새 옷을 주는 수 밖에. 밖에서 기다리는 인턴사원들을 안으로 들여보내고 옷을 하나씩 나눠드렸다. 그런데 그 잘못 준비한 옷의 주인이 오지 않은 것이다. 같이 합격한 친구한테 물어보니 오지 않을 거란다. 휴. 정말 다행이다. 그런데 옷을 받은 한 분이 손을 들었다. '저 옷에 이름이 잘못 되어 있는데요?' 


확인해보니 마지막 글자가 틀리게 되어 있다. 2차 당황. 일단 죄송하지만 착용하고 빨리 다시 제작해서 드린다고 하고 진행했다. 그런데 한분이 또 손을 들었다. '주신 옷에 다른 이름이 박혀있는데요?' 보니 제작만하고 퇴사해서 불출하지 못한 옷이었다. 3차 당황. 다행이 이 옷은 이름을 넣지 않는 옷이라 얼른 새 것을 꺼내 가져다 주었다. 


이제 계약서를 쓰고, 위생교육, 안전교육을 진행하니 점심시간 1시간 전이 되었다. 이제 마지막 관문이다. '자, 이제 옷을 다 들고 탈의실로 가서 옷을 넣고 오겠습니다.' 우루루 일어난 인턴사원들이 조용한 사무실을 가로질러 탈의실로 이동했다. 중간에 신발을 받고 여자는 여자탈의실, 남자는 남자탈의실로 가서 본인의 사물함을 찾았다. 그 순간 여기저기서 나를 찾는 다급한 외침. '사물함에 옷이 있어요!' 


하, 내가 왜 사물함 확인을 안했지. 퇴사를 하면 옷을 그대로 두고 퇴사하는 경우가 많아 옷가지가 있는 사물함이 꽤 있었다. 그 정리는 항상 채용담당자인 내 몫이었다. 사물함을 관리하는 사람이 해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만이 있었지만 그냥 입사일 전 내가 열쇠를 받고 내가 직접 확인해왔다. 그렇게 해왔는데 이번에는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급했다. 아! 이거는 그냥 꺼내서 세탁통에 넣으시면 됩니다. 아 소지품? 그거 퇴사자가 놓고 간거니까 그냥 버리세요. 4차 당황.


겨우 사태를 수습했지만 연이어 벌어진 매끄럽지 못한 상황으로 나는 이미 많이 부끄럽고 창피한 상태였다. 신입사원이 이 회사를 뭐라고 생각할까. 프로세스도 제대로 갖추지 않는 3류 회사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어쨌든 수습은 했고 다시 인솔하여 점심식사를 하게 했다. 


점심을 먹고 끝났겠지, 하며 한숨을 돌렸는데 갑자기 인사팀원 한 분의 다급한 전화가 울렸다. '아니, 누가 자기 사물함 안에 옷을 다 꺼내갔고 새거를 놓았데. 이거 오늘 신입사원들 옷 아니야?' 순간 스치고 지나간 장면들. 그 사물함이 다 퇴사자가 아니었구나. 너무 놀라서 엄청난 속도로 탈의실에 가니 이미 신입사원들은 현장을 들어가기 위해 현장 관리자분의 안내에 따라 옷을 갈아입고 있었고 출근하려고 준비하다 봉변당한 정규직 한 분이 전화한 인사팀원과 눈이 벌개져서 자기 사물함에 옆에서 계속 맴돌고 있었다. 


'허리띠하고 파스, 옷같은게 하나도 없어요.'

'일단 옷은 제가 세탁통에 다 넣었고, 허리띠랑 파스는 찾아볼게요.'


쓰레기통을 뒤져 허리띠를 찾았고 파스를 결국 못찾았다. 그 사이 그 정규직은 세탁통을 뒤져 본인 옷을 찾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정말 꿈 같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일단 제가 다른 열쇠를 드릴게요.'

'아니, 원래 제 것이었는데 제가 옮겨야 되나요?'

'죄송해요, 일단 신입사원에게 드렸으니까 제가 더 좋은 자리로 얼른 가져다 드릴게요.'


나는 전속력으로 사무실로 달려가 담당자의 열쇠꾸러미를 뒤져 열쇠 3개를 찾았다. (혹시 또 주인 있는 열쇠를 빈 것이라고 관리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하나하나 열어봐서 가장 위치가 좋고 깨끗한 사물함을 찾았고 다행이 건들이지 않았던 다른 사물함 안에 있던 개인 옷들은 내가 직접 옮겨 옷걸이에 걸어드렸다. 그것밖에 해드릴 것이 없었고 볼 면목이 없었다.


나는 터덜터덜 사무실로 걸어갔다. 오후 1시 40분. 이제 끝났겠지. 왜 그랬을까. 그런데 갑자기 울리는 현장 관리자분의 전화. '아니, 여자 신입사원 한 분이 바지를 안받았데. 뭐야, 빨리 와서 얼른 줘.'


결국 이 모든 사태는 바지를 드리면서 끝이났다. 바지를 드리고 사무실로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내 잘못이지 뭐. 확인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귀찮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이유로 확인하지 않고 담당자는 내가 아니니까 내 것만 준비하면 되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이 결국 이런 낯뜨거운 상황을 만들었다. 신입사원에게 죄송하고 내 자신에게 많이 실망했고 창피했고... 만감이 교차하던 하루였다. 채용 담당자가 어디까지 챙겨야되는지 왜 나만 이렇게 뛰어다녀야 되는지 불만이 없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신입사원 입장에서 입사일에 의지할 사람은 나 밖에 없으니까. 챙길 생각이 없는 사람 붙잡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내가 해야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결국, 내 잘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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