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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우 May 22. 2023

[일상]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얼마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연락받은 그 날은 평범한 출근길이었고 한번도 이 시간에 전화를 건 적이 없었기에, 그 시간 그 상황에서 차 대쉬보드에 떴던 어머니라는 세글자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난 거의 20년 이상 외할머니를 만난 적이 없다. 어른들끼리의 다툼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교류가 없었다. 친할머니는 명절마다 봤지만 외할머니는 뵌 적이 거의 없다. 할머니 뿐만이 아니라 다른 친척도 외가 식구들은 너무 비교되게 교류가 없었다.


그런 분들과 몇십년만에 만나 3일을 함께했다. 피가 섞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시키지도 않았지만 함께 모였고 근황을 얘기하고, 이야깃거리가 떨어지면 또 다른 이야깃거리를 찾아서 이야기했다. 왜 그랬는 지 모르겠지만, 몇년 전 있었던 친할머니 장례식때는 하지 않았던 행동을 이 때는 꽤나 했다.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몇십년만에 만난 나와 비슷한 또래 사촌동생과 번호를 교환하고 인스타 맞팔을 했다. (내가 먼저 제안했다는 사실은 나에게는 꽤나 중요하다.)


만나지 않은 수 년의 시간 동안 우리 서로는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아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새삼 고마웠다. 세월 한 뭉텅이를 들고 그 좁은 공간에서 한정된 시간동안 풀어 보여주기에는 공간도, 시간도 좁고 짧았다. 어릴적 있었던 '다툼'때문인지 엄청난 선입견에 사로잡혀 장례식장에 갔던 내 자신이 좀 초라하게 느껴졌다. 내가 마음을 다해 다가가고 안부를 묻고 농담을 하고 연락처를 교환한 것도 그 지난한 세월동안 오해하고 괜히 미워했던 내 자신이 너무 싫어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괜히, 그들에게 미안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좀 더 현실적으로 이야기하면, 다툼의 당사자들의 늙어가는 모습이 측은해보여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지만 내 생각엔 그 이상의 감정이었다.)


나에게 사람, 그리고 관계는 후순위였다. 항상 내가 더 중요했고 지금 내가 필요한 사람만이 중요했다. 오늘 내가 읽어야하는 책의 페이지가 중요했고 당장해야하는 자기계발이 더 중요했다. 사람과의 관계는 나에겐 사치였고 사람이 좋아 매일 약속을 잡는 주변 사람들을 조금은 한심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살다보니 관계를 통해 해결되는 일들도 굉장히 많고 그들이 나보다 더 속이 깊고 현명하게 행동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결국 중요한 건 나와 관계와의 사이에서 얼마나 밸런스를 잘 잡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언제부턴가 혼자 사는 공간에 누군가 있다는 느낌을 꽤 받았었다. 지인에게 이야기할 정도였으니 그 느낌이 틀렸다고는 볼 수 없었다. 불 켜고 졸다가 갑자기 내 이름을 크게 외친 것을 듣고 깬다거나, 독서등만 켜고 책을 읽다가 뭔가 움직이는 느낌이 들어서 주변을 쳐다본다거나. 그런데 이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내가 덧붙인 말은 '편안함'이었다. 무섭다기보다는 편안한 느낌이었고 나를 지켜주려고 곁에 있는 느낌이었다. 왠지, 외할머니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십년간 한번도 보지 못한 외할머니에 대한 내 마지막 기억은, 어머니가 김밥을 싸려고 식탁에 놓은 김밥김을 몰래 먹다 걸려서 혼나려던 찰나에 잘했다고, 그 나이에 김을 먹을 줄 아냐며 한 장 더 주시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혼내려다 그 모습을 보고 돌아선 어머니의 뒷모습은 덤이다.)


 '이제는 사이좋게 지낼게'. 어머니와 이모가 입관날 외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눈물흘릴 때 하셨던 이야기다. 내 자식들은 모르겠다. 하지만 손자들부터는 사이좋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외할머니의 마지막 바람이 아니었을까. 그걸 내가 했으면 좋겠다는 왠지 모를 이 느낌은, 그저 기분 탓일까 외할머니의 진정한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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