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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우 Jul 22. 2024

그릇에 대한 이야기

사람마다, 상황마다 제각각의 그릇이 있다.

"좀 해줘!"

"아니 그러니까 좀 해달라고."


어떤 팀의 리더와 대화하면 가장 많이 듣는 문장이다. 사실, 내가 굳이 해주지 않아도 되지만 해줘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 하지만 해주다보면 어느새부터인가 나의 일이 되는. 그 미묘한 선에 걸쳐있는 일에 대해 맞부딪히면 으레 저렇게 이야기하신다. 


예를들면 이런 것. 휴가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 한달에 한번 날짜를 지정해서 휴가를 쓰라고 독려하는 메일을 보낸다. 그리고 강제로 그 날에 휴가를 올린다. 휴가를 부득이 쓰지 못하는 분들은 본인이 1차상사에게 취소 상신을 올려 취소한다. 그리고 다른날에 휴가를 다시 올린다. 그리고 이 작업 후에는 어김없이 전화가 온다. 


"취소 좀 해줘~"

"나 상신하기 좀 그래서 그래. 취소 좀 해줘~"


회사 내부적으로 휴가 사용을 권장하고 대표님또한 그 날에 출근을 자제하라고 하시기 때문에, 특히나 리더는 그 날에 휴가를 취소하고 출근하기가 여간 눈치보이는 일이 아닌 듯 했다. 그리고 관리자 시스템에서 해당 휴가를 취소하는 건 정말 몇초밖에 걸리지 않는 아주 단순한 업무였다. 하지만 원칙이 위배된다. 정식으로 휴가 취소 상신을 올려 취소하는 것이 당연히 맞다. 하지만 특정 리더는 막무가내다. 내가 볼멘 소리로 읍소하면 정색하며 취소해 달라고 하는 통에 나는 놀라서 알겠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리더들은 취소 상신 방법을 물어보고 그냥 취소 상신을 올린다. 나는 좀 허탈하다.


이 이야기를 팀의 다른 분에게 했더니, 본인도 다른 일 때문에 이야기하면 어김없이 '좀 해줘~' 라며 막무가내로 나온다는 것이다. 겨우 안된다며 설득시켰다고는 하지만 그 대화의 뒤끝은 좋지않다고 했다.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사람과의 소통은 언제나 참 어렵다. 


그릇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냥, 그릇이 작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쁜 이야기가 아니고, 다른 업무에서는 큰 그릇을 발휘하는 분이지만 이런 부분에서의 그릇은 작은 것이라고. 그래서 나도 동의했다. 사람마다, 그리고 어떤 상황마다 본인이 컨트롤 할 수 있는 범위나 능력이 다르다. 우리는 그것을 '그릇'이라는 말로 대체하기로 했고 그 분은 그런 상황이 닥치면 못견뎌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나도 내가 견디지 못하는, 담지 못하는 포인트가 있다. 그래서 그 포인트를 겪은 사람은 나에 대해 그릇이 작다고 느낄 수도 있다. 결국 그런 것 같다. 그릇은 한 사람에게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에게 여러가지 크기의 그릇이 있어 어떤 상황마다 담고 담지 못하는 것들이 다 다르다는 것. 새로운 곳에 가면, 제일 먼저 해야할 것이 그 사람의 그릇의 크기를 보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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