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서 만난 두 번째 아빠
나에게는 호적상 아빠와 사회상(?) 아빠 둘이 있다.(내 마음대로)
처음 인턴 시절 때 내 첫 팀장님으로 만난 A부장님과는 햇수로 7년째 투닥거리며 지내오고 있다. 그간 내가 이직했을 때도, 이직한 회사에서 극적 상봉을 했을 때도(물론 나를 따라 이직해오신 건 아니다.), 또 서로 다른 회사를 다니고 있는 지금도 꾸준히 잊을만하면 연락하며 서로의 안부를 캐내고 있다.
나는 처음 본 사람과 웃으며 인사하고 MBTI E라고 착각이 들만큼의 친화력을 겸비하고 있지만 적정 선에 도달하면 낯가림이 극에 치달아서 깊게 친해지기 어려운 타입이다.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내가 7년째 A부장님과 이렇게 사이가 좋을 수 있는 이유는 정말 매력이 다분한 상사이자 사람이기 때문이다.
툭하면 사고 치고 울어재끼던 인턴 때부터 매일매일 야근하느라 얼굴에 어둠을 가득 품고 제2의 사춘기를 맞이했던 대리 시절 때에도, 갓생에 빠져 자아도취된 맛에 사는 지금까지 회사생활을 물론 연애사까지 A부장님은 내 일대기를 다 꿰고 있다. 웃긴 얘기지만 아마 우리 아빠보다 나를 더 잘 아실 듯싶다. 못 볼 꼴, 볼꼴 다 보여주고 같이 산전수전도 다 겪어내는 동안 A부장님은 단순히 회사 상사를 넘어서 내 인생에 까지 크게 영향을 주고 있었다. 영 낯간지러운 말을 못 하는 성격이라 한 번도 부장님께 말해본 적은 없지만 내 마음속으로만 몰래 두 번째 아빠로 임명당하셨다.
나는 척하고 기싸움을 하려는 일명 '피곤한 부류'들을 너무 싫어한다. 반면, A부장님은 요즘 쉽게 접할 수 없는 매력적인 모순을 갖춘 사람이다. 부장님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일할 때는 약간의 꼰대스러움과 성질을 품고 있지만 한 없이 어린 후배들을 자식, 동생들처럼 아끼고 챙겨주는 사람.(지속되는 야근에 사춘기가 왔던 시절, 내 안의 화를 표출하기 위해 사무실 블루투스 스피커로 스윙스의 [불도저]를 틀었다가 딱 첫 구절에 끄라고 성질내셨던 걸 아직도 안주삼아 얘기한다.)
축구, 수영, 걷기, 조깅을 사랑하지만 배를 받침대 삼아 핸드폰 할 정도로 '곰돌이 푸'같은 캐릭터성까지 갖춘 사람.
타고나길 상남자로 타고나 'OO이 요즘 맘에 들어'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칭찬이지만, 햇살 내리쬐는 오후에 화분 하나하나 살피며 새로운 잎이라도 나면 아기처럼 좋아하며 자랑하고, 시들어가는 식물 앞에선 화를 금치 못하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사무실 화분 물 주기를 자처하는 따뜻한 사람.
책방 찾아다니는 걸 좋아하고 혼자 뚜벅이 여행을 좋아해서 사모님께 워커홀릭 맨이 된 사람.(연차인 날엔 출근하는 척 가방을 메고 나와 혼자만의 단출한 서울 여행을 즐기느라 와이프분은 여름휴가 말곤 좀처럼 휴가 쓸 줄 모르는 바쁜 비즈니스맨으로 알고 계신다.)
매일 아침 "어우, 어제 달렸더니 죽겠다." 할 정도로 조기축구 전 날인 금요일을 제외하곤 술 약속이 가득하지만 정작 소주 한 병이면 만취하는 사람.(소주 한 병드시고 배를 받침대 삼아 편안히 주무시는 사진 소장중)
엊그제까지도 새벽 러닝에 대해 꿀팁을 전수받다 부족해 결국 또 술 약속을 잡았고 오늘은 부장님께 추천받은 책방에 다녀왔다. 이러니 내 두 번째 아빠로 임명당하실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