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사랑하는 어른도 꽤나 멋있잖아?
여느 때처럼 회사에서 수다를 떨던 와중, 친한 동기가 주섬주섬 식물 사진을 꺼내 들었다. 근래 야근으로 찌들어 자취를 감췄던 보조개까지 드러내며, 아보카도 씨앗으로 싹을 틔어 어엿한 꼬마 나무 형태를 갖춘 사진부터 잔가지가 너무나 아름다운 아스파라거스까지 자식마냥 이리저리 자랑해댔다. ‘나도 키우고 싶다.. 키울래!‘ 역시나 파워 P인 나는 즉흥적으로 식집사가 되기로 마음먹어버렸다.
아스파라거스를 키운다길래 고기 먹을 때마다 곁들이는 젓가락 모양의 아스파라거스인 줄 알았다. 동기가 키우는 아스파라거스는 나누스라는 종인데 여리여리한 잔가지들이 너무나 매력적이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과장을 조금 보태 안개 낀 날 제주도 샤려니숲길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나누스를 보자마자 나는 벌써 우리 집 어디에 두면 예쁠까 고민하면서 당근으로 싸게 분양받았다는 동기의 말에 곧장 당근에 ‘아스파라거스 나누스’부터 검색했다. 줄줄이 올라온 나누스 판매글을 보며 어떤게 수형이 가장 예쁜가 고심하던 차에 문득 생각해보니 식물을 사랑하는 어른..너무 멋있다. 꽤 대단한 서른 되기 프로젝트에 식집사도 포함시키기로! 바로 오늘 저녁 영등포에서 당근을 접선해 조그마한 나누스를 데려왔다.
톡 건드리면 쓰러질 것 같이 연약해 보이는 게 그렇게 잘 자란다고 한다. 사막에서도 끄떡없다는 스투키까지 죽였던 내가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아주 잠시였다. 반려동물이라도 생긴 듯 마냥 설레기만 하다. 조만간 식물 관련 책들로 큐레이션 된 책방을 찾아 좀 더 ‘식집사가 된 나’에 취해보려 한다.
오늘 갑작스레 한파가 온 탓에 판매자님이 행여나 나누스가 얼어 죽기라도 할까 뽁뽁이로 감싸 오셨는데 집에 와 뽁뽁이를 들춰내자마자 나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나왔다. ‘와… 진짜 예쁘다..’ 자잘하게 난 잔가지들이 얼마나 귀엽고 예쁜지.. 이래서 다들 식집사가 되는구나 싶었다.
유독 한 가지만 우산처럼 쫙 펼쳐져서는 자기주장을 해대길래 따로 심어주었다. 동기가 나누스를 분갈이해주다 뿌리가 너무 자잘한 탓에 뿌리를 뜯어버려 죽였던 사연을 들려줬는데 내가 바로 실천할 줄이야. 나는 그저 저 가지 한 가닥만 따로 심고 싶었을 뿐인데 가지를 당기자 정말 깔끔하게 뿌리가 다 뜯긴 상태로 쏙, 뽑혔다. 제발 뿌리야 다시 내려라.. 하는 심정으로 꾸역꾸역 심어주었다.
야무지게 먹으려고 후숙중인 아보카도도 내일 토스트로 해치우고 싹 틔우기에 도전해볼 예정이다. 아보카도까지 성공하고 나면, 동기가 갖고 싶어서 눈독 들이고 있다는 수채화 고무나무를 분양해오려고 한다. (동기가 집 앞 카페에 갔다가 반했다는 수채화 고무나무를 보여줬는데 정말 물감으로 칠한 줄 알았다.)
식집사 1일 차만에 키우고 싶은 식물이 너무 많다. 내가 식물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니. 나 자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하루를 온통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꽉 채울 수 있는 사람이란 거고 힘든 일상 중에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설렐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요새 내 하루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꽉 차 있어서 마냥 짧게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