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미라클 모닝

내가 생각했던 멋진 어른은 아침잠이 없거든요.

by 고룩한밤

나는 본디 잠이 많은 사람인지라, 최대한 잘 수 있을 때까지 뻐기다 허겁지겁 한 치의 시간 낭비도 없이 삼십 분 만에 머리부터 화장까지 후다닥 준비하고 나가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애당초 나에게 여유로운 티타임, 여유로운 음악 감상, 힘찬 하루를 다짐하는 아침인사 따위 있을 리 만무했다.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할 내 삶에 나는 조연이 된 지 오래였고 회사가 떡하니 주연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침에 눈 떠 일말의 여유 시간조차 없이 허겁지겁 준비하고 나와 출근. 퇴근 후에도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한두 시까지 할 거 없는 핸드폰만 꾸역꾸역 들여다보며 내 시간을 갖는 중이라고 자기 합리화. 어김없이 돌아오는 아침엔 수면 부족으로 인해 습관처럼 알람을 끄다 결국 또 삼십 분 만에 준비하고 밖을 나서는 그런 찌든 직장인이었다.



아침 운동, 할 수 있을까.

꽤 대단한 서른 살 되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아침 운동에 도전에 보기로 결심했다. 몇 시에 일어나도 피곤할 터이니 피곤과 자신감을 맞바꿔보려고 한다. 과연 내일 첫날조차 할 수 있을지, 삼일이나 채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냥, 그냥 다짐해버렸다.(보통 미라클모닝은 늦어도 다섯시반이던데 워낙 찌들어있었기에 여섯시로 나와 합의봤다.)


아침 운동 첫날, 쩌렁쩌렁한 알람 소리로 아침부터 신경 곤두세우지 않게 진동으로 맞춘 알람이 6시 정각에 징징 울려댄다. 전날에 두 시간이나 내리 걸은 탓에 잠깐 눈을 감았다 뜬 듯한데 벌써 일어날 시간이라니. 우선 알람을 끄고 생각했다. 어제 무리했으니 내일부터 시작할까. 하지만 첫날부터 그럴 순 없지. 지금 더 잔다 해도 피곤한 건 매한가지일 테니.


몸을 일으키고 시리에게 부탁했다.

‘시리야 알람 다 꺼줘’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거다. 자리에서 일어나 눈곱만 떼고 체중계에 올라선다. 쓸데없이 냉정한 숫자에 역시 일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어차피 언제 일어나든 피곤해’ 주문의 힘이 컸다고 생각한다. 일어나자마자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운동을 시작한다. 매일 저녁에만 보던 빅씨스 언니를 한밤중을 방불케 하는 까만 새벽 여섯 시에 볼 줄이야.

새벽 여섯시 한강

새벽부터 땀 흘리는 일은 생각보다 기분 좋았다. 특히 모두가 자고 있을 때 난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자아도취에 빠져 더 기분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운동이 끝나갈수록 점점 환해지는 바깥을 보니 정말 기분이 묘했다. 마치 하루가 마무리되고 다른 하루가 시작되는 느낌. 말 그대로 아침부터 하루를 밀도 있게 살아가는 느낌이었다. 그야말로 갓생사는 멋진 현대인이 아니던가. 그다음 날에도 나는 어김없이 6시에 운동을 시작했고 꼭두새벽부터 멋진 나에게 취했다. 그리고 3주째인 지금까지 잘 해내고 있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운동이라곤 담을 쌓고 퇴근 후에 운동이든 취미든 바쁘게 지내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존경스러웠다. 난 집에 와서 밥 먹고 씻고 유튜브 보면 끝이던데, 도대체 어떤 에너지로 나와 똑같은 시간을 저렇게 다르게 쓸 수 있는 걸까. 그들을 그렇게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 그때는 참 궁금했다. 그리고 지금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은 바로 자아도취다.



자아도취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회사에게 내 인생의 주체를 넘기고 끌려 살던 내가 7개월째 꾸준히 운동하고 3주째 꾸준히 아침 운동을 할 수 있는 건 자아도취 덕분이다. 초반에는 땀에 젖어도 상관없는 목 늘어난 티셔츠에 펑퍼짐한 반바지를 입고 운동을 시작했다. 가뜩이나 볼품없는 몸에, 지금 바로 헌 옷 수거함에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은 옷을 걸치고 뻘뻘 땀 흘리는 모양새가 영 ‘간지’가 없지 않은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마주했을 때 고구마처럼 붉어진 얼굴이 뿌듯한 것보다 추레한 내 행색에 오히려 의욕이 뚝 떨어졌다. 그렇다, 잠시 잊고 있었는데 난 간지가 중요한 사람이었다.


회사가 회전문이 있는 건물로 이사했을 때도 지인들에게 내 회사가 저 건물이다라고 말할 생각에 너무 좋았던 사람이고, 야근이 많아 12시 퇴근도 잦았던 시즌에도 풀메이크업을 사수하며 커리어우먼으로서의 간지를 지켰다. 야근하다 후드티에 머리를 질끈 묶고 찌든 민낯의 나를 거울에서 마주했을 때 오히려 더 축 쳐지고 무력감을 느끼곤 하는, 나는 나 자신에게 취해야 에너지가 생기는 사람이었다.


혼자 여행을 하고 나서, 아침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 조금씩 더 명확하게 나를 알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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