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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기중 Nov 11. 2020

나쁜 치매 증상으로서의 '공격성'

파국 반응(catastrophic reaction)

'퍽'

시야가 흐려지고 머리가 멍해진다. 고개가 천장을 향해 들렸는데 옆에 있는 간호사가 보면 웃겠다는 생각에 통증보다 민망함이 밀려온다. 할아버지 키가 작다 보니 나를 향해 머리를 들이밀어 댄 것이 하필이면 턱에 정통으로 맞았다. 정신을 차리고 할아버지를 쳐다보니 본인도 당황한 눈빛이다. 본인도 이렇게 제대로 맞을지는 몰랐나 보다. 두 눈만 꿈뻑이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할아버지의 머릿속에 나에게 돌진한 이유가 사라졌다. 나도 모르겠고, 그도 우물거릴 뿐이다.

'아휴... 할아버지 내가 뭘 잘못했소....'


공격성(aggression)은 치매 노인이 병원에 오게 되거나 전문 시설에 입소하게 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다. 사실 공격성은 특별한 증상이 아니라 인간이 갖게 되는 중요한 본성 중 하나다.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가치이자 자존감의 한 축을 차지하는 자기주장(assertiveness)도 유년 시절 공격성(aggression)을 어떻게 경험해 왔고 조절해서 자기에게 맞는 형태로 다듬어 왔는지에 따라 형성된다. 그래서 상처 받을지언정 젊은 시절 충분히 분노하고 이를 내뱉는 경험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분노해야 할 상황에 분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마음의 병을 만든다. 그런데 치매 노인의 공격성은 우리가 앞에서 이야기한 일반적인 분노와 차이가 있다.


치매노인에서 보이는 공격성은 파국 반응(catastrophic reaction)이 특징이다. 


파국 (catastrophe)은 역전(turn upside down)을 뜻하는 그리스어 'katastrephein'이 어원이다. 'kata'는 '아래'를 뜻하고 'strephein'은 '뒤집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는 땅의 위아래가 뒤집히는 과거 신의 재앙이라 불렀던 지진을 연상시킨다. 이는 예기치 못한 일, 정반대로 뒤집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근거로 치매 노인의 공격성을 이해해보자면 다음 두 가지가 특징이다. 첫째, 치매 노인이 분노를 표출할 때 땅의 위아래가 뒤집힐 듯 강렬하다는 것. 둘째, 예측되지 않는 상황에서 '뜬금없이' 분출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갖고 있는 공격성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판단할 때 예측 가능 여부가 중요하다. 아무리 공격적인 환자라도 어떤 상황에서 자주 화를 내는지 알고 있다면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치매 환자의 경우는 본인조차도 화가 난 이유를 스스로 찾아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그 날 아침에 일어나 속이 쓰려 기분이 안좋은 치매 노인을 생각해보자. 방문을 열고 나가니 눈 앞에 며느리가 앉아 있다. 치매 노인의 머릿속에 속이 쓰려 기분이 좋지 않다는 논리적 연결고리가 사라지면 눈 앞에 있는 며느리와 좋지 않은 기분이 연결된다. 결국 화가 난 이유가 속 쓰림이 아닌 며느리로 귀인 한다. 결국 화는 며느리를 향해 쏟아지고 며느리 입장에서는 '뜬금없는' 상황이 됐다. 이런 모습을 치매 노인의 '파국 반응'이라 한다.


치매 노인의 파국 반응을 직접 마주하면 그 순간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갑자기 이유 없이 소리를 지르거나 주먹을 휘두르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막막하다. 힘으로 제압할 것인가? 아니면 하지 말라고 옆에서 다그치고만 있을 건가? 물론 화가 점점 올라오는 타이밍에 노인의 주의를 다른 데로 환기시키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 노인의 손을 잡고 그 자리에서 벗어나거나 돌봐주는 사람끼리 손을 바꿔 대처하는 것도 괜찮다.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데 온화하게 물어보며 다독여 주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대처도 짜증 수준의 초반에만 가능하다. 일단 분노가 밖으로 표출되기 시작하면 돌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대안이 별로 없다.



그렇기에 이런 상황을 반복해서 겪은 가족들이나 요양시설에서는 약물 치료를 우선적으로 떠올릴 수밖에 없다. 분명 단기간의 약물치료가 도움이 되는 상황이 있다. 하지만 대신 약물 치료로 진정시킨 후 끝났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 원인을 좀 더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사실 치매 환자를 이해하고자 할 때 의학적 관점보다 마치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보듯 다시 아기가 되어 가는 과정으로 바라보는 게 도움이 될 때가 있다. 공격성을 보이는 치매 노인을 울고 있는 한 살도 안된 아기라고 가정해 보는 것이다.


내 품 안에 있던 한 살도 안된 아기가 울고 있다면 엄마는 먼저 무슨 생각을 할까? 요새는 아기 울음을 해석해주는 앱도 나오던데 엄마는 대부분 다음 상황을 떠올릴 것이다.

1. 배고픈 건가, 똥오줌을 쌌나
2. 심심해서 놀아달라는 건가
3. 자고 싶어 칭얼거리는 건가
4. 뭔가 무섭고 두려운 건가
5. 자신을 내버려 둔 것에 대해 화를 내고 있는 건가


이를 기반으로 일반적으로 언급하는 치매 노인의 공격성의 원인을 살펴보면 신기하게도 하나씩 연결된다.

1. 생리적 욕구, 신체적 불편감
2. 무료함
3. 수면 장애 등 다른 나쁜 치매의 증상으로 인한 공격성 악화
4. 두려움, 불안에 대한 자기 방어(이는 망상이나 환각과 같은 증상의 반응일 수도 있고 낯선 환경이나 사람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음)
5. 자존심을 건드렸을 경우 


여러 원인 중 생리적 욕구는 우리가 주의만 기울이면 치매 노인들의 공격성 완화에 확실한 도움이 된다. 한 노인은 오전 11시만 되면 망상과 이로 인한 공격성이 악화되는 기이한 행동 패턴을 보였다. 한 간호사 선생님이 이를 유심히 지켜보고 공격성 악화의 원인을 생리적 욕구, 즉 배고픔에 초점을 맞춰 미리 간식을 챙겨주면서 놀랍게도 증상이 완화됐다. 만약 오로지 나쁜 치매 증상의 악화로만 생각하고 약물만 증량시켰더라면 안타까운 상황이 될 뻔했다. 공격성의 원인을 고민한다는 것은 이런 관심을 기반으로 한다.


그리고 최근 COVID-19의 여파로 치매 노인들의 외부활동이 줄어들면서 무료함으로 인한 문제가 늘어나고 있다. 분명 나쁜 치매 증상은 약물이 일차 치료가 아니다. 주간보호센터나 치매 쉼터와 같은 전문 기관의 연계를 통해 사회 활동을 유지하고 신체적 활동을 격려하며 약물 치료를 같이 동반했을 때 도움이 되는 것인데 안타까운 상황이다. 코로나 블루로 많은 사람들이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특히 치매 노인의 사회적 단절이 생기기 않도록 머리를 맞대야 한다. 전화 한 통이나 방문 한 번이 어떤 약물치료보다 치매 증상으로서의 공격성 해결에 절실한 시기이다. 그 이외에도 나머지 원인들 또한 마음속에 새겨둔다면 그들의 분노 안에 그들이 정말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말의 퍼즐을 맞출 수 있다.


턱이 얼얼했지만 나중에 간호사에게 들었던 이야기로는 아침에 당이 높아 인슐린 주사를 맞고 수액을 맞는데 혈관이 잘 안 보여 수차례 주삿바늘에 찔렸다고 한다. 그때는 별 반응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남아있던 불쾌감이 나를 보면서 치솟았었나 보다. 치매 어르신들로부터 이런 행동을 당하면 나도 사람인지라 그 순간은 화가 난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그 퍼즐을 맞춰가는 과정에서 내 분노 또한 어느새 가라앉아 있다. 내가 할아버지 서랍에 몰래 숨겨진 믹스커피 여러 개를 찾아내자 할아버지의 표정도 일그러진다. 나 또한 다시 긴장하지만 그래도 매번 혈당이 높아 주사바늘에 괴롭힘을 당하는 것보다 낫다. '당뇨 낫고 나중에 돌려드릴게, 그때까지만 참아요.' 그래도 이번에는 내가 뭘 걱정하고 있는지 아시나 보다. 고개를 홱 돌리시며 '꼭 줘야 해' 한 마디를 남기신다. 이렇게 바로 건네주신 게 의외다. 아마 아까 나를 한대 쳤던 게 마음에 걸리셨나 보다. 나 또한 마음이 가벼워진다. '고마워요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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