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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기중 Nov 22. 2020

치매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린 왕자와 여우

'어이 잘 지냈어?'

번쩍 한 손을 들어 올리고 얼굴에 함박웃음을 짓고 들어온다. 그 기운에 어쩔 땐 나도 모르게 의자에서 일어나 꾸벅 허리 굽혀 인사할 때도 있다. 그리고 바로 할아버지는 내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본다. 자리에 앉으면서 슬쩍 말을 건넨다.


'무슨 일 있었어? 저번에 왔을 때 보다 안색이 좀 안 좋네, 밥 건너뛴 거 아니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진료 중에도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어느새 내 안색까지 살피셨나 보다. 사실 할아버지는 내 주치의다. 진료실에 들어오면 일단 본인은 아무런 문제없다, 건강하다는 짧은 대답을 남기고 나에 대해 이야기하신다. 얼굴이 야위었다. 밥은 잘 먹고 다니냐. 자신처럼 혈압이 높은 건 아니냐. 운동을 해야 한다 등 진단에 처방까지 같이 내신다. 흰가운을 입은 것이 무색하게도 할아버지가 올 때면 나는 그의 돌봄을 받는 사람이 될 뿐이다. 내 마음이 지쳐 있을 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위로를 받기도 한다.


사실 나는 처음으로 할아버지에게 치매라는 무거운 무게를 지운 사람이다. 검사 결과를 설명해줬을 때 할아버지의 표정이 아직 내 기억에 남아있다. 할아버지는 경직된 얼굴과 떨리는 입술로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몇 번을 되뇌듯 중얼거렸다. 영상 검사로 뇌가 위축된 사진을 보여주며 이 부분이 해마고 기억을 담당하며 이 부위의 위축은 치매의 시작을 알리다는 이야기는 가족들에게만 전달되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설명을 다 듣고 나지막이 이야기했다. '나는 그렇게 약한 사람이 아니야. 지금까지 힘든 일이 있어도 다 해냈고 그런 내가 치매에 걸렸을 리 없어.' 나는 할아버지의 눈빛을 보며 약을 처방하거나 치매가 진행하면 얼마나 더 비극적 일지 설명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다음 외래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대신 가족들이 내원해 할아버지의 소식을 전해줬다. 할아버지는 운동을 과할 정도로 하기 시작했다. 물론 특별한 운동은 아니었다. 하루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세 시간 넘게 동네를 돌아다닌다고 했다. 다음 외래도 할아버지는 오지 않았고 가족들만 방문했다. 가족들은 전문적인 치료도 받지 않고 할아버지의 치매 증상이 더욱 안 좋아질 것을 걱정했다. 나에게 어떻게 해야 병원으로 데려 올 수 있을지 물었다. 가족들은 불안했지만 할아버지가 결정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래도 내가 본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할아버지의 선택이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명히 자각하고 그중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에 매진하는 지혜를 갖고 있었다. 치매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할아버지가 절대 할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손을 놔버리지 않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튼튼한 두 다리로 움직이고 또 움직이는 것이었다. 이는 내가 아직 건강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임과 동시에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다음 가족들에게 필요한 건 인내심이었다. 가족들 입장에서는 빨리 치매약을 쓰지 않으면 때를 놓쳐 증상이 더 악화되지 않을까 두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은 억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가족들도 불안을 견뎌내며 그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했다. 그들은 병원에 다시는 가지 않겠다는 할아버지 대신 정기적으로 병원에 방문했다. 왜 쓸데없는 짓을 하냐는 할아버지의 핀잔을 뒤로하고 나를 찾아와 할아버지의 상태나 일상생활, 본인들의 불안을 이야기했다. 가족들은 할아버지에게 '내가 가고 싶어서 간 것이니 신경 쓰지 말라'며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고, 어떨 때는 운동에 매달리는 할아버지를 격려하며 선생님도 응원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줬다.


나에게는 가족들과 나의 불안을 마음에 담고 견뎌 낼 확신이 필요했다. '치매약을 두세 달 빨리 쓴다고 경과에 큰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다', '약을 빨리 쓰는 것보다 할아버지가 자신의 상태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기다려주고, 거기에 맞춰 치료 계획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면 분명 기회가 온다.' 나 또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중요했다. 가족들을 통해 얻는 정보를 듣고 증상이 악화되지 않았는지 계속 신경 쓰는 것과 불안을 담고 가기 위해 확신을 되뇌는 것이었다.


여우가 말했다. '.... 네가 친구를 가지고 싶다면 나를 길들여줘!.''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어린 왕자가 물었다. '누군가를 길들이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있어야 해. 우선 내게서 조금 떨어져 풀 속에 앉아 있어. 난 너를 곁눈질로 쳐다볼 거야. 넌 아무 말도 하지 마. 말은 오해의 근원이 될 수도 있으니까. 날마다 너는 조금씩 내게 가까이 다가와 앉을 수 있을 거야....' (생텍쥐베리의 소설 어린 왕자 중에서)


아마 삶은 우리가 전체적인 모양을 알 수 없는 퍼즐 조각 같다. 하나씩 이리저리 맞춰가는 과정 중에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고 왜 이 조각이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하나씩 조각을 맞춰가야만 어렴풋이 그 전체적인 그림을 바라볼 수 있을 때가 온다. 그리고 수개월이 지난 후 할아버지는 가족들과 같이 진료실을 다시 방문했다. 가족들은 할아버지에게 그동안 열심히 노력했으니 다시 한번 평가를 받아보자고 설득했다고 한다. 결과가 잘못된 걸 수도 있고 더 좋아지지 않았겠냐며 달래니 의외로 같이 따라나섰다고 한다. 그 이후부터 할아버지는 내 주치의가 되셨다.


누군가는 할아버지의 태도에 대해 자신의 결핍을 인정하지 못하고 이를 부인(denial)하는 것이라 했다. 환자와 주치의 입장을 뒤집고 이를 통해 온전함을 느끼려는 무의식적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로 해석했다. 사실 할아버지가 치매를 받아들였는지는 직접 물어본 적이 없었으니 마음을 알 수는 없었다.


그런데 치매약을 처방하고 나서야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았다. 할아버지는 단순히 자신의 현실을 부인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치매약 처방을 했을 때 개인적으로 참 걱정을 많이 했다. '약이 아니고 뇌 영양제다', '한 알이니 전혀 불편하지 않을 거다' 등등 한참 동안 달래는 말을 했다. 할아버지는 아무 대답하지 않고 나를 뚫어지게 쳐다볼 뿐이었다. 그러나 내가 우려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가족들을 통해 들은 이야기로는 오히려 친구들에게 뇌 건강을 위해 약을 먹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대신 나에게는 여전히 약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았다.


내가 할아버지에게 무언가 특별한 것을 해준건 아니다. 할아버지도 내 건강을 걱정해준다고 하지만 그가 의학적 지식으로 나를 돌보는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이제 나는 할아버지와 서로 '익숙해' 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알고 있는 것 같다. 몇 년 동안 직접 대 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직감으로 서로 알게 됐으리라.


'저길 봐! 저기 밀 밭이 보이지? 나는 빵을 먹지 않아. 내게 밀은 아무 소용이 없어. 밀밭은 나에게 아무것도 생각나게 하지 않지. 그건 슬픈 일이야! 그런데 너는 황금빛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어.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놀라운 일이 생길 거야. 앞으로 금빛 밀밭을 보면 나는 너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 될 거야. 그리고 나는 밀밭에 바람이 스치는 소리를 사랑하게 될 거야...' (생텍쥐베리의 소설 어린 왕자 중에서)


할아버지가 치매를 받아들였는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이제 한달에 한 번씩 나를 찾아와 내 건강을 챙기고 있고 말은 안하지만 약도 잘 챙겨먹는다. 가족들이 걱정할 정도로 운동도 꾸준히 하면서 나에게 얼마나 자신이 건강해졌는지 자랑 한다.


이렇게 할아버지와 나는 '어린 왕자와 여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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