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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기중 Nov 29. 2020

작고 사소한 것들에 대한 애착

치매 노인의 물건 애착에 관하여

할아버지가 돈을 안 주세요. 서랍에도 숨겨두고, 호주머니에도 있고


간호사가 할아버지의 고집에 혀를 내둘렀다. 병동에서는 따로 현금을 쓸 일이 없고, 필요한 물품이나 간식은 가족들이 따로 보내거나 간식비에서 빼서 쓸 수도 있다. 게다가 병동 내 현금 소지는 치매 노인에게 분실 위험이 높고 도난 사고로 이어지면 서로 고소하는 등 생각보다 갈등이 심각해져 반입이 제한된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화수분처럼 어디선가 돈이 생겼다. 찾아내서 가족들에게 보내도 또 어디선가 나온다. 물론 돈을 받아내는 과정도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다. 할아버지에게 욕을 한 바가지 얻어먹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래도 받아내면 다행이다. 준다고 해놓고 어느새 화장실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어디다 뒀는지 잊어버리니  천원짜리가 병동 여기저기 구석에 박혀있다. 결국 병동 회의에서 할아버지 이름이 나왔다. 어디다 쓰지도 못하는 천 원짜리 지폐 몇 장에 왜 이리 집착하는지.


그런데 할아버지만 그런 게 아니다. 생각보다 많은 치매 노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할아버지는 천 원짜리 지폐 몇 장이었지만 어떤 분은 가족들이 사다 준 3000원짜리 화분이었고 또 다른 노인은 그렇게 자신의 슬리퍼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다른 사람이 혹시라도 방에서 나갈 때 자기 슬리퍼를 스치기라도 하면 신고 갈까 노심초사했고, 하루 종일 방 밖에 가지런히 놓인 슬리퍼만 보고 있었다. 한 분은 당뇨 때문에 먹지도 못하는 노란 믹스커피 몇 개를 챙겨뒀다. 물론 솔직히 나도 이건 뭐라 할 수 없다. 내 진료실 서랍에도 떨어질 것을 대비해 몇 개 챙겨져 있으니까 말이다. 근데 나중에 보니 믹스커피는 누군가 먹고 버린 빈 포장이었다. 그것을 꽁꽁 휴지에 돌돌 말아 소중하게 서랍 끝쪽에 모아뒀다.




그들에게 이 하찮은 것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물건에 대한 애착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누구나 갖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보통 사람들은 비싼 장신구나 보석, 지폐 뭉치에 집착할 텐데 치매 노인은 그런 종류의 것에는 관심 없다. 그렇다고 개인적인 사연이 담긴 의미 있는 물건도 아니다. 소중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사진, 소중한 사람에게 받은 선물, 사랑을 약속한 반지도 애착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들이 소중하게 보관하고 애착을 보이는 것들은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그런 행동은 우리 눈에 더 띈다. 그런 물건들을 이렇게까지 집착하는 이유에 대해 의아해하면서 말이다.


이와 비슷한 현상으로 나쁜 치매 증상 중 하나인 저장 강박(hoarding behavior) 증상이 있다. 저장 강박 증상은 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들을 이유 없이 과도하게 모으는 행동이다. 발 디딜 틈 없이 집 안에 쓰레기를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본인은 정작 쓰레기에 밀려 좁은 공간에서 지낸다. 오래된 음식을 쌓아두고 먹다가 탈이 나기도 하고 층층이 쌓아놓은 쓰레기가 무너져 크게 다치기도 한다. 저장강박 증상은 치매 환자 중 22.6% (Hwang et al.)에서 나타나며 이는 중요한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하는 뇌기능 상실 또는 무료함을 달래려는 보상 행동 등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앞에서 이야기한 물건에 대한 애착은 이런 강박행동과 차이가 있다. 저장 강박 증상의 경우, 치매 노인의 관심은 물건 자체에 있지 않고 그것을 쌓고 모으는 행동에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누군가 쌓아둔 물건을 치우지 않는 이상 물건을 다시 찾거나 확인하지 않는다. 저장 강박증상은 주로 전두측두엽 치매처럼 앞쪽뇌가 손상된 경우 잘 나타난다고 하며 마치 뇌경색으로 한 팔을 들어 올리지 못하는 것처럼 본질적으로 뇌신경학적 증상에 해당한다.그렇기에 물건 자체에 애착을 보이는 치매 노인들의 모습을 저장 강박으로만 이해하기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치매 노인의 물건에 대한 애착은 어렵고 가난한 삶을 살았던 우리나라 노인들의 습관적 행동이 남아있는 걸까? 이 또한 답이 아닌 것 같다. 이런 현상은 문화, 나라, 경제적 수준과 상관없이 치매 노인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내 경험상 치매 이전 경제적 수준과 상관없었고, 외국에서도 치매 노인의 물건 애착에 대해 고민하는 걸 보면 사회적 현상도 아니다.


어떤 학자(Phinney and Chesla et al 2003)는 이를 지금까지 잘 다뤘던 물건의 사용법을 잊게 되면서 나타난 치매의 결과로 설명했다. 물건을 사용하는 방법을 잊게 되니 오랜 시간 만지작 거리고 이리저리 옮기는 행동이 늘어난 것이며, 이것이 물건에 집착하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치매 증상으로만 해석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물건 자체가 주는 의미가 있기에 특정 물건에 강한 애착을 보이는 것이다. 영국 켄트 대학 사회학 분야의 크리스티나 뷔세 박사는 흥미로운 시도를 했다. 그녀는 요양원에 거주하는 치매 여성들과 그들이 현재 갖고 있는 핸드백에 얽힌 기억과 의미를 상담했다. 면담 결과 치매 노인들은 핸드백을 갖고 있는 동안 그것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휩싸여 지내기에 불안의 원천(source of anxiety as 'lost object')이 되기도 하지만, 추억의 물건(biographical and memory object)으로서 그들이 누구인지(identity) 상기시켜 줬다. 핸드백 안에는 치매 이전의 일상이 담겨 있었고 그렇기에 추억도 공존했다. 이런 의미에서 뷔세 박사가 상담한 치매 여성들에게 핸드백이란 결핍한 자기 이전의 또 다른 자아의 확장이었다.


결국 물건에 대한 애착은 애착의 정도에 대응하는 내 마음의 결핍과 불안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원래 인간의 정상발달 과정에서도 물건에 대한 애착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기는 세상을 배워 나가려면 어느 순간 엄마와 떨어져야 하며 이때 분리 불안(separation anxiety)을 경험한다. 아직 온전히 성숙치 못한 자아를 가진 아기들은 불안을 스스로 달랠 수 없으며, 그렇기에 엄마 이외 자신 옆에 있어줄 대상이 필요하다. 엄마와 분리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불안을 투사할 물건을 찾는데 이를 애착물(transitional object)이라 한다. 우리는 이 시기의 아이들이 담요나 애착 인형을 꼭 끌어안고 다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게다가 분리 불안을 심하게 겪은 소아일수록 커서 특정 물건에 대한 집착이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이를 미루어   물건에 대한 애착을 따라가다 보면 언제나 만나는   사람 마음 깊이 웅크리고 있는 불안이다. 이는 치매 노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할아버지에게 매번 몰래 천 원짜리 몇 장을 쥐어 줬던 건 할머니였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도 천 원 한 장 호주머니에 있지 않으면 할아버지는 그렇게 불안했다고 한다. 밤에 어두워 잠을 못 잘 때도, 밥을 안 먹겠다고 투정을 부릴 때도 호주머니에 천 원짜리 하나 챙겨주고 달래면 말로 달래는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됐다고 한다. 누구한테 주는 것도 아니고, 그걸로 뭘 사 먹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아내가 쥐어준 몇 천원이 그렇게 좋았었나 보다. 할아버지가 집에 있었으면 별로 문제 되지 않았을진대 어쩔 수 없이 병원에 입원해야 한 상황에서 할머니도 혼자 얼마나 전전긍긍했을까. 병원 지침을 어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돈을 안 줄 수도 없고. 결국 할머니는 자신만의 완전 범죄를 계획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만나러 올 때마다 아무도 안 보는 면담실에서 몰래 천 원 몇 장을 할아버지 환의 호주머니에 불쑥 집어넣었다.



'천 원 한 장, 삼 천원 짜리 화분, 슬리퍼, 다 먹은 믹스커피 봉지...'

결국 작고 하찮은 것들이라는 건 그들의 평범했던 일상에서 조용히 자리 잡고 있던 것들이다. 치매 환자의 두려움은 젊은 사람들이 큰 트라우마를 겪고 갖게 되는 두려움과 본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불안이다. 그들은 큰 충격으로 인해 자기가 무너지는 경험을 하는 게 아니다. 심리적 공허함을 보상하듯 더 크고 화려한 물건으로 채우려는 그런 종류의 애착과 다르다. 하나씩 평범했던 것들이 지워져 가는 경험에서 오는 두려움이다. 마치 어둠이 깔리고 석양이 지면 언제나 집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별것 아닌 물건들에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어느새 희미해지다 사라져 버리는, 그런 종류의 두려움 말이다. 그렇기에 점점 작고 하찮은 것들이 더욱 소중해지고 두 손으로 움켜쥐어 놓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런 어둠에서 아내로부터 건네받은 천 원 한장은, 비록 작고 하찮은 것일지언정, 어둠과 함께 사그라져 버릴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잠시 상기시켜 줄 그런 것이었으리라.


병동을 굴러다니는 천 원짜리가 흘러넘치기 전에 우리는 할머니에게 지금까지 찾아낸 천 원을 돌려줬다. 그리고 조심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우리는 할머니가 또다시 천 원을 들고 면담실에 들어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우리가 고생하는 걸 안다면 몇 장 덜 줄 것이라 기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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