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기중 Dec 13. 2020

알츠하이머 화가가 본 마지막 표정

윌리엄 어터몰렌 (William Utermohlen, 1933-2007)

이 그림들 안에서 우리는 그의 두려움과 슬픔으로 점철된 자기 자신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한 윌리엄의 노력을 보기에 충분합니다


같은 화가이자 미술사 교사였던 윌리엄 어터몰렌의 아내 패트리샤는 남편의 자화상의 의미에 대해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윌리엄 어터몰렌(미국, 1933-2007)은 61세 알츠하이머 병을 진단받은 후 5년 간 자신의 작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남기기 위해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은 런던 퀸스퀘어 국립병원의 마틴 로서 박사팀에 의해 의학적 평가와 같이 기록된다. 2000년까지 병마의 고통으로 인해 자화상 그리기를 포기하기 전까지 그는 수많은 자화상 작품을 남겨 자신이 보고 있는 세계를 오롯이 그림에 녹여냈다.

윌리엄 어터몰렌의 초상화 (출처: THE LANCET • Vol 357 • June 30, 2001)

치매 발병 전 그는 주로 신화, 전쟁, 자신의 아내를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그의 그림은 고흐의 그림처럼 색채가 인상적이었고 그림을 가득 채우는 다양한 구성과 얇고 디테일한 선을 기반으로 한 사실적인 인물 표현이 특징이었다. 

Conversation Pieces – Conversation – 1991 Oil on canvas – 86 x 122 cm

그러나 발병 후 선의 표현도 점점 거칠고 굵어졌으며 자주 활용했던 색의 대비, 채색도 달라졌다.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색감을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한 혼란감을 겪었는지 오일페인팅을 포기하고 오직 펜으로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래 그림에는 마틴 로서 박사팀이 평가한 윌리엄 어터몰렌의 치매 검사와 뇌영상 검사 결과가 있다. 이를 보면 그의 치매 증상은 64세 이후 급격히 악화되는데 64세 때 그의 초상화를 찾아보면 확연히 그림이 달라졌다. 위 그림에 나온 64세 이후 그의 그림은 점점 사실적 표현을 벗어나 추상화 형태를 띤다. 자신의 얼굴에서 눈, 코, 입의 공간적 배치가 일그러지더니, 이후 단순해지고 결국은 사라진다. 물론 치매로 인해 그림 그리는 스킬이 떨어진 것도 고려해야겠지만, 개인적으로 그의 자화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표정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왼쪽:윌리엄 어터몰렌의 인지기능점수, 64에서 65세 사이에 급격히 저하, 오른쪽:어터몰렌의 뇌 위축, 출처: THE LANCET • Vol 357 • June 30, 2007


내가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표정이 사라지는 상상을 해 본 적 있는가. 물론 어터몰렌의 초상화 그림처럼 눈 코 입 자체가 사라지는 경험은 아니겠지만 상대방의 표정을 읽지 못한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사람은 두 가지 방식으로 소통을 한다. 말과 표정이다. 말은 우리 뇌의 여러 부위를 거쳐 전달되는 방식이지만 표정은 직관적이다. 그렇기에 감정을 담을 때 말보다 표정이 더 즉각적이다. 즉 표정을 읽지 못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특히 언어 능력을 잃어가고 있기에 치매 노인에게 표정을 통한 감정의 소통은 더 중요하다. 그렇기에 대화가 불가능한 치매환자에게도 가족들은 두 손으로 볼을 감싸거나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을 맞추고 따뜻한 미소를 보내는 노력을 한다. 


그런데 어터몰렌의 경우처럼 치매는 표정을 인식하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표정을 통해 감정을 인식하는 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만약 치매 환자가 누군가의 따뜻한 미소의 표정을 읽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다가와 자기의 볼을 감싸거나 머리를 쓰다듬는다면 기겁할 일이다. 게다가 말기 치매라면 싫다고 손을 뿌리칠 수도 없다. 그래서 치매가 진행될수록 노인들이 어떤 감정과 표정에 민감한지 알고 이에 맞춰 돌봄자나 가족들이 어떻게 감정적 소통을 할지 고민해야 한다. 


폴 에크만(Paul Ekman) 박사는 사람이 표현할 수 있는 수천 가지 표정을 분석하여 문화, 종족에 상관없이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6가지 감정을 뽑았다. 이는 슬픔과 고통 (sadness), 분노(anger), 놀람(surprise), 두려움(fear), 혐오(disgust), 행복(happiness)였고 이를 나타내는 특징적인 얼굴 표정을 분석했다. 그리고 우리 뇌는 이를 조합하여 복합적인 감정과 표정을 나타낸다고 했다. 이를 기반으로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한 일본 군마 대학의 야마구치 박사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6가지 감정 중 행복(happiness)한 표정을 인식(recognition)하는 능력이 다른 감정보다 더 잘 보존되었다. 이탈리아 골지 첸치 재단의 콜롬보 박사 연구팀은 좀 더 심한 말기 치매 환자만을 대상으로 했는데 여기서도 부정적인 감정의 표정보다 긍정적인 감정 표정이 더 잘 인식되었으며, 그중에서도 치매 노인들은 행복(happiness)한 표정을 가장 잘 인식했다. 


연구에서 말한 '진정' 행복한 표정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없는 눈둘레근에 의한 웃음이다. 이는 우리 눈 주위를 둘레로 동그랗게 둘러싸고 있는 근육이다. 이 근육이 움직이면 눈가에 주름이 생기고 눈이 가늘어지는 듯 보인다. 입술 끝이 당겨지며 광대 부위도 올라가 양쪽 빰이 높아지며 활짝 웃는 표정이 된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치매 환자라 할지라도 누군가의 '진정' 행복한 표정을 보며 외부 세계와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뇌신경학적 관점에서 스탠퍼드 대학의 아담 K 앤더슨 박사는 감정에 관여하는 변연계의 일부인 편도체 (amygdala)에 이상이 생기면 슬픔, 공포, 혐오의 얼굴에 대한 반응의 강도가 약해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반면 행복한 얼굴 표정 인식은 편도체 손상에 상대적으로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치매는 초기부터 편도체의 기능이 손상되는 경우가 흔한데, 이런 차이가 긍정적 감정에 비해 부정적 감정의 얼굴 표정에 상대적으로 둔감해지는 변화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행복(happiness)'을 추상적 개념으로 생각해 다른 감정보다 늦게 발달했을 것이라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발달심리학적 관점에서 '행복한 표정'은 태어날 때부터 사람에게 유전학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아기들은 출생 후 3주 정도 지나면 엄마를 바라보며 조사하듯 의도적으로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활짝 함박웃음을 터뜨리는데 이를 사회적 미소 (social smile)라 한다. 이런 아기의 행복한 표정은 3주부터 시작해서 5~6주면 더욱 강렬해진다.  이를 통해 아기는 부모와 특별한 유대 관계를 만들어가며 이때 아기의 행복한 미소는 큰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대신 불안, 공포 등의 반응은 아이가 세상을 탐색하는 범위를 넓히면서 부딪치는 경험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기에 출생 후 6~9개월 사이에 관찰된다고 한다. 행복한 표정은 슬픔과 고통, 분노, 놀람, 두려움, 혐오 이전에 발달한 강력한 애착의 유전적 결과물이다. 그렇기에 치매 노인에게 다른감정에 비해 행복한 얼굴 표정을 읽는 능력이 더 오래 보존되는 건 이런 이유에서 비롯됐을지 모른다.


어떤 이유에서든 나는 이 결과가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에 그들의 눈에 남는 건 주위 사람들의 분노와 혐오, 슬픔과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보다 행복한 미소일 것이다. 가족들이 슬픔과 고통의 심연에 빠져 있을 땐 이를 알아채지 못하는 게 더 낫다. 우리가 옆에서 더 웃고 즐겁게 떠들며, 행복한 표정을 지어줄 때 이를 더 느낄 수 있으니 좋다. 아무리 말이 안 통하는 말기 치매 환자라도 우리가 눈을 맞추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다. 비록 우리들 마음속에 슬픔과 고통이 가득할지라도 그들을 위해 더 행복한 미소를 지어줘야 할 이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분명 화가 윌리엄 어터몰렌의 자화상에는 그의 아내 패트리샤가 말한 것처럼 두려움과 슬픔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시선은 자신에게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아내를 향하고 있었을 것이다.

비록 아내의 미소 안에는 안타까움과 슬픔, 고통이 숨겨져 있겠지만 그는 아내의 미소만 응시하고 있을 것이다.


참조)

표정의 심리학, 폴 에크먼, 바다출판사

Sebastian J Crutch, Ron Isaacs, Martin N Rossor; Some workmen can blame their tools: artistic change in an individual with Alzheimer’s disease; Lancet 2001; 357: 2129–33

Maki Y, Yoshida H, Yamaguchi T, Yamaguchi H. Relative preservation of the recognition of positive facial expression "happiness" in Alzheimer disease. Int Psychogeriatr. 2013 Jan;25(1):105-10. 

Guaita A, Malnati M, Vaccaro R, Pezzati R, Marcionetti J, Vitali SF, Colombo M. Impaired facial emotion recognition and preserved reactivity to facial expressions in people with severe dementia. Arch Gerontol Geriatr.

https://onartandaesthetics.com/2018/09/06/colourful-conversation-pieces-to-dramatic-self-portraits-under-alzheimers-the-life-of-william-utermohlen/

Anderson AK, Phelps EA. Is the human amygdala critical for the subjective experience of emotion? Evidence of intact dispositional affect in patients with amygdala lesions. J Cogn Neurosci. 2002 Jul 1;14(5):709-20.

Adolphs R, Tranel D. Impaired judgments of sadness but not happiness following bilateral amygdala damage. J Cogn Neurosci. 2004 Apr;16(3):453-62.

Smith FW, Schyns PG. Smile through your fear and sadness: transmitting and identifying facial expression signals over a range of viewing distances. Psychol Sci. 2009 Oct;20(10):1202-8.


매거진의 이전글 작고 사소한 것들에 대한 애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