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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기중 Jan 07. 2021

치매 환자에게 위안이 되는 말

2004년 방영된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가장 인상 깊은 신은 치매에 걸린 고두심이 ‘빨간약’을 가슴에 바르는 장면이다. ‘미옥아 엄마 마음이 너무 아픈데 이걸 바르면 나을 것 같아서’


우리는 살면서 마음에 빨간약이 필요하다. 누구나 자신에게 위안을 주는 말 한 가지는 마음에 담고 산다. 누군가에게 상처 받을 수밖에 없고 혼자 남겨지며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위안은 단지 '힘들겠다. 당신이 옳다'고 달래는 말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아닌 질책이 또 어떤 경우에는 귀를 기울여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당신은 여한이 없겠다.'

슬픈 현재를 채워줄 만큼의 그 사람만의 삶의 유니크한 부분을 찾아서 읽어주는 것.

그것이 위안을 주는 말이 될 것이다.


치매 환자는 어떤 말에 가장 위안을 받을까? 부끄럽게도 그동안 많은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이 질문을 직접 물어보질 못했다. '요새 깜빡깜빡하는 건 어떠세요?, 잠은 잘 주무세요?, 어디 아픈 데는 없으세요?' 현재 몸 상태나 치매 증상과 관련된 질문에만 신경을 썼다. 그래서 작심하고 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말이 있으세요?'


뜬금없이 질문이 달라지니 환자들도 가족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매번 하던 것처럼 가족들이 먼저 대답한다.

'에휴 요새는 말씀을 잘 안 하시니까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침묵이 좀 길게 흐른다.

몇 번의 대화가 오가는 과정에서 문득 나도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몇 치매 어르신은 열린 질문을 받으면 압도되거나 당황한다. 자신이 부적절한 대답을 할까 주저하기도 하고, 질문의 내용에 초점을 맞추지 못해 입을 닫기도 한다. 게다가 생각해보니 나 또한 질문의 타이밍도 성급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분들의 마음에서 위안을 주는 '말'은 아니지만 '기억'이 조금씩 소환된다. 어린 시절 냇가에서 동네 친구들과 같이 뛰놀던 기억, 큰 아이 돌잔치 때 가족 모두 한복 입고 사진 찍은 기억, 소싯적 돈 좀 모았다는 자랑, 과거 직업 군인으로 자신의 말이 곧 군령이었다며 큰 목소리로 구령을 외치기도 한다.


한 할머니는 좋아하는 성경 구절을 떠올리며 위안을 받는다고 했는데 무슨 구절인지 한참을 고민했다. 머리에는 있는데 말로 안 나온다며 가방에서 작은 성경책을 꺼내 한참을 뒤적였다. 너무 열심히 찾으시니까 내가 고마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어떤 할아버지는 내 질문에 확실한 답을 줬다.

'초코렛 먹으라고 할 때가 제일 행복해 난 단거 먹으면 모든 스트레스가 싹 풀려'

내 아이들에게도 자기 욕구에 충실하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할아버지 같은 마음이면 좋겠다.


또 다른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갑자기 나를 혼낸다.

'안 그래도 요새 선생이 예전하고 달라. 여기 오면 속상한 거 풀고 갔는데 갔다 와도 안 풀려'

갑작스럽게 밝힌 할머니의 속마음에 나도 적잖이 당황했다. 할머니는 내가 당황한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서운하다는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나왔다. 이래서 서운하고 저래서 서운하고. 할머니한테 한바탕 사과하고 나니 진땀이 났다. 그러더니 요새 남편도 마음에 안 든다며 할머니 맘 속에 이야기 꽃이 핀다. 그러고 보니 여기 처음 왔을 때도 그랬다. 남편 흉보는 이야기는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오늘은 좀 이야기한 것 같네'

한참을 이야기하던 할머니가 살짝 웃는다.


한 연구(참조)에서 치매는 아니나 유방암 환자 200명에게 어떤 위로가 가장 도움이 되는지 질문을 던졌다. 그 결과 '괜찮아요? 힘들어 보여요'처럼 현재 환자의 상태나 증상에 대해 반응하는 위로들은 오히려 자신의 고통스러운 상태를 환기시키는 것 같다. 도움이 되는 메시지는 '힘든 치료 과정을 잘 견뎌 내는 당신이 자랑스러워요.'처럼 상황이나 증상이 아닌 이 고통을 견뎌내고 있는 '자신 (self)'를 인정해줄 때였다. 오히려'OO 증상이 나타나면 OO 하세요'처럼 도움이 되는 현실적인 정보를 알려주는 게 애매한 위로보다 나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우리는 상대방을 위로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게 내 부모나 배우자라 할지라도 말이다. 


치매 어르신들이 '말'로 위안을 받는 시기는 이미 지났을지 모른다. 그분들에게 현실은 점점 사라지고 과거만 남기에, 현실을 위로하기 위한 말들은 이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이 질문을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동안,나는 그분들의 기분 좋았던 기억 안에 같이 존재(being) 했던 것 같다.대답도 제각각이고 어떤 경우에는 엉뚱한 이야기를 하지만 적어도그 순간만큼은내가 알지 못했던 그들의 희로애락이 있다. 그들의 표정에 잠시 활기가 스쳐간다. 


이 작업 중 특별한 '위안의 말'을찾지는 못했지만,이를 찾아가는 과정 자체도 의미가 있었다.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이들은 주인공이 된다. 

아마 이 질문의 유일한 답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라는 점에서 그동안 사라졌던 존재감(sense of being)을 느끼는 건지 모른다. 가족들을 힘들게 만드는 자신이 아닌, 예전과 달리 어수룩 해진 자신이 아닌, 충분히 '위안 받아도 되는 존재'로서 말이다. 


치매 환자에게 가장 위안이 되는 말을 찾는 과정은 현재 진행형이다.분명 확실한 것은이질문에 대한 답을 잘 찾을 수 있는 시기가 있다는 것이다. 치매가 진행되고 나면 이런 질문에 선뜻 답하기 어렵다. 그리고 치매 유무를 떠나 내 마음에 품고 갈 위안은 바로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혼자의 힘으로도 어려울 수 있고 오랜 기간 사랑하는 사람과의 공감과 소통을 통해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아직 부모나 배우자가 온전히 내 옆에 있어줄 때 이 질문을 용기 내어 던져보자. 그 작은 위안이 치매라는 암흑 속에서 기억 한 편에 남아 사랑하는 사람에게 작은 마음의 휴식을 줄 수 있다면, 이 여행(journey)을 지금이라도 시작할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참조:

http://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87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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