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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기중 Dec 26. 2020

치매는 대물림되는 병이오?

만발성 알츠하이머 병의 유전적 요인:  APOE4 유전자

'그래서 치매가 대물림되는 병이오?'

다른 환자들과 달리 할아버지는 차분히 이야기를 건넸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오히려 자신이 왜 치매냐며 화를 냈다면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거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너무나 침착했다.

'걱정되는 게 있으십니까?'

'우리 어머니도 치매로 돌아가셨거든. 나도 힘들게 살았는데 내 자식들까지 그러면 무슨 낯으로 살겠나. 묫자리를 잘 못써서 우리 집에 우환이 있을 거라던데 그런 업보를 대물림하면 어떡하나’

사람은 정해진 고통보다 불확실한 상황을 더 두려워한다. 아무 이유 없이 인생에 의해 내동댕이 쳐진 걸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다. 아마 할아버지는 지금의 비극을 받아들이기 위해선 자신이 납득할만한 설명이 필요했을 것이다.


치매는 자식에게 대물림이 되는가 하는 질문에 답하기 전 유전성 질환과 가족력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유전성 질환은 이상 유전자가 대물림되면 100% 병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알츠하이머 병에서 2~3%에 지나지 않지만 가족성 알츠하이머 병은 상염색체 우성 양식으로 전달되는 유전성 질환이다. PS1 (presenilin 1), PS2(presenilin 2), APP (amyloid precursor protein) 유전자의 변이로 생기며 40~50대의 젊은 나이에 발병하여 빠르게 증상이 악화되는 게 특징이다.


반면 가족력이란 3대에 걸친 직계 가족(first degree relative: 부모, 자식, 형제) 중 자신을 포함하여 2명 이상이 같은 질병에 걸린 경우를 의미한다. 가족력은 유전적 요인+환경의 영향을 동시에 받는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65세 이후 발생하는 노년기 알츠하이머 병은 유전적 요인과 더불어 영양, 생활습관, 심리적& 성격적 요인, 주위 환경의 영향이 동시에 작용하여 발병한다. 그렇기에 아무리 유전적 취약성을 갖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환경적 요인을 건강하게 유지하면 치매가 발생하지 않는다. 


알츠하이머 병이 유전성 질환이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런 경우는 2~3% 밖에 안된다. 그렇기에 유전자 검사로 미래에 내가 치매에 걸릴지 여부를 100% 예측할 순 없다. 그러나 가족 중에 치매에 걸린 사람이 많다면 , 즉 가족력이 있다면 조심해야 한다. 부모나 형제 중 알츠하이머 병 환자가 있을 경우 다른 가족이 알츠하이머 병에 걸릴 확률은 2~4배 높아진다. 그러나 이는 유전성 질환처럼 100% 걸린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직계가족이라면 유전적 구성이 서로 비슷할 것이고, 비슷한 생활환경에서 살아가기에 치매 위험이 더 높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아직 미래는 결정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알츠하이머 병이 대물림될지 걱정된다면 할아버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최소 직계 가족 중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한다. 


유전학 클리닉을 방문하면 어떤 병이든 가장 먼저 하는 것이 가계도를 그리는 작업이다. 알츠하이머 병도 마찬가지로 최소 부모, 형제, 자식의 3대를 포함한 가계도를 확인해봐야 한다. 2019년 뉴롤로지(Neurology)에 발표한 리사 A 캐논 올브라이트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직계 가족 (first degree relatives) 중 한 명 치매에 걸렸을 경우 자신이 치매에 걸릴 위험이 1.5배, 직계가족 두 명 이상일 경우는 3.9배 오른다고 보고했다. 직계 가족(first degree relatives) 한 명에 추가해서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외삼촌, 고모, 이모, 사촌 형제(second degree relatives) 중 한 명이 치매에 걸렸으면 2배 위험이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24만 명의 대규모 대상자로 진행된 연구이기는 하나 미국인을 대상으로 했기에 우리나라에 바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할아버지의 자식들이 가족력의 영향으로 알츠하이머 병에 걸릴 위험을 고려해보면, 자신의 아버지(first degree relative)와 할머니(second degree relative) 각각 한 명씩 치매에 걸렸기에 자식들은 2배 치매 위험이 높다.  



2. 자신이 65세 이전에 알츠하이머 병을 진단받았거나, 65세 이후 진단받았더라도 직계 가족(부모, 형제) 중에 치매를 진단받았던 사람이 있다면 'APOE 유전자 검사'를 받아본다. 그 결과에 따라 자식도 유전자 검사를 받아보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전체 알츠하이머 병의 95% 이상을 차지하는 만발성, 비가족성 알츠하이머 병의 경우 19번 염색체에 위치한 아포지단백(APOE) 유전자의 다형성이 위험 인자로 밝혀졌다. 이 유전자는 알츠하이머 병의 원인 물질인 아밀로이드 베타의 생산, 분포, 제거에 영향을 미친다. APOE 유전자는 ε2, ε3, ε4 등 세 가지 대립유전자를 갖는데,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성은 ε4를 하나 가진 사람(ε2/ε4, ε3/ε4)이 하나도 가지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3배 높고, 또 ε4 두 개 가진 사람(ε4/ε4 형)은 8배 높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APOE 유전자 검사는 아직 치매 진단받은 사람의 확진 보조 검사로서만 활용하고 있지만, 단순 피검사를 통해 쉽게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65세 이전 알츠하이머 병을 진단받은 환자에게는 의료 보험 적용을 받을 만큼 치매 유전자 검사로서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어 최근에는 대학병원뿐만 아니라 종합병원에서도 피검사에 포함시킨 경우가 늘고 있다.  


아주 낮은 2~3%의 확률이지만 가족성 알츠하이머 병에 대한 유전자 검사(PS1, PS2, APP 유전자)를 대학병원에 의뢰해 볼 수 있다. 가족성 알츠하이머 병은 유전성 질환이다. 40~50대 발병하며 상당히 빠르게 증상이 진행된다. 환경적 요인의 영향은 상당히 낮다. 이는 태아 산전검사에서 21번 염색체 이상이 확인되면 다운 증후군 아이가 태어나는 것과 같다. 대신 워낙 빈도가 낮기에 가족, 친척 중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사람이 상당수이고 의료진이 추천할 경우 검사를 고려하는 게 좋다.


할아버지의 경우는 70이 넘어 알츠하이머 병을 진단받았지만 직계 가족 중 어머니가 알츠하이머 병에 걸렸던 가족력이 있으므로 아포지단백(APOE) 유전자 검사를 고려하는 것이 좋다. 만약 할아버지의 유전자 검사 결과 ε4 유전자가 나온다면 자식들 또한 검사를 받아보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꼭 주의 할 점은 유전자검사 하나로 앞으로 치매에 걸릴지는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APOE의 유전적 요인도 수십가지 치매 위험 인자 중 하나일 뿐이다.


3. 유전적 요인은 타고난 것이다. 대신 내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생활습관 요인을 건강하게 만들자.


치매의 가족력을 살펴보고 가족끼리 공유하는 건 집안의 업보를 곱씹고 죄책감을 느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유전자 검사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이는 치매 발병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은 한 부분일 뿐이다. 게다가 유전적 요인은 우리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유전적 위험이 있다면 그만한 위험을 상쇄시킬 수 있는 건강한 생활습관을 만들면 된다. 치매 가족력으로 치매 위험이 2배 올랐다고 치자.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치매 위험을 두 배 이상 높이는 위험 요인들에는 뭐가 있을까.


흡연이 알츠하이머 치매를 포함한 치매의 위험성을 2배가량 높이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10분 정도 이상의 의식장애가 있는 두부외상의 과거력이 있는 사람은 약 3.8배가량 치매 위험이 높았습니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약 3배가량 치매 위험이 높았습니다.
사별, 이혼, 별거, 미혼 등 결혼 생활을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이 치매 위험이 2.9배가량 높았습니다.
치료받지 않은 중년기의 고혈압은 치매 발생 위험을 4.8배 증가시켰습니다. 
높은 혈중 지질 총량, 포화 지방, 콜레스테롤이 치매 발병 위험성을 2배 이상 높인다고 보고되었습니다.


자, 챙겨야 할 위험 요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술, 담배 끊고, 넘어져서 머리 다치지 않도록 조심조심 다니고, 우울증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치료받아라. 결혼 생활이 불행하지 않도록 평상시에 신경 쓰고, 화난다고 황혼 이혼 이야기하지 말라. 건강 검진받으면서 미리 약도 먹고 운동, 식이 조절하며 고혈압, 고혈당, 고지혈증은 적극적으로 조절해라.


참고로 치매 예방을 위한 건강한 생활 습관을 만들기 위해선 '진인사 대천명 Go!'를 기억하면 된다.

'진': 진땀 나게 운동하고,

'인': 인정사정없이 담배 끊고,

'사': 사회활동 많이 하고,

'대': 대뇌활동 적극적으로 하고,

'천': 천박하게 술 마시지 말고,

'명': 명을 연장하는 식사를 하자는 것이다.

여기다 추가로 'Go고!'가 붙는데 고혈압, 고혈당, 고지혈증을 조절하자는 의미다. 


물론 자식에게 안 좋은 걸 남기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하물며 할아버지는 바로 옆에서 어머니가 치매로 무너지는 모습을 봤다. 그러나 자식의 입장에서 힘든 건 자신의 막연한 미래보다 현재 내 앞에서 아버지가 무너지는 것을 보는 것이다. 할아버지 스스로 치매 가족력을 점검하고 이를 자식들과 공유하며, 필요하다면 자식에게 검사를 추천할 수 있다. 혹 안 좋은 결과가 나올지라도 자식에게 '진인사 대천명 Go!'를 실천하도록 자신이 몸소 보여줄 수 있다. 어쩌면 이미 치매가 진행된 할아버지에게는 효과가 제한적 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만약 할아버지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진인사 대천명'의 의미처럼 자신의 고통을 성숙하게 다루는 방식을 자식에게 전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본 자식들은 자그마한 위안을 얻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참조)

Cannon-Albright LA, Foster NL, Schliep K, et al. Relative risk for Alzheimer disease based on complete family history. Neurology. 2019;92(15):e1745-e1753.

Kaplan & Sadock's Synopsis of Psychiatry (10th edition)

보건복지부 지정 노인성 치매 임상연구센터 치매 위험요인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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