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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기중 Dec 24. 2020

코로나 시대의 치매 노인들

COVID-19 (코로나바이러스)

답답한 상황이다. 겨울이 오면서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벌써 1년째 코로나바이러스의 공포가 가라앉지 않는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렇게 창궐하는 상황은 치매 노인들에게 절망적이다. 요양 시설이나 병원에 있는 환자들은 제한된 공간에 있기에 집단 감염에 노출된다. 집에서 지내는 치매 노인들도 밖으로 나가질 못하니 기력도 떨어지고 기억력도 떨어진다. 요새 들어 진료실에 방문하는 어르신들도 코로나 블루의 여파를 크게 받는다. 그래도 답답하면 복지관이나 경로당이라도 놀러 갔는데 지금은 다 문을 닫아 꼼짝없이 집에서 TV만 본다고 호소한다. 코로나 블루가 겹치면서 나쁜 치매 증상도 덩달아 악화되는 경우가 늘었다.




의학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COVID-19)가 노인 환자에게 무서운 이유는 유전적으로 치매 노인이 일반 노인에 비해 바이러스에 취약하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침투할 때 우리 몸에 있는 ACE 2 (angiotensin converting enzyme 2, 안지오텐신 전환 효소 2)라는 단백질을 통해 들어온다. 그런데 일반 노인에 비해 치매 노인에서 ACE2 유전자가 더 많이 발현되는 것을 확인했다. 즉, 치매 환자일수록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감염 위험이 커진다는 의미다.


게다가 질병관리청에서 2020년 11월에 해외 유명 학술지에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치매 환자의 경우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리면 아주 심각한 상태에 빠지거나 사망할 위험이 4.47배 높다고 한다. 이는 암(2.45배), 만성 폐질환(1.57배), 당뇨(1.92배), 고혈압(1.49배), 만성 신부전 환자(3.35배)와 비교했을 때도 가장 위험한 결과여서 가족과 치료진들을 긴장하게 한다. 나중에 우리나라에도 백신이 공급되면 안정성 여부를 충분히 검증한 후 치매 노인에게 우선적으로 공급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 지침이 내려와 몇 주전부터 2주에 한 번 모든 치료진이 받았던 코로나 검사가 이제 1주에 한 번으로 바뀌었다. 깊숙이 코를 찔리면 처음에는 이물감에 반나절 정도 불편했는데 매주 찔리다 보니 이젠 자극도 안된다. 그것 뿐만 아니다. 아무래도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의 검사 결과가 음성이 나오기 전까진 긴장의 연속이다. 격리 상태의 환자도 힘들지만 치료진도 가족이 있는 사람들인데 어찌 불안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우리보다 힘겹게 이 상황을 견뎌 나가는 사람들도 많다. 공공 의료원에 근무하는 내과 선배가 방호복을 입은 채 병동 스테이션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는 사진을 보니 마음이 무겁다. 판데믹으로 수혈할 피가 모자라다며 매번 본인이 헌혈을 해 혈색이 하얘졌는데 그렇다고 쉴 수가 없다. 그래도 잠 깨셔야 한다며 진한 아메리카노 커피 상품권을 메시지로 보내며 좀 독한 응원을 한다.




그래도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 어려운 상황을 인내해 가고 있다. 1년 전만 하더라도 마스크를 쓰고 대화하리라 생각도 못했다. 배회 활동 예방을 위한 GPS 기계도 몸에 걸치는 것을 불편해한 어르신들로 공급율이 저조했는데 마스크는 더했다. 그래서 올해 초 코로나바이러스가 처음 퍼졌을 때 마스크 착용 여부로 실랑이를 많이 했다. 거추장스럽기도 하거니와 숨쉬기도 답답하니 불평하는 분들이 많았다. 자식이 억지로 챙기지 않으면 버럭 화를 내며 마스크를 호주머니에 욱여 넣기가 일쑤였다. 자신의 말이 들리지 않을까 걱정됐던지 습관적으로 마스크를 벗고 이야기분들도 많았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로 고통받은 올해 1년이 치매 노인들의 습관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내가 치매환자의 ‘최근 기억 (recent memory)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가장 자주 사용했던 질문은 요새 본 뉴스였다. 그런데 예전과 달리 치매 노인들 중 이 질문에 바로 대답하는 분들이 심심찮게 늘었다. 매일 확진자 숫자와 방역에 대해 문자, 방송이 쏟아지다 보니 '그 뭐시기냐 병에 걸리지 말라고 이야기 많이 하잖아'라고 쉽게 대답한다. 한편으로 치매 노인들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에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이제 최근 기억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뉴스 말고 다른 질문을 던지게 됐다.   


보행 보조기구를 사용하던 한 할머니는 걷는 게 불편해도 항상 느릿느릿 스스로 걸어 들어와 정해진 자리에 앉았다. 2~3m의 가까운 거리지만 휠체어를 타지 않고 보조기구를 이용해 천천히 스스로 걸어오려는 노력이 언제나 인상 깊었다. 그런데 이제 할머니는 진료실에 안 들어오신다. 일단 진료실 문을 열어 놓고 두세 걸음 뒤에 서서 보조기구에 의지한 채 큰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잘 지냈소? 선생님' 그리고 잘 지냈다는 짤막한 대답과 함께 '약 잘 지어주이소' 하고 몸을 천천히 돌린다. 인사도 하기 전에 휑하니 할머니 뒤통수만 보인다.  


항상 불편해서 내팽기치던 마스크도 이제 익숙해졌는지 요새는 어르신들 대부분 잘 쓴다. 물론 병원에서 마스크를 안 쓰면 과태료를 문다고 했지만 단지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닐거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처음에는 마스크를 쓰는 것에 대한 과학적 논란도 많았다. 거리 유지가 어려운 경우만 마스크를 사용하라는 식의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더 마스크 사용의 필요성에 대한 근거들이 쌓였다. 감염을 막는 것과 더불어 혹시 감염된다 할지라도 전달되는 바이러스의 양을 줄여 무증상이나 경도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거리두기 또한 마스크를 쓰지 않았을 때 보다 마스크를 썼을 때 더 효율적으로 이뤄지는 사실도 밝혀졌다.  


어느 날부터 눈여겨보니 어르신들이 마스크를 쓰는 모양새가 제각각이다. 우리가 일명 '턱스크'라고 부르는 턱에만 걸치는 분. 나아가 귀 한쪽에만 걸고 들어오는 분들도 있다. 어떤 분은 마스크가 한껏 얼굴 위로 올라가 코만 가리고 입을 내놓는 경우도 있고, 얼굴에 맞지 않는 헐렁한 마스크를 쓰고 와 말할 때마다 마스크가 펄럭이기도 한다. 가끔 보면 마스크도 며칠간 돌려쓰시는지 때가 꾀죄죄한 경우도 있어 새것을 하나 건네드린다. 그럴 때면 진료가 문제가 아니다. 마스크 쓰는 법을 교육한다. 코 부위를 눌러 잘 밀착시키고 코와 입을 완전히 가리도록 시킨다. 마스크가 불편하다고 해서 자주 손으로 마스크를 만지지 않도록 습관을 들이는 것도 중요하다. 어르신들은 '내가 뭔 애도 아니고' 하면서도 곧 잘 따라 하신다.


하루는 마스크에 친구가 추천해 준 페이스 쉴드까지 쓰고 진료를 본 적이 있다. 다른 성인 환자들은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는데 어르신들은 직설적이다. 다른 진료과면 모르겠는데 정신과 선생이 페이스 쉴드를 착용하고 있으니 이상해 보였나 보다.

'그거 뭐여? 괴상하게 생겼네. 어디서 파는거여?'

'무슨 일 있어? 여기도 병 걸린 사람 있나?'

그래도 마스크로 입만 가릴 때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어르신들이 얼굴 전신을 가리는 페이스 쉴드를 쓰자 어색하셨나 보다. 한 할머니는 급기야 '마스크를 쓰니까 선생님이 좀 무섭게 보이네.'라며 뚫어지게 쳐다본다. 말씀이 없으셨던 또 다른 할머니는 나를 한 번 힐끗 쳐다보더니 바로 일어나서 나간다. 그 다음부터는 나도 페이스 쉴드를 벗고 마스크만 썼다. 평상시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소중해지는 순간이다. 그동안 맨 얼굴을 마주하며 우리는 많은 것을 소통하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작은 진료실 안에서도 1년간 이런저런 변화들이 있었다. 여전히 힘겨운 상황의 연속이다. 주위 요양시설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진료실에 찾아오지 않는 어르신이 있으면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 걱정이 쌓인다. 하루하루 또 어떤 위기가 올지 나 또한 두렵다. 그러나 아직은 모두 견뎌내고 있다. 이 어려운 시기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모두 살아가고 있다. 어디 가서 말할 데도 없고 집에만 있다는 어르신분들에게 적어도 여기서 하고 싶은 이야기 있으면 실컷 하고 가시라고 한다. 물론 예전처럼 두 손을 잡아드리지 않는다. 코로나 시대에 맞춰 마지막에는 서로의 주먹을 마주치는 새로운 인사법을 연습시키고, 알코올 손 소독제를 한 번 짜드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 시기가 지나고 빨리 봄이 오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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