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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기중 Dec 03. 2020

8살 딸의 첫 번째 책

8살 딸이 며칠간 몰래 끄적이더니 수줍게 작은 책 하나를 내민다.

그동안 나를 자리에서 밀어내고 컴퓨터를 차지해서 *튜브를 보는 줄 알았더니 열심히 글감을 모았나 보다.



레고 피규어 머리꼭지에 구멍을 뚫어놓은 게 아이들의 질식사를 막기 위한 장치라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머리를 삼켜댔을까. 부모들은 또 얼마나 기겁을 했을까.


춘천의 레고랜드 부지는 추억의 장소다. 작은 섬으로 이뤄진 이 곳은 선사시대 유물로 인해 아직 개발되지 않아 밤이 되면 을씨년스럽다. 섬을 따라 도는 차 한 대 다닐 정도의 좁은 길 양쪽에 큰 키의 갈대가 우거져 방향을 가늠하기 어렵다. 레고 랜드라는 말만 듣고 정보도 없이 밤에 차를 타고 갔으니 참사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내비게이션도 작동하지 않는 그곳에서 입구를 못 찾고 얼마나 빙빙 돌았는지. 겨우 입구를 찾아 나갈 무렵 또 다른 차 한 대가 빠른 속도로 입구를 통과해 섬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가족들과 그들을 얼마나 안타깝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아마 이때의 기억이 딸아이의 마음속에 글감이 되었으리라.



레고는 다르다? 매장에서 어른들이 자기 옆에 서서 같이 구경하고 좋아하는 게 신기했었나 보다. 서로 욕구의 정도는 다르겠지만, 아이나 어른이나 호주머니에 양 손을 끼고, 진열된 박스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는다. 물론 결론도 항상 똑같다. 어른들은 입맛을 다시고 다음에는 꼭 손에 넣으리라는 굳은 결심과 함께 발걸음을 돌린다. 아이들 또한 부모 손에 이끌려 나오며 다음 생일까지만 기다려라 말하듯 끝까지 박스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아이의 첫 번째 책에는 말하지 않아도 오롯이 추억이 담겨있다.

딸아, 첫 번째 책 출간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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