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기중 Jan 28. 2021

굿바이 로빈

루이체 치매 (Lewy body dementia)

죽은 시인의 사회, 굿 윌 헌팅, 패치 아담스, 굿모닝 베트남, 어웨이크닝스(사랑의 기적).....

수많은 영화로 우리를 울리고 마음 따뜻한 미소를 짓게 만들어준 로빈 윌리엄스

그러나 우리는 그의 마지막을 잘 알지 못한다.

단지 2014년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는 마지막 소식을 들었을 뿐이다.

그가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으로 인해 충동적으로 자살했다, 돈문제로 고통스러워 자살했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영화에서 보던 그의 모습과의 괴리로 의아함이 컸다. 비록 영화에서의 모습이라 할지라도 미소와 유머로 삶의 무게를 어떻게 딛고 살아야 하는지 보여준 그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마지막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2016년 미망인 수잔 슈나이더 윌리엄스의 회고를 보고 나서야 그가 단순한 중독이나 우울증만으로 삶의 끈을 놓은 것이 아니라는 것과 더불어, 치매로 인해 산산조각 난 자신의 삶을 지키려 부단히 노력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사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루이체 치매로 고통을 받았다. 루이체 치매는 전체 치매 환자의 10~25%를 차지하는데, 노인 퇴행성 질환 중 알츠하이머 병 다음으로 빈도가 높은 질환이다. 루이체 치매는 일반 치매와 달리 초기부터 환시 증상이 나타나고 이를 치료하기 위한 약물에 몸이 굳거나 떨리는 부작용이 쉽게 나타난다. 게다가 파킨슨 증상으로 손발이 떨리거나 잘 걷지 못하고 종종걸음을 보이는 경우도 많아 파킨슨병과도 감별이 어렵다. 이런 이유로 최근에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나 과거에는 알츠하이머 병의 한 형태나 파킨슨 병 정도로 취급되었다.


루이체 치매라는 병의 증상 자체도 고통스러웠겠지만 로빈 윌리엄스의 마음을 무너지게 만든 것은 자신의 힘으로 되돌이키기 어려운 무언가가 내 안에서 벌어지고 있음에도 자신은 그것이 무엇인지 조차 알지 못하는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로빈은 점점 마음을 잃어갔고 그도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분해되는 느낌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어떤 힘으로도 되돌이키기 어려운 무언가 두려운 변화가 로빈에게 나타나고 있음을 느낌에도 무기력하게 얼어붙어 그 어둠 속에 혼자 서 있어야 하는 고통을 부부는 마주하고 있었다. 로빈은 'I just want to reboot my brain (내 뇌를 재부팅하고 하고 싶어)'라는 말을 반복했다. 임상 평가, 정신과 평가, 혈액검사, 소변검사, 콜티솔 농도 측정, 심장 기능 평가를 진행했지만 스트레스 호르몬인 콜티솔 농도가 높다는 것이외 모든 검사 소견이 정상이었다. 뇌 스캔 검사도 진행했지만 특별한 문제가 관찰되지는 않았다. 로빈은 당시 검사 결과에 이상이 없다는 사실에 행복해 보였지만, 부부는 뭔가 직감적으로 뭔가 끔찍하게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5월 28일 로빈 윌리엄스는 파킨슨 병을 진단받았다. 부부는 답을 찾았다. 수잔은 원인을 알았다는 점에서 희망을 갖기 시작했고 로빈과 함께 신경과를 방문했다. 여기서 로빈은 신경과 전문의에게 그동안의 답답한 마음을 쏟아내듯 질문을 던졌다. '내가 알츠하이머 병인가요? 치매인가요? 조현병에 걸린 건가요?' 신경과 전문의는 부부가 듣고 싶었던 가장 최고의 답변을 줬다. '모두 아닙니다.' (The terrorist inside my husband's brain 중에서)


이런 이유로 수잔 슈나이더 윌리엄스는 남편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1년 동안의 기록을 다른 방식이 아닌 의학저널에 기고했을는지 모른다. 자신의 남편과 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가장 객관적인 소통방식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2013년 처음 로빈 윌리엄스가 겪은 증상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불안증상에서 시작됐다. 감정적으로 예민한 상태가 되면 자율 신경계 증상이 항진되며 불안으로 인한 신체 증상이 나타난다. 이런 경험은 큰 병이 생겼다기보다 과도한 스트레스 정도로 간과할 수 있다. 그리고 왼쪽 손의 미세한 떨림은 파킨슨 증상의 전조였지만 이 또한 불안의 한 현상이나 약물 부작용 정도로 해석했을지 모른다.

2013년 10월, 로빈은 변비, 소변 문제, 가슴이 화끈 거리는 느낌, 불면 그리고 냄새를 잘 맡지 못하는 증상으로 이미 의사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그는 이미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간간히 왼쪽 손은 미세하게 떨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장이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고 과도한 불안과 공포를 자주 느꼈다. 수잔은 과도한 남편의 모습을 보고 건강염려증(hypochondriasis-자신의 신체 건강을 과도하게 걱정하는 불안장애)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The terrorist inside my husband's brain 중에서)


그러나 로빈 윌리엄스에게 반복적으로 나타난 과도한 불안과 공포는 단순 불안장애가 아니라 루이체 치매 초반에 나타날 수 있는 초기 증상이었다. 이는 불안, 공포와 같은 감정에 관여하는 뇌의 편도체 (amygdala)에 루이체(lewy body)라는 독성물질이 쌓이면서 생기는 증상인데 더 진행되면 불안정한 감정 기복, 의심과 같은 증상이 악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빈은 게실염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장 검사를 했지만 이상이 관찰되지 않았다. 장 불편감은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양상으로 시간이 갈수록 빈도와 강도가 더 커졌다고 한다. 잠을 여전히 못 자고 기억력이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로빈과 수잔은 추억을 되새기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냈으며 심리상담과 약물치료를 시작했다. 겨울이 되자 로빈은 의심과 망상 증상이 나타나고 술에 취한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The terrorist inside my husband's brain 중에서)


5~6개월이 지나고 반복되는 불안, 공포와 더불어 기억력 저하가 나타났지만 이 때도 치매라기보다 공황 증상이나 우울, 불안으로 인한 집중력 저하 및 기억력 저하로 평가됐을지 모른다. 이런 현상을 '가짜 치매 또는 가성 치매'라고 부르는데 노인성 우울증이나 불안증에서 잘 발생하며 치매 수준의 기억력 문제를 호소한다. 그러나 로빈 윌리엄스에게는 실제 치매가 진행되고 있었다.  

영화를 찍는 동안 로빈은 한 장면의 대사 한 줄을 외우은 것조차 어려워했다. 영화를 찍기 3년 전만 하더라도 그의 기억력은 상당히 뛰어났다. 수잔의 기억에 따르면 그는 브로드웨이 연극 '바그다드 동물원의 벵갈 호랑이'에서 5개월의 시즌 동안 하루에 두 번 공연을 하며 수백 개의 대사를 실수 하나 없이 해냈다고 한다. 그러나 한 줄 대사 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그에게 남은 것은 절망뿐이었다. (The terrorist inside my husband's brain 중에서)


게다기 2014년 4월부터 그의 마지막 유작 '박물관이 살아있다 3편'을 찍었는데 이 시기는 발작적인 불안이 더 심해졌다. 증상이 악화되자 의사는 항정신병 약물로 공황 증상을 조절하기로 했는데 예측과 달리 약물에 예민한 반응을 보였고 약물로 인한 반응도 예측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단순 약물 부작용 정도로 여겼겠지만 이 또한 루이체 치매의 특징적인 증상 중 하나였다. 앞에서 언급했듯 루이체 치매는 항정신병 약물로 인해 몸이 굳거나 떨리는 부작용이 특히 잘 나타나고 한번 그런 부작용이 나타나면 약을 끊는다고 해서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영화 촬영 때문에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로빈 윌리엄스는 하루에도 수차례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자신을 믿지 못하고 스스로에 대해 불안해했으며, 다른 사람들과 일상적인 대화조차 두려워했다. 그는 이런 자신의 약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자신이 실수한 것은 없는지 매일 그 상황을 복기했다. 희망이 산산조각 나 혼란과 공포에 휩싸였던 부부는 2014년 5월 28일, 남편이 겪고 있는 현상이 단순 우울이나 공황 증상이 아닌 파킨슨 병일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부부는 답을 찾았고 이제 남은 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로빈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신경과 치료뿐만 아니라 운동요법, 자전거 타기, 자신의 트레이너와 같이 산책을 하며 몸을 단련했다. 그는 미네소타에 있는 댄 앤더슨 수련회에서 요가, 명상을 배우며 자기 몸의 미세한 운동을 조절하는 기술을 익혔다. 그는 스탠퍼드 대학의 최면 전문가를 찾아가 불합리한 불안과 공포를 가라앉히는 자기 최면을 배워 활용했다.  이 과정을 하는 동안 로빈은 진지했고 여름 몇 달 동안 행복하고 즐거워 보였다. 그는 생일을 축하는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음식을 즐기고 같이 명상을 하거나 영화를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The terrorist inside my husband's brain 중에서)


배우임에도 그의 표정은 파킨슨 증상으로 인해 굳어 있었고 발성도 약해졌다. 1년 전만 하더라도 미세하게 떨렸던 왼손은 하루 종일 떨렸고 종종걸음(shuffling gait)이라고 불리는 특징적인 파킨슨 걸음도 나타났다. 치료와 스스로의 노력에도 그는 점점 지쳐갔고 심한 좌절감을 느꼈다. 그때부터 그는 순간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는데 하루에도 수차례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했다. 이 또한 루이체 치매의 특징적인 증상 중 하나다. 밤에는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사람도 못 알아보다가 다음날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정상적인 모습을 보여 가족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증상이다. 인지 변화의 일중 변동으로 불리는 이 현상은 환시, 파킨슨 증상과 더불어 루이체 치매의 3대 핵심 증상이라 부른다. 


다행히 중간에 파킨슨 약을 변경하고 그의 증상이 완화되기도 했는데 사실 이럴 때가 정말 조심해야 할 시기이다. 자살의 위험은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가 아니라 그 고통이 잠시 가라앉았을 때 순식간에 밀어닥친다. 우울증 환자도 무기력이 가장 극심할 때가 아니라 환자가 살짝 기력을 차렸을 때 더 위험하다. 환청, 망상을 주 증상으로 한 조현병 환자도 한참 증상을 겪을 때가 아니라 정신병 증상이 가라앉고 이후 한 두 달 사이에 조심해야 한다. 이는 치매 초기 단계 환자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자신이 붕괴되는 경험을 매일 겪고 있으나 아직 자신을 잃지 않은 치매 초기 단계는 특히 자살의 위험이 높다는 것을 명심 해야한다.  


파킨슨 약을 변경하고 그는 기분도 좀 더 편해지고 다시 희망을 꿈꾸기도 했다. 8월 둘째 주 그의 증상은 상대적으로 안정을 되찾고 있었고 부부는 오랜만에 완벽한 토요일을 보낼 수 있었다. 일요일 밤 수잔은 로빈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느꼈고 매일 그래 왔듯 잠들기 전 남편에게 속삭였다. 'Good night, my love' 그리고 로빈도 아내 수잔에게 대답했다. 'Good night, my love'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 인사였다. 8월 11일 월요일 그는 삶을 마무리했다. (The terrorist inside my husband's brain 중에서)


언론에 수잔이 언급한 바에 따르면 로빈은 자살 시도 1주일 전 신경인지검사, 즉 치매 검사받았으며 자신이 노인 퇴행성 치매 초기 단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노력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 자신을 잃게 될지 모른다는 고통, 그것을 누가 이해해 줄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3개월 후 그의 뇌를 부검했을 때 비로소 루이체 치매의 병리 소견을 발견했고 그가 그동안 경험한 고통의 의미를 하나씩 되짚어 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의 아내 수잔은 이런 고통을 앞으로 겪게 될지도 모를 사람들을 위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로빈 윌리엄스의 마지막은 그가 주연한 영화 '사랑의 기적 (원제 Awakenings, 실화를 바탕으로 함)'을 떠올리게 한다. 의사 세이어 역할을 맡은 로빈 윌리엄스는 30년 동안 죽은 듯이 잠만 자던 기면성 뇌염 환자 레너드(로버트 드니로 역)에게 엘도파(파킨슨 병 약물)를 써서 깨어나게 한다. 요양병원에 누워있던 사람들이 기적적으로 일어나 원했던 것은 보통사람들이 원하는 돈이나 사랑, 명예와 지위 같은 것이 아니었다.

'뭘 원하죠?'

'단순한 겁니다. 산책하는 거 말이에요. 내가 원할 때, 다른 정상인들처럼...'

사랑의 기적 스틸컷(출처: 다음영화)

그 또한 마지막 순간까지 갈망하고, 지키고 싶었던 것은 단순한 일상의 소중함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며 그를 기린다. 그리고 그가 막연히 병에 압도되어 무기력하게 무너졌던 것이 아닌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내는 과정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려 한다.

'굿바이 로빈' 



참조

Williams SS. The terrorist inside my husband's brain. Neurology. 2016 Sep 27;87(13):1308-11. doi: 10.1212/WNL.0000000000003162. PMID: 27672165.



매거진의 이전글 망가지는 것은 뒤늦게 알게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