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by 꼬망

막연하게 이 나이쯤엔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아이는 한 명만 낳아야지. 내가 생각했던 출산의 마지노선 나이를 넘어서고 싶지 않았다. 막연하게 결혼하고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었던 나는 아이가 있으면 사회적인 시선의 안정감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했어? 아이는? 성별은?” 이런 끊임없는 질문에 나도 이치에 맞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그렇게 평안을 바랐던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삶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녹녹지 않은 시간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언제든 할 수 있다는 마음의 여유는 갈수록 졸아들었다. 남편에게 전적으로 의지했던 내 인생은 어느 순간 사소한 거 하나에도 남편의 의견을 물었다. 그와 살면서 그렇게 모든 것을 맡겨버리고 싶었던 걸까. 10년이 지나서 내 일을 다시 하겠다고 결심한 계기 중의 하나는 남편의 대답이 나의 욕구를 채워줄 수 없다고 느꼈을 때부터다.

각자의 자라온 환경이 있듯이, 남편이 살아온 가치관에 내 인생의 해답을 찾을 수 없다고 느꼈다. 내 삶에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 인생을 통째로 바꿔주기를 바라는 생각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아이들을 키워가는 과정은 내겐 너무 큰 숙제였다. 밤낮없이 일하는 남편을 대신해 어린아이들의 육아는 오롯이 내 몫이었다. 함께 살면서 공동육아란 생각이 들어본 적이 없다. 바깥일은 온전히 남편이, 집안의 아이들의 캐어는 모든 게 나의 일이었다.


태어나서 귀여운 아이들이 사랑스러운 것도 잠시 나는 내 안의 화를 마주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키우는 게 힘들어서 화가 난다고 생각했다. 잘못된 점을 바로잡아줘야지. 문제는 깨우치게 해 줘야지 하고 말이다. 화가 나는 이면에는 내가 정말 지쳤다는 것 그리고 아이들에게 성냈던 감정은 스스로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이들에게 화냈던 감정은 어쩌면 내 안의 상처를 마주하는 법이 서툴렀던 게 아니었을까.

늦은 밤 혼잣말을 되뇌며 잠을 청했다.


“나는 화난 게 아니라, 외로웠던 거야.

나는 괜찮았던 게 아니라, 너무 오래 참았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