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와 죄책감 사이

by 꼬망


모든 게 귀찮고 피곤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 내가 바쁘게 일을 할수록 살이 자꾸만 찌는 둘째 아이가 마음이 쓰였다.

이런 날은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쉬어야 하는데 둘째 아이 운동을 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사로잡혔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공원을 향했다. 답답한 마음에 하늘 보고 천천히 걸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더디던 그때 구덩이에 왼발을 헛디뎌서 발목을 삐끗해 버렸다.

예사롭지 않은 발목의 통증에 깊은 밤 뒤척거렸다.

다음날 발목 통증에 눈을 찌푸리며 가까스로 운전해서 병원을 향했다.


“인대 모양이 좋지 않아요. 우선 통깁스해서 4주 후에는 치료를 같이해야 해요. 우선 깁스하고 4주 후에 봅시다.”


여름을 코앞에 둔 날씨에 씻지도 못하고 깁스를 그렇게 오랜 시간 해야 하다니. 생각만 해도 어지러웠다. 집에서 작업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집순이가 되어야 한다니 넘어진 장소가 억울하게 느껴졌다. 장 보러 움직이기도 힘들어서 필요한 물건들은 모두 인터넷배송을 했고 급히 움직이는 일이 필요하면 짧은 거리도 운전하면서

발목이 묶인 채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우울함이 차올랐다. 나의 우울함과 비관적인 생각들은 육아하면서 고스란히 거울처럼 비춘다.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마음 이면에는 내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숙제를 느긋하게 하는 큰아이에게 모진 말들이 쏟아낸다.


“너 정말 어쩌려고 그래? 지금 하는 작은 일들을 하나씩 잘해야지 나중에 더 큰 일도 잘할 수 있는 걸 몰라?”


내가 말하면서도 어떤 건 맞고 어떤 건 틀리다. 그래도 엄마는 자녀가 주어진 작은 일도 잘 해냈으면 하는 마음.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보고 싶은 욕심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억울한 아이는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 누구네 엄마는 그렇게 공감을 잘해준대요. 잘했다고 격려를 매일 해준대요. 걔는 학원도 안 다니고 공부도 안 하는데…. 엄마는 왜 나한테 그런 말 잘했다 그런 말 안 해요?”


아이가 큰소리로 울먹거리는데 그 순간 지기 싫은 옹졸한 자존심 때문에 연이은 잔소리로 답했다.


“정리하고 들어가서 자” 크게 한숨을 내쉬고 앉아서 열린 창문 너머로 밤하늘을 봤다.


유년 시절 들었던 아빠의 무심한 말들이 비수처럼 쏟아져서 가슴에 꽂혔다. 순간 그때의 억울함과 상처가 되살아나 먹먹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왜 내가 받은 상처를 아이에게 똑같이 전달할까. 그때 나도 그게 싫었으면서.

억울했던 어릴 적 기억이 머리를 스치자 나도 모르게 눈물을 훔쳤다.

아픈 발을 절뚝이며 흐느끼는 아이 곁으로 갔다.


“준아. 미안해. 엄마가 제대로 하루에 한 번도 칭찬과 격려 해주지 못했네. 너도 나름대로 하루를 바쁘게 살았을 텐데 그 마음을 몰라줬어. 지금 몸이 안 좋으니 더 그러지 못했어.”


나의 말에 눈물이 터진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내 맘대로 되는 아이였다면 그 자체가 로봇이 아니었을까. 느린 아이의 속도를 어른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만큼 버거운 것은 없다고 느낀다.


어렸을 때 책 읽고 독후감 쓰는 게 그렇게 싫어서 언니들 뒤에서 몰래 책 머리말을 베껴서 냈다. 학교 시험 한번 제대로 준비해 본 적이 없는 그때의 나도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그림 그리는 일을 치열하게 하고있는것처럼 말이다. 아이를 너그럽게 토닥일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내가 먼저 넉넉해져야 아이에게 웃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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