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는 역주행

by 꼬망

아침 7시, 아침밥을 하면서 아이들을 깨운다.

똑같은 얘기가 무한 반복되는 것 같다. “일어나. 학교 갈 준비 해야지. 가방 잘 준비하고. 이빨은 닦았니? 깨끗하게 하고 가야지. 밥 먹어. 채소도 좀 먹어. 머리 잘 빗고!”

끊임없이 떠들어야 아이들의 등교 준비에 차질이 없다.

“왜 이렇게 늦니?” 허둥거리면서 행동이 늦된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한숨이 절로 튀어나왔다.


어릴 적엔 내 말 한마디면 어떤 거부 없이 다 해내 던 아이였는데, 어느 순간 아이의 머리와 가슴은 커져 있었다.

“엄마. 좀 두세요. 알아서 할게요.” 잔소리를 시작하려고 하면 미간부터 찌그러지는 아이 표정을 보며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아이들이 가방을 들고 허겁지겁 대문을 나서면 나의 분주한 아침 시간도 정리가 된다.


요즘 들어 큰아이가 제일 잘하는 말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이 말은 "제가 다 알아서 할 거니 인제 그만 신경 쓰지 않아 주셨으면 합니다. 그 어떤 것도요.”라는 의미이겠지?

다다다가 떠들고 나면 나의 미비한 에너지마저 고갈이 된다.


큰아이는 지난주부터 하교하고 귀가 멍하다고 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귀의 통증이 나아지지 않는다고 하자 감기몸살이 온 나는 다음날 가자고 했다. 지난주에 귀가 아프다고 해서 근처 병원에서 대충 감기약을 먹은 뒤였다. 오늘은 큰 병원을 가봐야겠다. 병원에 갔더니 선생님이 염증 소견이 보인다며 청력검사까지 강행했다.


“얘 뭐 힘들어요? 학원이랑 다 좀 빼고 쉬게 해요. 무조건 쉬어. 쉬어야 낫고 애들이 아프면 오래가고 힘들어서 안 돼. 지금 이 수치면 안 돼요. 염증 수치가 올라가면 청력에 영향을 주니까 정말 조심해야 됩니다.”


염증 수치가 높다는 말에 놀란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픈데 시험이고 학원이고 무슨 소용이야. 그동안 그렇게 애쓰도록 잔소리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굳은 결심을 해도 단 몇 시간 만에 다시 뿜어지는 나였는데, 선생님의 심각한 표정에 마법을 뿌린 것처럼 잔소리는 서서히 사라졌다.


‘지난주에 아프다고 할 때 바로 큰 병원으로 갈걸.’ 내 귀찮음에 근처 병원에서 편하게 진료받으려 받으려고 했던 마음까지 자책이 됐다. 그때 갔다면 이렇게까지 수치가 높지 않았을 텐데…. 난 왜 그랬을까.'


그동안 아이를 많이 나무랐던 나는 모든 잔소리를 멈췄다. 숙제도 하지 말고 무조건 쉬라는 말이 싫지 않은 듯 내 눈치를 흘끔 보더니 침대에 누워 입꼬리가 올라갔다.

정말 조심하라는 선생님의 당부에 모든 잔소리를 멈춘 내 모습이 신기할 정도였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열이 펄펄 나서 집으로 조퇴했다. 엄마가 나를 보고 왜 왔냐고 내가 아픈 게 처음에는 거짓말한다고 벌도 세웠다. 조금 지나서 식은땀을 흘리며 열이 펄펄 나는 이마를 만져보고 깜짝 놀라며 병원을 향했다. 엄마는 딸의 말을 믿어주지 못한 게 미안했는지 이불을 펴고 이마에 수건을 올린 채로 벌거벗은 임금님 책을 읽어줬다. 그때 나는 생전 받아보지 못한 귀한 대접을 받은 손님인 양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때의 기분이 지금 이 아이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며칠이 지나고 다시 병원을 찾은 나는 아이의 수치가 다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잘했어. 연신 칭찬을 하며 맛있는 밥을 잔뜩 먹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오늘 학원숙제는 해야지?”


숨죽였던 잔소리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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