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는 아침을 안 먹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아침 안 먹어도 되는데, 그럼 영원히 아침은 못 먹을 거야. 너 아침 누가 차려주는 거 대게 고마운 거다. 지금은 모르겠지?”
반발심에 국은 안 먹고 맨밥만 먹는 아이가 미워 머리를 콕 쥐어박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았다.
어릴 적 우리 집은 밥은 꼭 먹는다는 주의였다. “하루의 에너지는 밥심이다!”. 했지만 사실 요즘은 탄수화물을 줄이는 마당에 매일의 끼니가 밥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자녀들의 밥상을 준비하는 하루로 주방은 점점 낡아갔다. 엄마는 식탁 위에 꼭 채소를 씻어서 그릇에 정갈하게 담았다.
단출한 밥상이어도 제철 채소들로 식탁을 채웠다. 깨끗이 씻은 과일과 채소를 올리는 수고로움이 있었다는 걸 느낀다. 그때는 화를 내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챙겨야 할 자녀들이 한 두 명도 아니고 밥솥에 밥을 담고 김치만 꺼내도 그 수고로움이 크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 어렸을 때는 부모에게 받은 것 없이 오롯이 나 혼자 컸다고 자신했다. 나를 챙겨주지 않는 부모가 야속했고 사소한 것에도 본인의 기분에 따라서 화를 내는 엄마가 싫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워보니 밥 한 공기 그릇에 담는 것의 사소한 수고로움이 얼마나 큰 것인지 깨달았다. ‘여유가 없어 그랬구나. 엄마도 고된 하루가 지쳤었구나.’ 엄마의 노고를 이해하게 됐다.
원고 마감이 다가오면 나도 모르게 신경이 예민해진다. 여러 가지 할 수 있는 멀티가 안 되는 나는 집안 살림과 개인작업을 함께 병행하기 어렵다. 바쁠수록 아이들을 살뜰히 챙기는 날은 줄어들었고, 미소 짓던 입꼬리도 내려갔다. 오늘의 작업 하나만 해도 저녁때가 되면 나는 녹초가 되어버린다. ‘일을 그만둬야 할까?’라는 생각이 스치면서도 100세 시대에 나만의 일을 갖고 있는 게 좋다고 느낀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의 일을 하면 나는 왜 이렇게 쉽게 지칠까?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수업시간만 되면 하는 말씀이 아직도 가끔 생각날 때가 잇다. “너희들 지금이 얼마나 이쁠 때인지 아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지? 밥 챙겨주고 다른 것 신경 안 쓰고 학교공부만 신경 쓸 수 있는 지금이 정말 너무 부러워. 지금에 충실하며 잘 지내야 돼 알았니 얘들아?”
그때는 선생님의 훈화 말씀으로 수업시간이 길어지고 종이 쳐도 끝나지 않기에 반아이들은 일제이 네네네 하며 급 마무리되길 기다렸다.
중년이 된 지금의 나는 선생님의 말씀이 어떤 뜻인지 선명하게 아는데, 이제야 알게 됐다.
나의 아이도 엄마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네네네로 마무리하는 게 아닐까.
그 언젠가 아이가 큰 어른이 되었을 때 나보다는 빠른 시간에 그 지혜를 알았으면, 그래서 나보다 조금은 현명한 삶을 살기를 바라본다.